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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지막 손님

▲ 용산 참사 현장. ⓒ뉴시스
용산 한강로 1가, 하늘을 찌르고 선 주상복합 빌딩 아래 시장과 상가건물들이 납작 엎드려 있다. 겨울해가 중천에 떠올랐어도 시장에는 손바닥만 한 햇볕 한 줌 없이 온통 응달졌다. 음력설을 며칠 앞둔 단 대목, 왁자지껄한 시장 통의 활기가 언제 적 얘기냐는 듯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골목마다 뜯겨나간 가게 천막들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시장 뒤편 양문교회 정문 앞에 용산한강로1가 철거대책위원회 조끼를 입은 서너 명의 사내들 모닥불을 쬐고 있다. 레아호프 큰 사장과 작은 사장, 삼화복집 양 사장 그리고 통복떡집의 천 사장이다. 남일당 강 사장이 오늘 교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교회 앞을 지키고 있었다.

"거지 동냥 수모도 유만부동이지, 어째 사람을 세워놓고 그래 괄시를 하노!"

용다방 남순 씨가 시장 골목에 서서 교회를 향해 핏대를 세운다. 모처럼 받아본 푸짐한 밥상도 팽개치고 남일당 강 사장을 만나러 갔던 그녀는 놀부 마누라 주걱에 뺨 맞은 것처럼 서럽고 분한 심정을 삭일 수가 없다. 빨간 털모자를 야무지게 눌러쓴 그녀의 손에는 떡 사발이 들려 있다. 눈물을 쏟을 판인데도 남순 씨는 용케 떡 한 사발을 챙겨들고 나왔다. 영하 10도로 뚝 떨어진 기온, 사발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매운 날씨다. 시장 골목에 흩어져 있는 두부모판, 냉면 그릇, 양팔 저울, 고무 자배기,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 찢겨진 장판, 철제 금고, 시멘트 더미, 영업용 냉장고 따위를 요령 있게 비켜가면서 가벼운 것들을 발로 걷어낸다. 남순 씨가 그 정신에도 떡 한 사발 들고 찾아가는 곳은 시장 끄트머리 허연 김이 새어나오는 잔치국수집이다. 잔치국수집은 폐허가 된 시장 귀퉁이에서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멸치 국물에 신 김치를 올린 국수와 시래기를 삶아 파는 선례 씨는 몇 해 전 칠순을 넘겼다. 시장상인들은 그녀를 잔치 이모라 했다. 멸치와 다시마, 대파로 국물을 우려낸 2500원짜리 국수를 상인들은 즐겨 찾았다. 국수에 올리는 고명은 송송 썬 신 김치 하나뿐이지만 출출할 땐 요기로 그만이었다. 선례 씨는 배달을 오가면서 배추 겉대와 무청을 줍기도, 얻기도 해서 시래기를 말려 팔기도 했다. 응달에 누렇게 말린 시래기를 뼈가 무르도록 삶아 내놓으면 금방 동이 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모 뭐 하능교? 떡 좀 잡수이소."

들통이 절절 끓어 넘치고 한 양재기 삶아낸 시래기에서 김이 오른다.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어데 갔는고?"

떡 사발을 가겟방에 내려놓고 들통 뚜껑을 열어본다. 뿌연 수증기가 시야를 가려 언뜻 분간이 안 된다.

"가스 아깝구러……. 옴마야, 깜짝이야."

남순 씨의 등 위에서 잔치 이모 선례 씨가 양동이를 양손에서 내려놓고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양동이에서 출렁댄다. 백발을 그대로 퍼머한 머리가 바람에 날려 선례 씨는 하얀 털실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검은 눈동자가 남순을 말끄러미 바라본다. 축 처진 눈꺼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어린 화승이 불심으로 먹을 갈아 찍은 듯 뭐라 형언하기 힘든 눈빛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고요한 힘이 느껴진다.

남순 씨가 들통 뚜껑을 황급히 내려놓고 고함치듯 떠들어댄다.

"광천한우 옆에 양문교회 있잖아 예. 점심 때 이전 예배 본다꼬 그라길래. 우예 됐는고, 좀 따지볼라꼬 가봤지예."

선례 씨는 들을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언어장애인이다. 청력에는 이상이 없기 때문에 굳이 큰 목소리를 할 이유가 없지만 남순 씨는 늘 그런다. 지금처럼 잔치 이모에게 켕기는 일이 생기면 괜스레 더 큰 소리다.

"예배 끝나면 빈 입으로 안 보낸다 싶어 점심도 때울 겸 해서요. 이모도 남의 손 밥 한 끼 묵지 뭐했능교. 아무도 오라 카는 말이 없었는 갑지예?"

남일당 강 사장에게 당한 수모는 쏙 빼놓고 밥 타령만 늘어놓는다. 선례 씨는 그러는 남순 씨를 또 한참 뚫어지라 바라보더니 시래기 양재기에 앞에 쪼그리고 자리를 잡는다.

"내 같은 거는 조합장이 만나주기를 하나. 강 사장이 조합에 한몫 붙었다 하대요. 양문교회 장론지 집산지 감투 쓰고 있다 카길래 낯짝이라도 보고 따지볼라고요."

