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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에서

[별, 시를 만나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이야진(IYAZINE)>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인다. 매번 첨부될 시인의 '시작 노트'와 천문학자 이명현 교수(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연세대 천문대)의 감상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공사장에서

지구가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허공에서 소리치는 저들도
떠돌이별쯤은 되리

어느 궤도를 돌아
별똥을 소진하며
운행해 왔는지
지상의 매달릴 것은 모두 버리고
허공으로 허공으로 떠밀려 간다

뉴타운 공사장 한편
포클레인이 내리찍을 듯
포위하고 있는 건물 옥상에서
제자리를 지키면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제 궤도를 돌고 있는 떠돌이별들

무너져 가는 변두리
담벼락 밑
희미한 낮별들이 내지르는 소리
지상에서는 못 듣는 자전(自轉)의 소리처럼
몰래 봄 풀씨들의 행성이 피어나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 파묻힌
벽걸이 괘종시계가 여전히 초침 소리를 내며
깨어진 액자 사진 속에서
파리똥과 쥐오줌 자국에 덮인
누렇게 바랜 일가족의 우주를
느리게 천천히 운행하고 있다



여기 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더 많은 공사를 하겠다고 하니 당분간은 공사장 분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나서 떠돌이별이 되어버릴 것이다. 슬픈 일이다. 더글라스 아담스의 <히치하이커를 위한 은하수 여행 가이드>에서 처럼 외계인들의 논리로 우리 지구를 철거하겠다고 할 때, 뉴타운을 위해서 철거를 강행하는 사람들은 그 때는 또 뭐라고 이야기를 꾸며낼까.



이사를 갈 때마다, 공사장 부근으로 옮기게 된다. 때때로 그것이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변두리 인생의 절묘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새로 전세를 옮긴 부근은 뉴타운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거의 철거가 끝나 서울에서 이만한 공터를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그래도 교회와 몇 개의 건물은 끝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흙이 벌겋게 드러난 공터를 어슬렁거리곤 하는데, 봄볕이 좋은 어느 한낮 풀씨들이 외롭게 남아 있는 건물 옥상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꼭 세상의 안정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의 운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이곳도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원주민들은 거의 다 쫓겨날 것이다. 내게는 봄 풀씨들이 그런 사람들의 행성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지만 변두리 사람들도 거대한 도시의 우주 속에서 자기들만의 궤도를 가지고 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그 떠돌이별들이 슬프게 자전하는 모습을 봄 풀씨를 통해 그려 보고 싶었다.

박형준은…

1966년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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