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선견지명과 후견지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내가 알기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신동이다. 그는 일곱 살 난 누이를 가르치는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세 살 때 건반악기를 익혔고,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고 왕족들 앞에서 연주했다. 불과 36년도 채우지 못한 짧은 생애 동안, (번호가 매겨진 것만 쳐서) 41편의 교향곡과 23편의 오페라를 비롯해서 길게 목록을 이어갈 수 있는 협주곡, 기악곡, 가곡, 디베르티멘토, 합창곡, 성가 등을 작곡해서 남겼다. 이런 인생을 보면서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경우는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 본다"는 속담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사례에 해당한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실제로 그를 "떡잎부터" 알아보고 음악가가 되도록 훈련을 시켰고, 그렇게 모차르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음악가 반열에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특이한 사례를 표준으로 삼아 다른 모든 사례를 바라보면 엄청난 환각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을 하라고 태어났는지"가 10대, 20대는 물론이고 때로는 30대, 40대, 그리고 심지어 70이 넘거나 죽은 다음에도 미지수로 남기 때문이다.
때로는 장차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상당히 그럴 듯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20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죽은 1901년 또는 그의 아들 에드워드 7세가 죽은 1910년, 많은 사람들이 영국과 독일 사이에 전쟁이 임박했다고 느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재무장관으로 있으면서 금본위제도 복귀를 결정한 1924년, 케인스는 경기침체를 예견해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부상하는 계기를 맞았다. 우리는 이런 경우들을 "개명된 추측"이라 부르든지, 또는 그보다 좀더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통찰력"이나 "선견지명"이라고 부른다. 논의의 초점을 간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통찰력이나 선견지명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 단, 일부 희귀한 경우에 나타나는 선견지명의 프레임을 보통의 모든 경우에 적용하면 곤란하다는 점만은 자세하게 따져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어린 소년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한 사회가 결정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테니 참 편리할 것이다. 더구나 계몽주의 이래 사람들은 과학의 예측력에 반한 나머지 사회정책에서도 과학적 기법을 쓰면 결과를 보장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역사진행을 예측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과학이 별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지 W. 부시의 국방장관이었다가 두 번째 임기 때는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등, 힘을 과시했기 때문에 9·11과 같은 테러가 예방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소리는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쳐들어간다고 했다가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한 이후에 둘러대는 핑계다. 하지만 적어도 얼핏 보면 말 자체는 그럴듯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그럴듯함"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따질 필요가 생긴다.
미국이 이라크에 쳐들어간 이후 테러가 다시 없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체니의 주장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라크에 쳐들어가지 않았다면 테러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는 적어도 그럴 확률이 틀림없이 높아졌으리라는 입장이 체니의 말에는 함축되어 있다. 그런 위험을 자기들이 예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에 쳐들어가지 않았다면"이라는 조건은 실제로 실현되지 않았으므로 단지 이른바 "역사적 가정"에 불과하다. 절대로 검증될 수 있는 얘기가 못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는 절대적으로 불투명한 공간에 속한다. 이런 절대적 불투명성을 착취하기로 하면,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을 무한정 만들어낼 수가 있다.
단, 체니에 반대하는 방향의 착취는 현실정치의 수사라는 차원에서 좀 수세적인 입장을 면하기 어렵다. "이라크에 침공하지 않았다고 테러가 있었으리라는 증거는 없다"고 하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지만, 정부의 역할은 논리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데 있지 않고 실제적 위험을 예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9·11 테러가 끔찍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정부가 예방하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 미국인들이 대부분 공감한다. 이런 경우 "뭔가 조치"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확증되어야 취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현실적인 세속 정치의 맥락 안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이라크 침공은 그러므로 만만한 상대 하나 골라서 뭔가를 보여준 셈인데, 미국인들 가운데 일부의 복수심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정부가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생색도 되었기 때문에, 당시 논란이 있었지만 의회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 사례의 교훈은 정책의 선택이라는 것이 선견지명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데보다는, 애당초 선견지명이라는 것이 다분히 사후적 설명의 논리와 분리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모차르트가 "음악을 위해 태어났다"거나, 또는 "음악의 신동"이라는 말은 그의 생애 36년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후견지명(後見之明, hindsight)에 힘을 받은 덕분에 누가 봐도 분명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1756년 2월말쯤 생후 한달된 아기 볼프강을 두고 누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단순한 덕담이나 바람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가 없고, 심지어 1791년 그가 죽었을 때도 누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애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에 나서 1791년에 죽은 모차르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로 수많은 전기와 수많은 찬사와 수많은 공연을 통해서 재구성되고 재조명된 모차르트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철학계나 문학비평계에서는 지금 내가 한 말이 전혀 새롭지 않을 것이다. 물론 철학계나 비평계에서도 실체와 이미지에 관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많겠지만, 적어도 내가 방금 표명한 입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치의식에서는 저런 입장이 전혀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후견지명으로서만 알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 시간을 맘대로 거슬러 올라가 앞선 시점에서 그런 선견지명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전제하면서, 더군다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불평하다 못해 자기 맘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슨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인재"였다는 타령이 대표적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연장되어 사고가 날 때마다, 범죄가 있을 때마다, 뭔가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만전을 기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나온다. 가능한 한 완벽을 기하자는 데 특별히 반대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인간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완벽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만만한 놈 하나 잡아 분풀이하고 치울 뿐 제도적으로 진전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예로 살펴보자.
