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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습 시위꾼'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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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습 시위꾼'을 위한 변명

[기고] 법의 저울이 공정하고 정의롭길 바랍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촛불 집회는 최대 인원 1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사건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가 표면적 이유였지만, 현장에서는 민주적 의사 결정과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이 외쳐졌다.

촛불 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의 노력도 갈수록 더해갔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참가자를 몰아가고 연행하고 구속했다. 특히 지난 1월 용산 참사 이후 벌어진 촛불 집회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경찰을 폭행했다"며 '상습 시위꾼' 수백 명을 잡아들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지난 4월 30일,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보안수사대는 촛불 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인 김문정 씨를 연행했다.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이유였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경찰이 싸움을 말리던 시민을 연행해갔다"며 재판장에게 공권력의 부당한 집행을 지적하고 공정한 재판을 호소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김문정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일 오후 열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다산인권센터라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저 역시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는 시위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아픈 곳 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제 신념과 희망을 담아 재판장님께 편지를 씁니다. 제가 아는 김문정이라는 친구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험한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기에 편지를 드립니다.

상습 시위꾼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상습 절도나 상습 도박, 상습 강도, 강간...같은 수준의 말입니다. 200명을, 300명을 색출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허나 아무리 들어도 억울하기 그지 없습니다. 집회나 시위는 절도나 도박, 강도, 강간 같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위법한 행위(집시법을 위반하는)에 해당하더라도, 강도나 강간과 같은 범죄와 같은 수준으로 나열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나라는 집회나 시위를 강도와 강간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키기 어려운 수준의 집시법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어기는 불법에 해당하는 행위를 스리슬쩍 폭력행위와 등치시키면서 이미지 작업을 한지도 오래입니다. 그래서 집시법을 어긴 사람들은 졸지에 폭력집회를 한 사람이라는 오해까지 덮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폭력과 불법은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헌과 위법의 지위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촛불 집회 이후에 정부 여당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나 봅니다. 거리의 민주주의를 내 버려두면 정권이 위태롭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촛불이 옳았다, 틀렸다를 떠나서 확실한 사실입니다. 촛불 집회라는 위법한 국민적 행위가 합법적 지위의 정부권력을 뒤흔들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 이후, 촛불을 들었다는 아주 간단한 행위로 인해 수 천 명, 아니 수 만 명의 국민들이 사진 채증과 연행 등으로 수 십 만원의 벌금에서부터 수 십 일 간의 구속 처벌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느 날부터, 경찰관을 때리는 시위꾼이라는 기사가 조중동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면서, 상습 시위꾼은 폭력배라는 이미지가 등치됩니다. 그리고 경찰들의 성능 좋은 채증장비에 의해 중복 촬영된, 또는 어느 체포된 네티즌 친구의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와 이메일에 등록된 많은 사람들이 연행됩니다. 특수공무방해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자가 되어서 말입니다.

촛불총각 김문정, 그를 위한 호소

촛불총각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김문정도 어느날 경기도경 보안수사대의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를 연행한 수사관들은 시위용품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그의 집을 이 잡듯이 압수수색했습니다. 도대체 시위용품으로 보이지 않는 책들도 모두 압수되어서 경찰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런 책을 읽으니 폭력시위를 한다는 개연성 없는 이유로, 그와 같이 사는 친구의 노트북과 컴퓨터와 책들이 모두 압수수색 목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는 결코 사람을 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몇 번인가 서울에서 그가 실랑이 벌이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서 싸움을 뜯어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왜냐면 그는 오지랖이 넓고 순진한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참견 좀 그만 하라고 잔소리도 몇 번을 했습니다. 그러다 니가 다친다고 했지만, 그는 늘 괜찮다고 누나나 저리로 가라고 다친다고 오히려 내 등을 떠 밀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는 늘 그렇듯이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린다고 하다가 그 좋은 경찰 장비에 여과없이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번듯한 학벌이 있지 않아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따박 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을 다니지는 않지만 건설 일용 노동자로 하루 벌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좋다고 말하던 친구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 단체에 월 3만원씩 후원하겠다고 돈을 주기에, 말도 안 된다고 회비를 1만원씩 받고 있습니다. 그저 촛불을 드는 일도, 우리 같은 단체의 후원을 하는 일도 모두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착한 총각입니다. 그는.

