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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 배출한 나라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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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 배출한 나라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②] 시모 헬스텐

5월 15일은 1981년 이후 이어져 온 세계병역 거부자의 날이다. 국제평화단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War Resisters' Interntional)'은 매년 초점 국가를 선정해서 해당 국가의 병역 거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2009년 세계 병역 거부자의 초점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대체 복무제 도입이 무기한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10일부터 16일까지 해외의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들은 한국에 모여서 국제회의와 비폭력 트레이닝을 통해 세계 병역 거부 운동과 한국의 실태를 논의할 에정이다.

병역 거부자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평화연구를 하고 있는 임재성 씨가 한국을 찾은 해외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핀란드에서 온 시모 헬스텐(Simo Hellsten)은 '핀란드병역거부자연합(Union of Conscientious Objectors Finland)'에서 1997년부터 활동해왔다. 스스로가 병역 거부자이기도 한데, 일찍이 인정된 병역 거부권으로 인해서 대체복무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시모에게 한국과 같고도 다른 핀란드 군사주의 형성 과정과 병역 거부 운동에 대해서 물어봤다.

▲ 핀란드에서 온 시모 헬스텐(Simo Hellsten)은 '핀란드병역거부자연합(Union of Conscientious Objectors Finland)'에서 1997년부터 활동해왔다. ⓒ임재성

임재성 : 한국에서 핀란드는 북유럽 국가로서 평화로운 이미지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핀란드 역시 군사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알고 놀랐다. 핀란드 사회의 군사주의는 어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었는가?

시모 : 세 번의 전쟁 경험이 핀란드 군사주의에 중요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러시아제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직후인 1918년에 일어난 좌우간의 내전이었다. 이는 수만 명의 죽음으로 끝났으며 이후 핀란드 사회에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두 번째는 '겨울전쟁'이라고 불리는 1939년부터 일어난 소련과의 전쟁이다.

스탈린이 핀란드를 위성국가로 삼으려는 것에 저항한 전쟁이었는데, 이 때 거대한 영웅담들과 자발적인 총동원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은 거대한 소련의 침략을 작은 핀란드가 막아내는 '좋은 전쟁'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반소련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나치와 손을 잡고 소련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것이 세 번째 전쟁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빈곤한 상태였다. 이는 핀란드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는데, 군사주의는 이러한 전후의 상황에서 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학교는 계속 전쟁 영웅과 그들의 희생을 강력하게 주입시키면서 지금의 고통을 정당화시켰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조국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우리의 독립은 전쟁 시기 희생당했던 남성과 여성들의 명예에 빚을 지고 있다"와 같은 담론이 지배적이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내전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이나 나치와 연합해서 소련의 국경을 넘어 공격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오직 피해자로서의 핀란드와 나쁜 소련에 저항했던 영웅들만이 칭송된다.

임재성 : 한국과 매우 유사한 지점이다. 한국 역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 "강한 국가·강한 군대"의 이데올로기가 상당하며 "만약 북한이 쳐들어온다면"이라는 가정 앞에서 모든 합리적 논의가 중단된다. 그 속에서 한국은 늘 피해자이며,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같은 문제는 주류의 역사가 되지 못한다. 무엇이 기억되는가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이다.

시모 : 우리 역시 군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 "퇴역 군인들이 이러한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라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온다. 겨울전쟁의 '영웅들'에 대한 영화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신화화되고 있다. 얼마 전 의회에서 대체복무 기간을 줄이기 위한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 한 퇴역장교는 "의회는 누군가가 침략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재성 : 군사주의는 적을 만들고, 그 적에 대한 공포로서 작동한다. 핀란드에게 그 적이 거대한 소련이었다면, 실제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군사주의가 약해졌는가?