선례 씨는 물컹한 시래기를 한 움큼을 쥐고 물기를 짠다. 아닌 보살하기로 시래기만 뒤적거리고 있지만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궁금해 속으론 안달이 났다. 남순 씨가 아니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 귀동냥이 쉽지 않았던 선례 씨였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아는 남순이 가게가 반 동강난 후부터 도무지 남처럼 구는 게 선례 씨는 그렇게 섭섭할 수 없었다. 달포 만에 나타난 남순 씨가 강 사장을 만나러 갔었다는 말에 반색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뭐를 저래 끓이능교? 내사 보이 맹물이구만."

선례 씨는 벌떡 일어나 들통을 열어본다. 남순의 말대로다. 가스불을 줄이고 멸치 두 주먹을 넣고 뚜껑을 닿았다가 양재기 앞에 앉는 선례 씨는 다시 화들짝 놀라 일어나 대파 서너 뿌리를 넣고 또 쪼그리고 앉더니 다시 일어나 다시마 한 장을 분질러 넣는다. 국자로 휘젓고 내용물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맘이 놓인다. 수십 년 국수 팔아온 사람 같지 않게 허둥대고 불안하다.

"멸치 국물 내는 갑네요, 이모? 용역한테 국수 판다는 이야기가 그라믄 참말이네요. 이모가 알아서 이카능교? 함밥집이라도 내줄까봐 그래요? 왜 이래요!"

선례 씨는 어제 저녁 일이 떠올라 남순이 뭐라 뇌까리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국수를 맹물에 말아 내놓았던 것이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쓸어 넣던 용역들이 갑자기 국수 그릇을 엎어 버리고 길길이 날뛰었다. 병신이 육갑한다, 세입자대책위와 짜고 골탕을 먹이려고 이런다, 온갖 욕을 퍼부었다. 선례 씨는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이러면 그 자리에서 천막을 걷어버리겠다고 침을 뱉고 가버린 후 선례 씨는 국물 한 숟가락 맛을 본 다음 아차 싶었다. 골탕을 먹이다니, 누가 누구의 골탕을 먹인단 말인가!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선례 씨는 용했다.

"조합이나 구청에서 누가 한번 왔어요?"
"으으으"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선례 씨가 목울대에서 밭은 음을 끌어낸다.

"용역 새끼들만 밤마다 와서 국수 삶아 내라 하능교? 가게를 반동가리로 때리 뿌순 인간들이 지그들 참 해믹이라꼬 천막을 도로 쳤으이, 고맙다고 절을 해야 옳은지 내는 당최 모르겠어요. 이모요, 그래 그 새끼들이 밤마다 쇠막대기 끌고 참 마실 옵니까?"

잔치국수집은 반나마 철거를 당했다가 용역들의 저녁참을 대기 위해서 다시 장사를 하게 되었다. 시장 철거가 시작되기 전 몇 번 국수를 사 먹어본 용역들이 서로 의논이 있었는지 용역들 스스로 뜯어낸 천막을 다시 치고 바람막이도 만들더니 국수를 팔라는 거였다. 억지춘향이 따로 없었다. 철거용역회사는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세입자들을 협박하기 위해 용역들을 상주시켰다.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저녁, 용역들은 철거된 상가와 폐허가 된 시장 골목을 쇠파이프를 끌고 돌아다녔다. 세입자들을 위협하고 자기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텅 빈 건물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쇳소리는 비명처럼 소름끼쳤다. 용역들은 그렇게 어슬렁거리다가 잔치국수집에 모여 저녁참을 먹었다.

"가게를 반동가리 내놓고 이 엄동설한에 어데 가서 장사하라고, 책임지는 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지그들 끼리 그래, 돈뭉치 척척 갈라 내뺄라카는지. 아이고, 하느님이요, 있능교, 없능교!"

남순 씨가 선례 씨의 속내까지 쏟아낼 듯 악을 쓰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할 때다. 갑자기 등 뒤에서 물벼락이 쏟아진다.

"이게 뭐고!"

고무장갑으로 꽁꽁 묶어둔 수도에서 스프링클러처럼 사방으로 물이 튄다. 선례 씨는 부리나케 자루가 달린 바가지를 수도꼭지에 씌운다. 물은 선례 씨의 털신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와 이카노? 뭘 우예야 되지!"

선례 씨는 외마디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도꼭지를 한 손으로 가리킨다.

"뭐……. 뭐요? 이게 왜 지 혼자서 이래 날뛰노!"

수도꼭지를 수도에 끼우는 동안 물은 두 사람의 얼굴을 난타한다. 간신히 수도꼭지를 끼워 물이 튀는 건 멈추게 했지만 여전히 틈 사이로 물이 샌다. 선례 씨는 비닐봉지, 고무장갑을 가져와서 이를 앙다물고 수도꼭지를 묶는다. 여러 번 해본 솜씨다. 갈라 터진 손등이 새빨갛다. 갑작스런 물벼락에 얼이 빠진 남순 씨는 가겟방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훔친다. 흠뻑 젖은 털모자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려 얼굴을 적시는데도 그건 모르고 연신 얼굴만 수건으로 쓸고 있다.

