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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우린 그들에게 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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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우린 그들에게 빚이 있다"

[질주]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될 수 없다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9박 10일간의 여정을 계획하고 청와대 들머리에서 출발한 질주단이 질주 아흐렛날을 맞은 29일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들어 처음 찾은 곳은 이제 '비정규직탄압, 장기투쟁, 독한자본' 분야에서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기륭전자'다. 기륭전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이제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기륭전자의 새 사옥 앞에서 선전전을 했다. 경찰은 소음측정기를 가지고 와 소란을 떤다. 주민들한테 민원이 들어와 그렇단다. 평택의 동우화인캠에서 유독가스를 마신 노동자들이 아픔을 호소하며 현장조사 좀 해달라고 요청해도 눈도 꿈쩍 안 한 공권력들이다. 어제 인천의 성모병원에서 노동자들의 선전전을 방해하고자 병원측이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 주민이 항의를 해도 그냥 바라만 보던 경찰들. '공'자를 입에 붙이기도 민망한 자본의 '사' 권력들이 '인권'과 '공익'이란 말을 유린한다. 입만 벌리면 노사자율교섭을 외치면서 발만 뗐다 하면 사는 쏙 빼고 노동자만 탄압하는 경찰.

만일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말 당사자들만의 문제라면 우리나라의 노동쟁의는 훨씬 더 줄어들고 훨씬 더 짧게 끝날 것이다. 쟁의만 들어가면 투입되는 일방적인 공권력, 소환장을 남발하는 경찰, 해고를 정당하다 하는 검찰, 100만 원짜리 노동자에게 천문학적인 가압류를 행하는 법원, 입법부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본가들. 이런 입체적인 연결고리 속에 노동자들은 달랑 빈 몸 하나로 포위되어 있다.

이런 포위망 속에서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이 5년째 이 지난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사슬처럼 묶고 있기 때문이다. 뜯겨나가지 않고,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갑옷과 속옷을 꿰맨 황산벌의 병사들처럼 제 몸과 동료의 몸을 하나로 묶고 버텨온 기륭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고, 이것이 개별자본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가진 자든, 못가진 자든 우리는 모두 기륭의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빚이 있다.

▲ 기륭전자의 새 사옥 앞에서 자장면 잔치를 벌였다.ⓒ프레시안

기륭전자의 새 사옥 앞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독일원정투쟁보고대회와 문화제에 참석했다. 전자기타를 만드는 계룡의 콜텍과 통기타를 만드는 인천의 콜트는 같은 자본이 운영하는 회사다.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업계에서는 유명한 곳이고 회장이 한국서 손꼽는 부자다. 그런 부자 회장은 경영이 어렵다며 2007년 4월과 7월에 인천과 계룡에서 노동자들을 집단으로 해고했고 법원에서는 그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회사는 노동자를 복직시키기는커녕 갑자기 공장을 닫아버렸다. 기약 없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80만 원을 받으면서도 세계 기타시장을 주름잡는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던 순박한 노동자들이, 분신을 하고, 수십만 볼트가 흐르는 죽음의 송전탑에 올라 40일 동안 밥을 굶는 '악바리'들이 되었다. 온갖 투쟁으로도 답이 안 나오자 끝내는 콜트·콜텍 매출에서 중요한 계약들이 성사되는 독일의 메쎄악기쇼에 원정단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 "노! 콜트"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 불매운동을 벌이자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제품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오지랖들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다.ⓒ프레시안

이들은 빚을 내고 모금을 해서 노잣돈을 모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최저 수준으로 먹고 자며 8일 동안 콜트·콜텍 자본의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알렸다. 한국에선 얼굴한번 보기 힘들었던 회장은 우세스러웠는지 메쎄악기쇼 주최 측에서 주선한 면담에 응했다. 한 시간 가량 면담에서 박용호 회장은 '아내가 악질자본가 어쩌고 하는 소리에 뒤로 넘어간다'는 등 자기도 편치 않다고 했단다. 그러면서도 공장폐쇄에 대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며 이들을 복직시킬 뜻이 없음을 밝혔다고 한다. 대통령보다 더 만나기 힘들었다는 박용호 회장을 만난 노동자들은 여전한 그의 태도에 절망했다.

그러나 싸움은 끝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사연을 알게 된 독일의 노동자들이 온갖 매체를 통해 이 사연을 알렸고, 콜트·콜텍이 만든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은 거기에 담긴 노동자들의 절규와 피눈물을 알게 된 후 그 기타를 들지 않겠다고 했다. 내수보다는 수출이 주요 매출 수단인 콜트·콜텍 자본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가진 돈만으로도 3년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단다.

