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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각하, 천국에서 평안하십시오"

[박동천 칼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하'라 부릅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곳 인근에 친한 분들과 산에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대통령님이 고초를 겪고 있지만 이겨내시리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다"고 하길래, 아차 싶으면서도 아이만을 채근했습니다. "노 대통령이라면 노태우 대통령일 거야"라고 하면서, 아이가 본 뉴스에 "무현" 두 자가 없기만을 빌었습니다. 잔인한 기사를 제 눈으로 확인하고도 한동안 믿지 못했고, 지금도 제 눈에 고인 눈물이 꿈이라면 좋겠습니다.
▲ ⓒ연합뉴스

힘이 드신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작년 8월에 찾아 뵈었을 때 시달리시는 와중에도 의연하셔서 그만큼인 줄을 애써 모른 척 했습니다. 대통령직에 계실 때 그 수모와 고초를 당하시고도 당당한 의지를 보이셨기에, 언제까지나 꿋꿋하시리라 믿었습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허망한 몽상을 쫓느라 님을 공격하고 등을 돌려도 희망을 간직하시기에, 늘 저희 곁에서 등불이 되어 주실 줄만 알았습니다. 뉴질랜드에 머무르면서 박연차 추문보도를 보면서 얼마나 힘이 드실지 짐작이 안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무능한 못난이가 소심하고 비겁하게 생겨먹어서 좀더 적극적으로 변호해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솔직한 일상어로 말씀하시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치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못봤기 때문에, 저는 님의 정직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악스러운 보수파는 물론이고 진보라는 사람들까지도 님을 물어뜯을 때, 저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님의 솔직함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좀더 공개적으로 주장해보기도 전에 님은 떠나버리셨군요. 하염없는 눈물만 흐릅니다.

일제 고등계 형사같은 검찰이 성가시게 하는 정도였다면 쉽게 이겨내셨겠지요. 이명박이나 방상훈이 복수하는 것쯤 웃으며 넘기셨겠지요.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준 것 때문에 가장 마음이 아프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대통령님 때문에 상심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대통령님이 느꼈을 아픔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대통령님이 저희 곁을 떠나신 때문에 상심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에게 남기신 일들이 있고, 그 일을 위해 언제나 저희 맘속에 살아계시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을 괴롭힌 모든 인종들을 지목해서 조목조목 비난하고 싶습니다만, "원망 마라"고 하신 당부를 지금은 따르겠습니다. 검찰이 법으로 사람을 잡는 인간사냥개 노릇을 한 것이 아닌지도 지금은 따지지 않고, 얼치기 진보들의 자기방어용 결벽증이 대통령님께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도 지금은 들춰내지 않고, 이명박 장로가 기독교의 탈을 쓰고 빌라도 노릇을 하는 모습도 지금은 고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대통령님께서 일생을 바쳐 염원하신 대로 민주주의가 일시적인 기류가 아니라 제도로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 남은 삶을 바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틀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씩만, 법이라는 명목의 인간사냥을 들춰내고, 진보적 결벽증이라는 이름의 자기보호본능을 따지고, 이명박 장로의 빌라도스러움을 고발하겠습니다. 지금은 하지 않고 앞으로 두고두고, 대통령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셨듯이 끈질기게 낱낱이 밝혀내겠습니다.

꼭 한 번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할 대목이 있었습니다만, 차일피일 미루다 비보를 맞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쓴 글에서 대통령님을 예의없이 언급한 대목을 혹시라도 보셨다면 꼭 해명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존경하지 않는 대통령들에게 경칭을 쓰기가 싫던 차에, 경칭 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기질에 기대느라 그랬음을 꼭 한 번은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통령님이 "정치적으로 미숙했다"는 저의 평가도 대통령님의 성과를 폄하하는 칼날이기보다는 아쉬움, 특히 현실을 무시하는 진보진영에게 소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라는 심정에서 한 말임을 꼭 한번은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인간 노무현은 물론이고 정치인 노무현도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했었음을 꼭 한번은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기어이 한번도 못하고 사랑했었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니 눈물이 다시 흐르고 통곡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떠나셨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씀에서 이미 평안하신 모습을 저는 봅니다. 생전에 님을 들볶던 모든 사람들은 잠시 숙연하다가는 금세 또 누군가를 찾아 못 살게 굴 것입니다만, 그들을 위해서 더는 마음 아파 마시고 이제는 님의 평안만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생전에 내세에 관해 의식적으로는 어떤 입장을 취하셨든지 상관없이, 제가 믿는 천국에서는 높은 자리를 예비하고 님을 맞이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대통령님과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음을 살아있는 동안까지 이웃에게 전하겠습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 대한민국에게 영광이었음을 못난 글재주가 허락하는 데까지 널리 깊게 알리겠습니다.

각하라는 호칭을 싫어하셨지만 오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하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 호칭을 왜 싫어하시는지 사무치게 공감하지만 이번만은 부르도록 허락해 달라고 면전에서 떼라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께도 각하라는 호칭은 써본 적이 없고, 앞으로 어떤 대통령에게도 각하라고는 부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만,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각하라는 말을 호칭으로 쓰는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 각하 천국에서 평안하십시오.

2009년 5월 23일
뉴질랜드 해밀턴에서
박동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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