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라 감독의 신작 <7급 공무원>은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너스레를 떠는 척, 사실은 우리사회內 여권 신장이 나름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일종의 알파 걸 신드롬이 이 영화의 주된 테마인 셈이다.
▲ 7급 공무원 |
실제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안수지(김하늘)는 남자 애인인 재준(강지환)보다 늘 한걸음 앞서는 인물이다. 국가정보원에서 일한 것도 그보다 3년쯤 먼저인데다 남자가 비리비리, 마마 보이型인데 비해 모든 것을 스스로 척척 해내는 수퍼우먼이다. 영화 막판, 재준이 러시아 마피아 여성을 제압하는 펜싱 기술도 수지가 예전에 가르쳐 준 대로 한 것일 뿐이다. 무술이면 무술, 말발이면 말발, 머리를 쓰는 것에서 조직 내 적응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면에서 여자는 남자를 제압하고 나선다. 근데 그렇게 됐다.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사회 여성들은 이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대사들이 많지만 재준의 직속상관인 국정원 과장 원석(유승용)이 여성관을 피력하는 얘기가 유독 귀에 들어 온다. 원석은 재준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두 종류야. 믿을 수 없거나, 믿기지 않거나." <7급 공무원>은 국가 안보기관에서 일하는 정보원들의 애환코믹극이 아니라 지금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하여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코믹멜로물이다.
그때문인지 영화는 신선,유쾌,통쾌한 구석을 곳곳에 담아내며 관객들을 쥐고 흔든다.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은 국가정보원, 곧 옛 안기부라 불리는 살벌한 첩보기관이 북한이니, 조국의 안보니 하는 그 흔한 '친북좌파 빨갱이' 논쟁 등 정치성을 싹 걷어냈다는 데서 찾아진다. 정치를 얘기하되 정치를 내세우지 않는 것. 사회현상을 말하되 그런 척 하지 않는 것. 큰 우주를 얘기하고 싶어도 그것을 작은 우주로 풀어내는 방식. <7급 공무원>은 대중상업영화가 착지해야 할 균형점을 잘 찾아낸 영화다. 이 영화가 이래저래 과장에 '오바'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도를 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때문이다. 상업영화는 바로 그 중간 지점에 머무르는 게 어렵다. 할 얘기를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 7급 공무원 |
<7급 공무원>은 지금의 상업영화가 분수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작품이다. 관객 모두가 <7급 공무원>을 보고 나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는 않겠지만 티켓 값을 아까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로 볼만한 작품이다라는 평이 지배적인 것은 이때문이다. '싼 티 나는' 제목에 비해 평단에서도 영화가 공개된 후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장르영화로서 이쯤 되면 제몫을 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7급 공무원>은 <과속 스캔들>로 빅 히트를 친 디씨즈 플러스가 제작하고 역시 같은 영화를 배급한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한 작품이다. 이 제작-투자배급사 커플은 두편의 영화를 통해 지금의 척박한 영화 현실에서 영화가 '레저'로서 살아 남으려면 어떤 것을 취하고 또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 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취할 것은 대중 취향의 트렌드에 대한 R&D 비용이다. 버려야 할 것은 작가주의적 욕심이다. 디씨지나 롯데는 연이어 작가주의적 근성의 '중견'감독보다 장르영화를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는 '중간'감독, 곧 장인형 감독을 발굴해 내는 쪽을 택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국내 상업영화계는 비로소 이 중간형 감독들이 헤게모니를 쥘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화는 무엇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가. 예술인가 대중인가. 길고 긴 지루한 논쟁이다. 잠깐동안이라도 그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일종의 봉사행위일 것이다. <7급 공무원>이야말로 그 몫을 해낸 작품이다.
(* 리뷰 글은 영화진흥위원회 기관지 '동향과 전망'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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