노동자들은 그런 자본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문자생산(OEM)방식으로 해외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기타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소리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불매운동을 벌이자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제품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오지랖들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기타를 통해 나오는 선율이 아름다웠던 것은 최고의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 이들 콜트·콜텍 노동자들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목숨들을 사지에 내몰고도 부끄러움과 죄의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자본가가, 하물며 생명 없는 것들에도 애착을 가지고 살려내려 애쓰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악기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해고 집회를 마치고, 이번에는 제 몸이 곧 악기인 국립오페라단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화문 문화관광부청사 앞으로 모였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예술노동자들이 처한 저임금과 해고위협 등은 여느 비정규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단장의 한 마디에 합창단이 해체되고 단원들 40여 명은 거리에 나앉았다. 70만 원 월급에 4대 보험도 없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문화예술공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찾아가는 공연, 중소도시 공연 등 공공재로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던 예술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문화관광부 청사 앞에서 항의공연을 하는 이들을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문화예술공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찾아가는 공연, 중소도시 공연 등 공공재로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던 예술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질주

물론 이들도 연대 품앗이를 한다. 연주자들답게 노래 연주로 연대를 하기 때문에 요청이 많다고 한다. 기륭의 여성노동자가 연대문화제 때 이들의 노래를 듣고는 '세례 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이들의 연주는 훌륭했다. 거리에서 하는 공연이니 반주나 음향이 제대로 일리 만무한데 녹음된 음악을 튼 것처럼 이들의 연주는 완벽했다. 문화예술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위해, 전국의 모든 비정규직 합창단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무너질 수 없다며 이들은 투쟁 70일을 맞은 오늘도 열심히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만이 이들이 가진 무기였고, 노래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힘이 셌다.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렸으니까. 집회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이들은 곧 다가올 메이데이에 부를 인터내셔널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랫말처럼 '대지에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이들을 막지 못할'것이다.

마지막으로 용산이다. '거기 사람이 있던 곳'. 비정규직 철폐와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며 전국을 돈 질주단이 용산으로 향한 것은 당연하다.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논리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논리는 철거민들을 계속 죽음으로 내모는 논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막가파식 철거와 막가파식 해고도 똑같고, 자본의 무한이윤 증식을 위해 힘없는 약자들을 내모는 행태도 똑같다. 자본은, 자본주의는 그렇게 인민의 '피'를 먹고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 마지막으로 용산이다. '거기 사람이 있던 곳'. 비정규직 철폐와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며 전국을 돈 질주단이 용산으로 향한 것은 당연하다.ⓒ질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잠시 정권의 성격을 두고 헷갈려하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진영이 주춤했던 때 유일하게 화염병을 들었던 곳이 바로 철거투쟁현장이었다. 어쩌면 노동자들보다 더 첨예하게 자본과 권력에게 맞서왔던 사람들, 그래서 어떤 죽음보다 더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넋이 아직도 용산 4가 학살현장을 떠돌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자는 없는 곳, 평화로운 애도 행진에도 길을 틀어막고 '시위대를 모두 채증하라'고 공개적으로 떠드는 용산경찰서의 수사과장을 보니 이 넋들이 제대로 눈을 감으려면 아직도 먼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열리는 '용산 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에 참석했다. 백발의 문정현 신부님이 우리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 달라. 음악인은 노래로, 화가는 그림으로, 신부는 미사로, 하다못해 분향이라도, 우리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이들과 함께 하자".

한 달 내내 미사를 드렸다는 신부님의 절절한 호소가 마음에 날아와 꽂힌다.

'경찰이 죽였느냐고' 오히려 뻔뻔하게 큰소리치는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의 말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도 글쟁이의 몫을 하련다. 작은 죄인이든, 큰 죄인이든 우리가 본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해서 반드시 죗값을 물어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으므로,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될 수 없으므로. 한대성, 이성수, 이상림, 윤용현, 양회성.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악 소리도 못 내고 죽어간 고인들의 명복은 말로만 빌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질주하는 사람들 ⑨ : "노동자라는 하나의 명제, 잊지 말아야"

질주 9일째,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29일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이 국회의원 한 석과 시구의원에 나란히 당선됐고, 한나라당이 한 석도 건지지 못하고 참패했다는 것이다. 질주 첫날부터 전 일정에 참가한 진보신당의 임영기 당원이 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 축하한다.

질주단이 서울에 입성한 오늘 의미 있는 일이 벌어져 기쁘다.

- 당원인데도 선거현장에 안 가고 질주단에 참여한 이유는?

우선 울산의 대중들을 믿었다(웃음). 물론 시기가 엄중한데 너 같은 선수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웃음). 하지만 비정규 투쟁은 하루 이틀로 끝날 수도 없고, 당이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정당이라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다. 당에서 낸 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했다.

▲ 질주 첫날부터 전 일정에 참가한 진보신당의 임영기 당원.ⓒ질주

- 진보신당이 질주단에 많은 기여를 한 것 같다.

초기에 동희오토 동지들이 제안 한 것을 적극 받았다. 재정과 인력 등 선거에 바쁜데도 함께한 당원들이 많았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질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우선 영세 비정규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나 역시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끝도 안 보이는 투쟁을 계속 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대구의 성서공단에서 느꼈던 건데 어려운 일일수록 재미나게 하는 게 필요하더라. 또한 비정규철폐 투쟁이 대자본만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노동자들 사이에 다른 시각들이 분명히 있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명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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