▲ ⓒ뉴시스 |
그런데 왜 유홍준 문화재 청장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는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왜 그랬는지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책임을 지는" 일이 될 수 있는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식이라면 연쇄살인범이 나오면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되고, 경제가 파탄나면 경제장관 또는 대통령이 사임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도무지 그런 식의 책임이라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정부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임무 수행이지, 문제가 생겼을 때 물러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직이라는 것을 단순히 나중에 비석에 새길 개인적인 감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모를까, 어떻게 문제가 생기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을 지게 되는가 말이다. 나중에는 "숭례문 태워 먹은 유홍준"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방화범의 계획적인 범행을 유홍준에게 묻는다는 것은, 진주만 기습의 책임을 루스벨트에게 묻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논리다.
물론 문화재청장으로서 숭례문이 소실되었는데 자기 책임은 없다고 발뺌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 사람 본인으로서는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혹시나 자신을 포함한 어떤 직원의 직무유기가 없었는지, 그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한다. 또 일이 벌어진 다음에 보면 여기 또는 저기에 이런 또는 저런 일반적인 허점이나 비효율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숭례문은 그런 모든 허점이나 비효율 때문에 불탄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 방화로 말미암아 불에 탄 것이다. 경비업체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까지는 분명하지만, 해당 구청직원이나 문화재청에게 숭례문 소실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분풀이용 제물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주인은 인민이고 정부는 고용된 심부름꾼이다. 고용된 심부름꾼의 책무는 정해진 한도에서 그쳐야지, 심부름꾼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은 곧 그에게 무한 권력을 인정하는 셈과 같다. 범죄예방에 "만전"을 기하기로 한다면, 사회를 병영식으로 조직하고, 사람들의 거주이전과 활동을 제한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든 개인의 통행과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 자유사회는 그만큼 잠재적인 범죄자들이 음모를 꾸미기도 쉬운 사회일 수밖에 없다.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 대신, 정책적 지향과 계몽적 교육을 통해 악의를 버리도록 유도하는 한편, 범죄행위에 대한 치밀한 색출과 엄격한 재판으로써 범죄행위가 훨씬 손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자유사회는 유지될 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숭례문 화재 같은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문화재를 모두 철옹성 안에 넣거나, 사회를 병영식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보다도 못한 어리석음이다. 따라서 숭례문 화재와 같은 사고의 위험은 자유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분량이다. 어떻게 사회를 조직하고, 어떻게 제도를 정비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컨대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사고는 명백한 인재가 맞다. 시공에서부터 자재를 빼먹었고, 그런 건물을 허위로 준공검사를 해줬고, 더구나 며칠 전부터 붕괴조짐이 있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법을 어기고 책무를 다하지 않는 항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런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위반했거나 습관적으로 간과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를 유홍준 책임으로 모는 것은 전형적으로 후견지명으로 구성된 완벽의 이미지를 가지고 애먼 사람을 하나 제물로 삼는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자주 인용되는 유비무환이란 문자는 양약도 되지만 독약도 될 수 있다. 장차 닥쳐올지 모르는 우환에 대해 인간적으로 여건상으로 가능한 대책을 세우도록 인도하면 양약이지만, 아무도 충족할 수 없었을 완벽의 기준을 빗대어 무슨 일만 생기면 제물을 구하는 방향이라면 독약이다. 제2부에서 언급했던 마녀사냥과 가짜문제라는 암세포가 위치와 형상을 바꿔가면서 우리 사회의 의식을 좀먹는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3부에서 논의했던 평면적 합리주의의 병폐와 연관되는 주제로서, 이 제4부에서는 선험주의를 해부하고 비판하면서 극복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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