저는 그를 많이 구박했습니다. 왜 그렇게 목소리만 크고 말이 많냐고, 공부도 하고 실속 좀 차리고 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누나 요즘 내가 목소리도 작아지고 조신해 지지 않았냐고 아양을 떨고는 했습니다. 잔소리가 지나치면 불그스레한 얼굴이 더 붉어져 새침하게 삐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재판장님. 아마 그의 범죄 사실을 판단할 때, 그가 찍힌 동영상 테이프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싸움이라는 것은 사람이 얽혀서 큰 소리가 오가고, 말리는 자나 싸우는 자나 분간을 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 싸움의 현장을 찍은 경찰의 테이프라면 그는 마치 피해를 당했다는 경찰관의 팔을 비트는 우람한 청년, 폭력적인 시위꾼으로 보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동영상을 정말 자세히 들여다 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정말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싸움을 말리느라 큰 목청을 울리고 있는지를. 만약 그가 맞고 있는 경찰관을 구하려다가 구속된다면, 그 마음의 억울함과 분노, 절망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는 인권활동을 하면서 피의자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무수한 뭇매를 맞고는 합니다. 아무리 죽일 죄를 지었다 한들, 그가 국가에 의한 피해자가 되면 또한 그에게도 있는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맞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와 정반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누군가가 당하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고 늘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법도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엄격하고 공정하며, 실체와 진실을 통해서만 판단되는 것이 법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람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신념 때문에 거리에 나서서 세상을 배웠고, 이제 막 사회적 걸음마를 시작한 그에게 여전히 이 세상의 통치권력은 전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확신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믿음과 희망을 그가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찰 폭력에 대한 구제는 없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저도 많이 맞습니다. 경찰들의 곤봉과 방패. 그걸 피한다 하더라도 폭언과 비아냥, 인격적 모독. 무장한 국가 권력 앞에서 내가 얼마나 왜소한가를 끊임없이 깨닫는 것이 바로 거리입니다. 그러나 저나 제 동료나 또는 경찰폭력에 의한 무수한 피해자들은 그들이 당한 피해에 대한 권리를 구제받을 길이 없습니다. 경찰들이 구비한 엄청난 양의 채증장비나 첨단 기술, 권력에 뒷받침된 혐의자를 찾을 수 있는 무수한 방법들.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집시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거리에서 당하는 수모가 또한 시민들을 매번 거리로 내모는 악순환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반체제 단체, 조직들만 잡으러 다니는 줄 알았던 보안수사대까지 동원되어 소위 상습 시위꾼을 잡도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경찰 내부의 실적이 그런 적극성을 발휘가게 만드는가 봅니다. 경찰이 눈에 뜨게 드러나는 사회는 그 자체의 정화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역사의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우려는 바로 제복을 입은 공권력이 무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감시하는 사회라는 이 치명적 위험이 많은 이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그가 정말 무고한지 아닌지는 재판을 통해서 또한 다투게 되겠지만, 그가 폭력을 휘둘렀는지 싸움을 말리고 있는지 판단되지 않는다면, 무죄추정이라는 원칙에 의해 그에게 구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을 받을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그의 신분을 보장하라면 제가 제 보잘 것 없는 이름이라도 걸고 보장하겠습니다. 그가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정확히 변론할 수 있도록 그가 매번 재판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도록 도와주겠습니다.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더 소중히 생각한 마음이 지금 갈 곳 없는 국민들, 의지할 곳 없는 국민들에게 필요합니다.

분명,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저는 그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거리에 선 무수한 시민들, 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힘없는 자들의 간절한 호소가 공명되는 곳, 법의 저울이 그들 모두에게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라는 희망을 다시금 재판장님을 통해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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