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1981년 이후 이어져 온 세계병역 거부자의 날이다. 국제평화단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War Resisters' Interntional)'은 매년 초점 국가를 선정해서 해당 국가의 병역 거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2009년 세계 병역 거부자의 초점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대체 복무제 도입이 무기한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10일부터 16일까지 해외의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들은 한국에 모여서 국제회의와 비폭력 트레이닝을 통해 세계 병역 거부 운동과 한국의 실태를 논의할 에정이다. 병역 거부자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평화연구를 하고 있는 임재성 씨가 한국을 찾은 해외 병역 거부자와 평화운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영국에서 온 안드레아스 스펙(Andreas Speck)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에서 병역 거부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서 비폭력 직접 행동에 관한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는 비폭력 전문가이다. 그에게 2008년 촛불 집회이후 국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 비폭력 저항 문제에 대해 물어봤다.
▲ 영국에서 온 안드레아스 스펙(Andreas Speck)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에서 병역 거부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서 비폭력 직접 행동에 관한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는 비폭력 전문가이다. ⓒ임재성 |
'비폭력'과 '직접 행동'의 결합
임재성 : 한국에서는 그동안 비폭력은 무저항 혹은 타협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비폭력이 저항의 방식으로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 촛불 집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어색한 '비폭력'과 '직접 행동'의 결합을 당신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스펙 : 비폭력과 직접 행동의 결합은 먼저 그것이 다양한 '행동' 중에 하나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로비나 보이콧 같은 경우도 하나의 '비폭력 행동'이다. 그러나 비폭력 '직접' 행동은 행위와 효과가 직접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무기 수출을 막기 위해서 집회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지만, 무기를 선적하는 항구에 직접 가서 그 곳을 봉쇄하는 것이 직접 행동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항구를 봉쇄해서 무기 수출 자체를 막는 것에는 실패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직접적인 비폭력 행동이 대중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재성 : 그런 행동이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작년 6월 10일, 한국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항의하자 도로 한복판에 컨테이너를 설치해서 그들을 막았다. 실제 이것을 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논쟁이 치열했는데, 결국 새벽에 그 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결론이 난 것이 '비폭력'이 가지는 한계라는 지적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펙 : 비폭력 직접 행동이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다른 행동들 역시 상징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직접 행동이라는 것이 법적인 테두리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실천의 파급력은 더욱 크다고 본다.
"비폭력은 수단과 목표의 일치에서 시작한다"
▲ "가장 근본적인 대답은 운동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가 결정된다." ⓒ임재성 |
임재성 : 한국의 사회운동 내부에서는 비폭력에 대한 반감이 큰 편이다. 어떤 이는 비폭력의 방식이 국가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놓이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희생자를 재현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 비폭력 직접 행동이 폭력을 통한 행동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스펙 : 가장 근본적인 대답은 운동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가 결정된다. 만약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목표라면 이 때 폭력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위계질서와 새로운 국가, 군대, 경찰이 만들어 질 것이고, 폭력은 이러한 과정에서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난 훨씬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원하며,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단은 궁극적인 지향과 일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폭력을 통한 저항은 우리 안에 또 다른 군사주의와 위계질서를 재생산한다.
임재성 : 저항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 비폭력 논쟁에 있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에 대한 예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치를 막기 위한 전쟁 역시 반대할 수 있냐는 것이다. 병역 거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아인슈타인 역시 나치의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만은 총을 들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스펙 : 아직까지 비폭력 직접 행동의 역사들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은 나치 하에서 비폭력적 저항은 불가능했으며 있었다 하더라도 무의미했을 것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실제 당시 나치 치하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비폭력 저항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은 나치가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만약 이들이 총을 들고 싸웠다면 파시스트들에게는 간단한 문제였겠지만 무장이 아니라 비폭력으로 저항을 했기에 진압에 곤란함을 겪었고, 이들은 나치 하에서도 일정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성취할 수도 있었다.
또한 비폭력 직접 행동의 중요한 부분은 협조의 거부이다. 경찰이 행사하는 폭력은 국가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 어떤 국가도 이러한 직접적 폭력만을 가지고는 운영될 수는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다. 비폭력 직접 행동은 그러한 연결고리를 살피고 이를 절단하는 저항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상의 작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장소와 시간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때문에 더 큰 힘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에 비해서 무장 투쟁은 매우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크지 않다. 국가가 가진 군사적 힘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것에 폭력으로 맞서는 방식은, 실제 국가가 독점한 폭력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고 움직이는가를 큰 그림을 통해서 봐야한다. 비폭력과 비협력을 통해서 싸운다면 우리는 훨씬 강력할 수 있다.
