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하느라 '대리 후보 접수'를 했던 박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가장 늦게 공식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의원은 "위기에 빠진 민주당을 화합으로 살리고, 재집권의 토대를 쌓는데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원내대표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오랜 야당생활과 정권교체, 국정경험, 정권재창출 등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밑바닥까지 정치적 부침을 직접 경험했다"면서 "국정 전체를 조망할 능력을 갖췄고, 국정운영의 메커니즘도 나름대로 깊이 있게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경륜'을 내세우기도 했다.
▲ 10일 출마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박지원 의원. ⓒ연합뉴스 |
"이종걸 의원의 언행일치 존경"
당 안팎에서는 이와 같은 박 의원의 출마에 대해 후발 주자인데다 이렇다 할 계파적 성격의 인물도 아니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 자체를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이에 이종걸 의원과의 단일화도 점쳐지고 있다. 박 의원도 김부겸, 이강래, 이종걸 의원 등 다른 후보 3명 중 이종걸 의원을 '생각이 비슷하다'며 가장 높게 평가했다. 박 의원은 "야당은 보면 때로 말을 그럴듯하게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종걸 의원은 말은 강하게 하면서 행동으로 할 때도 중진이면서 초선처럼 열심히 행동하는 등 언행일치가 좋은 의원으로 존경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마라톤의 황영조 선수가 마지막에 치고 나가 우승했다"며 "내게 에너지가 더 축적돼 있어 치고 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종걸 의원과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의의 경쟁을 해야지 특정 후보에게 '당신은 약하니 나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정치 도의도 아니고 동료 의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386 중심의 당권파 쪽에 가까운 김부겸 의원에 대항하기 위해 이종걸-박지원 의원의 단일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고, 비주류·호남 쪽의 이강래 의원과의 연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대여투쟁 강화 등 선명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정동영 전 장관의 조기 복당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거나 적극적인 입장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구나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은 결선투표 방식이기 때문에 막판까지 뜨거운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박 의원은 '만약 결선투표에 가지 못하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콰이강의 다리를 몇 시 몇 분에 폭파하겠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과 같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DJ의 복심'이 당 전면에 나서면?
더 큰 관심사는 박 의원이 당 전면에 나서고자 하는 시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에 쏠리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이 됐으며, 복당 후에는 주로 조언의 역할을 했지만 항상 'DJ의 복심'이라는 이유로 말 한 마디마다 주목을 받 올 정도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민주당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잘 알다시피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하지 않았으나 일부 당 원로들과 의원들이 '지금은 박 의원처럼 중립적 위치에서 민주당을 구하고 정치력을 발휘해서 효과적으로 거대 정부여당과 투쟁할 사람이 나설 때'라는 권고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김 전 대통령께 당연히 보고를 드렸고, 김 전 대통령께서는 '만약 민주당에서 박 의원을 필요로 한다면 몸을 던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이어 "김 전 대통령께서는 '지난 1년의 원내 의정활동과 당 활동을 국민이, 또 민주당에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선 참여에 긍정적인 반응과 격려도 주셨다"고 말했다.
누가 '박지원 출마' 권유했나
박 의원의 경선 참여만으로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개입하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없지만, 박 의원 자체가 'DJ의 복심'이라는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박 의원의 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전후 맥락을 파악하는데 분주한 분위기다.
박 의원 출마를 권유한 쪽에서는 "재보선 이후 다시 갈등이 표면화 되는 당권파와 비주류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당력에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는데 박 의원이 적임자"라는 이유를 내세웠다고 한다.
이미 민주당에 '동교동계'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박 의원이 계파로부터 자유로운데다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 당 내 의원들 두루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감안할 때 거중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논란이 일 때 '공천론'을 주장하다, 정세균 대표가 공천불가를 결정하자, '선당후사'라며 전주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한 점도 일부 중진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세력 구도 변하나
박 의원의 출마에 대한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한 주류 측 인사는 "이번 출마 자체가 조언자로서의 원로 역할에 그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니냐"며 "조언자나 선배로서의 박 의원과 원내대표 주자로서의 박 의원에 대한 시선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 열리는 15일까지 펼쳐질 치열한 레이스가 흥미로워진 것은 물론, 경선 이후에도 민주당 세력구도에 새로운 바람이 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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