시모 : 정반대이다. 오히려 냉전 시기에 핀란드는 지리적으로 소련과 인접하기에 정치적·군사적으로 일정한 제약을 받았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그 속에서 군사주의 역시 노골화되지 못했다. 냉전이 끝나자 자유롭게 반소련의 입장을 취할 수 있었고, 소련의 침략에 저항했던 전투가 더욱 찬양받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익들은 본격적으로 국방비를 확충하고 NATO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신군사주의라고 부르는데, 실제의 적은 사라졌지만 공포는 오히려 더욱 강조되는 형국이다. 그 속에서 강력한 군대는 핀란드의 '자존심'이 되고, 병역 거부는 더욱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 핀란드 병역 거부자 시모 헬스텐과 임재성 씨. ⓒ임재성

임재성 : 울리히 벡이란 학자는 냉전 해체 이후 '독일이 우방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며 독일은 군대를 해체할 것인지 또 다른 적을 만들어낼 것이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테러'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는데, 이는 군사주의 속에서 적이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된 상황에서 군사주의가 더 강력해지는 핀란드의 상황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당신은 핀란드에서 오랜 병역 거부 관련 활동에 참여해왔는데, 대체복무제 도입 역사와 현황이 궁금하다. 또한 군사주의적 분위기에서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떠한가?

시모 : 핀란드는 징병제로서 매년 3만 명 정도가 징집되고 있다. 이 중에서 8% 정도가 대체복무제를 선택한다. 그리고 현재 40명 정도가 현재의 대체복무제 역시 군사적 활동과 상당한 연관을 가진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수감되어 있다. 일반 복무는 6개월인데, 대체복무제는 최근에 1개월이 줄어서 12개월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국제적인 평화운동은 상당히 강력했다. 1920년대에 핀란드에서도 전쟁에 저항하는 그룹들이 많았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1922년에 유럽에서 최초로 대체복무제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후 1931년에 병역 거부의 사유가 종교적인 것에서 윤리적인 이유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는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병역 거부들도 강제징집이 되어서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가거나 처형을 당했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병역 거부자들에게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어왔지만 최근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도 회사에서 사원을 뽑을 때 그들의 군복무 여부를 묻기도 한다. 이는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이지만, 서류가 아닌 구두로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만약 이러한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와서 노동부에 진정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임재성 : 감옥이 아닌 다른 방식의 복무기회만이라도 달라고 외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먼 일이라고 느껴지지만, 대체복무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과 그것을 수행한 이들이 사회적으로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일 것이라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많은 이들이 그것을 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큰데, 핀란드의 사례는 어떠한가?

시모 : 최근 대체복무제의 기간이 줄어들자 신청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유럽국가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대체복무제를 택하는 이들은 소수다. 국방부는 병역 거부자들을 일정한 숫자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 이들이 증가할 경우 심사의 과정을 까다롭게 하거나, 대체복무를 군사 훈련과 유사한 것으로 교체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나는 퇴역군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간다"와 같은 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 이렇게 국제법과 인권규약을 무시하는 것은 놀랍다.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역시 한국의 상황을 돕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임재성

임재성 : 당신이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이기도 한데, 현재 한국은 400명 이상의 병역 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는 상황임에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오랜 병역 거부 활동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시모 :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 이렇게 국제법과 인권규약을 무시하는 것은 놀랍다.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역시 한국의 상황을 돕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핀란드의 한국 대사관 앞 집회를 조직하거나, 한국의 상황을 번역해서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 이명박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무기한 연기한 이유가 여론조사 결과라고 들었다. 인권은 95%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임재성 : 병역 거부를 통한 국제연대가 탈군사화된 사회를 만드는 주요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 감사드린다.

(통역=이세현)

2009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 행사 소개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병역 거부 운동을 활발히 펼치는 이스라엘, 콜롬비아, 러시아를 비롯한 10여 개국 20여명의 해외 활동가가 참가한다.

10일부터 14일까지는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시나리오 개발, 역할극 등을 하는 '비폭력 트레이닝'이 고양 일산 한강감리교회에서 진행되며, 15일에는 이 트레이닝에서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비폭력 직접행동'을 진행한다.

또 오는 16일 오후 1시부터 '전 세계 병역 거부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의대 함춘회관 3층 대강당에서 국제 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에서는 그리스, 미국, 이스라엘, 푸에르토리코, 마케도니아, 에리트리아 등지에서 온 활동가들의 사례가 발표된다. 이어 이날 오후 7시부터는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 2층에서 평화콘서트 '밀리터리 인 더 시티'를 진행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09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http://corights.net/2009c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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