폭력으로는 국가의 폭력을 이길 수 없다
임재성 : 실제 지금 한국의 상황은 집회나 시위의 자유 자체마저 극도로 위협받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 초 철거민들의 저항에 대테러진압 부대를 투입해서 6명의 사상자를 내놓고 그 어떤 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비폭력이라는 것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나?
스펙 : 우리가 비폭력으로 저항하다는 것은 경찰이 비폭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허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필요하다면 시위를 하여야만 한다. 대신 상황에 따라서 경찰의 폭력을 견디거나 감소시킬 준비 역시 필요하다. 이는 경찰의 폭력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폭력적이고 누가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즉 시위대가 '폭력'이라는 것과 그 '폭력'을 경찰이 진압한다는 고전적인 패러다임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독일에서 핵폐기물 반입을 저지하는 집회에서 9000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길을 막았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로 사전에 토론을 통해서 결정했다. 만약 이들이 돌이라도 던졌다면 경찰은 훨씬 쉽게 이들을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폭력을 유지했고 경찰은 오랜 협상이 결렬되자 결국 물대포를 쏘고 모두를 연행했다. 누가 승리하였을까?
물리적으로 보자면 경찰이 승리했다. 이들은 그들 모두를 연행했고, 핵폐기물이 운반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경찰은 엄청난 비난여론에 직면했다. 언론은 추운 날씨에 그냥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과 연행하는 장면을 전하면서 경찰의 폭력을 비판했다. 보수적인 언론마저도 민주적인 나라에서 이것이 경찰이 할 짓인가 반문했다. 경찰은 공권력으로서의 정당성을 잃었으며 시위대는 핵폐기물의 위험성과 널리 알림과 함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폭력을 사용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강하고 약한 것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무엇이 강하고 무엇이 약한 것인가? 그들은 정당성을 잃었으며 약해졌지만, 우리는 강해졌다.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것은 던지는 돌이 아니다.
강함과 약함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 "유럽의 경우 하나의 직접 행동을 위해서 수개월에 걸쳐 홍보를 하며,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행동의 내용과 방식을 정한다." ⓒ임재성 |
스펙 : 경찰과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몇 가지 단계들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의 과정이 트레이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직접 행동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소규모의 그룹을 통해서 서로를 알고, 함께 행동하면서 서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의사결정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가 없다면 아무리 큰 집회라도 혼자이며, 돌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실제 유럽의 경우 하나의 직접 행동을 위해서 수개월에 걸쳐 홍보를 하며,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행동의 내용과 방식을 정한다. 참가자들은 스스로의 조건에 맞춰서 연행을 감수하거나, 관찰자로서 밖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역할극도 포함되어 있는데, 실제 경찰과 대치했을 때를 대비한 준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경찰 폭력 앞에서도 공포나 즉자적인 대응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했던 방식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이러한 트레이닝이 반복되면서 보다 많은 이들이 비폭력 직접 행동을 익혀갈 수 있게 된다.
임재성 : 개인적인 경험이다. 용산 참사 이후에 집회에 참여해서 돌을 던지는 이에게, 이 돌이 다시 되날아온다며 말린 적이 있다. 그러다 경찰 프락치로 몰려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대중투쟁의 현장에서 비폭력 그룹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스펙 : 실제 대중 투쟁은 다양한 그룹이 함께 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행동이 돌출될 수도 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폭력 직접 행동의 그룹이 시위대 내부의 의사소통이 도모해서 보다 전략적인 행동을 함께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비폭력 직접 행동은 전술의 차원에서 폭력을 배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부의 의사소통과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사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이 국가의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가능하다. 물론 분노한 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역할은 어려운 일이지만, 비폭력 그룹이 노력해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고립된 이들은 폭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임재성 : 모든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그것의 맥락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간디와 킹 목사의 실천에서 유래한 비폭력 직접 행동이 유럽에서 정착되는 과정에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역시 비폭력 직접 행동이 구체적인 의제를 통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 행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트레이닝과 비폭력 직접 행동을 기대하겠다.
2009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소개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등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병역거부 운동을 활발히 펼치는 이스라엘, 콜롬비아, 러시아를 비롯한 10여 개국 20여명의 해외 활동가가 참가한다. 10일부터 14일까지는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시나리오 개발, 역할극 등을 하는 '비폭력 트레이닝'이 고양 일산 한강감리교회에서 진행되며, 15일에는 이 트레이닝에서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비폭력 직접행동'을 진행한다. 또 오는 16일 오후 1시부터 '전 세계 병역 거부운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의대 함춘회관 3층 대강당에서 국제 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에서는 그리스, 미국, 이스라엘, 푸에르토리코, 마케도니아, 에리트리아 등지에서 온 활동가들의 사례가 발표된다. 이어 이날 오후 7시부터는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 2층에서 평화콘서트 '밀리터리 인 더 시티'를 진행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09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http://corights.net/2009co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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