"얼었다 터졌는가,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이구만. 시장 바닥에 누가 있어야 봐주던지 하지."

선례 씨는 가겟방에 들어와 전기장판에 불을 올리고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남순 씨가 무릎걸음을 간신히 떼어 장판에 앉아 벽에 쿵 머리를 기대고 맥없이 지껄인다.

"수도까지 사람 잡아묵을라꼬 지랄이네!"

모자에서 흐르는 물이 벽을 타고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흘러내린다.

"어데 물이 새나?"

짐작도 못하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남순에게 선례 씨는 여태 젖은 모자 쓰고 있는 것도 몰랐냐고 귀밑으로 축 처진 모자를 장난스럽게 잡아당긴다.

"홈빡 젖었네! 머리도 엉망이 됐겠네. 우야믄 좋노!"

후다닥 일어나 거울 앞에 선 남순 씨는 낭패 만난 표정이다. 마스카라와 화운데이션이 물에 번지고 뭉개져 누르께한 살색이 군데군데 버짐 핀 것처럼 드러나고 모자 아래 동그랗게 말아 멋을 부린 머리카락은 아래로 축 쳐져 버렸다. 오늘따라 남순 씨는 입술을 새빨갛게 바르고 머리도 정성을 들여 말아 올렸다. 오늘부터 노래방 도우미로 나설 작정이었다.

"개시도 안 했는데 꼬라지 참 좋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 일당이라도 벌지 않으면 끼니 걱정을 하도록 사정이 딱하게 되었다. 선례 씨는 한쪽 벽에 세워둔 선풍기 모양의 전기 난로 전원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남순의 눈치를 본다.

"물 안 나오면 국수는 어예 삶아예? 그래서 물 길어 왔능교? 어데 가서요?"

잔치 이모는 벽에 붙은 명함 한 장을 가리킨다.

"복집? 그 끝까지 갔다오능교? 길바닥이 얼어서 빤질빤질 하등만은, 용역들이 거기 가서 길어오라 하대요?"

가겟방 한쪽 벽에는 상가 명함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남들에게 남순 씨는 잔치 이모가 한 자라도 더 깨우치라고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선례 씨와 의사소통이 좀 수월해지기 위해서 그랬다고 보는 게 옳다. 남순 씨는 이 시장에서 벌써 7년째 수레를 끌며 커피 장사를 팔았다. 용다방은 커피 수레 이름이다. 처음엔 수레를 끌고 오며 가며 커피를 팔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잔치국수집에 수레를 받쳐두고 배달 장사를 했다. 수레를 끌고 다니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주로 전화를 해서 국수를 배달시키면서 커피도 같이 주문했다. 외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선례 씨를 두고 사람들은 갑갑증을 냈다. 용다방이 들어오고 상인들은 훨씬 수월하다고 남순 씨를 칭찬했다. 그러나 선례 씨가 용산시장 통에서 국수를 말아 판 건 30년이나 된 일이다. 용다방이 들어오기 전에도 국수 배달에 아무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선례 씨는 남순이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걸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들은 처음부터 같이 장사를 했던 사람들 모양 손발이 잘 맞았다. 선례 씨가 국수배달 나갔다 돌아오면 남순 씨가 커피를 타 나가고 자리를 비운 사이 전화주문을 받고 그걸 명함 위에 적어두고 국수 그릇을 찾아오는 길에 시래기를 주워 팔고 살았다.

남순 씨가 아직 김이 오르고 있는 떡 한 귀퉁이를 떼어 입에 넣는다.

"목구멍에 팥고물이 딱 달라붙는 게 커피 한잔해야 되겠네요."

여태 가게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용다방에서 커피, 크림, 설탕을 종이컵에 차례로 넣는다. 물이 끓는 동안 남순 씨는 가겟방에 걸터앉아 잔치 이모에게 떡을 떼어 주고 자기도 한 입 베어 문다. 그러고 보니 남순 씨는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다. 물이 끓는 소리가 쉭쉭 거린다. 자루가 긴 차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스텐 쟁반에 올려 잔치 이모에게 내민다.

"떡이 덜 다네. 남일당 옆에 안경집 한쪽 귀퉁이에서 화장품가게 하는 송이 엄마가 떡을 해왔다 카대예. 그 여자가 로숀 한 병 외상 안 하는 노랭이라도 교회는 억수로 섬깄다 아입니까. 보상을 이천 오백인가 삼천 만 원 받았다 카든대, 그 돈으로 어데 가서 가게를 얻겠어요?"

선례 씨는 남순의 손에서 떨어지는 팥고물을 손바닥으로 쓴다. 그간 정을 생각하면 남순 혼자 조합이사를 만나러 간 건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일이었다. 한바탕 퍼부어주고 싶은데, 이럴 때일수록 선례 씨는 더욱더 고요해질 뿐이다. 기뻐도, 슬퍼도, 화가 나도,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선례 씨의 외마디를 말 취급도 안하니 오히려 고요해질밖에. 남순 씨는 잔치 이모가 그저 쳐다보기만 할 때 오히려 기가 수그러든다.

"얼굴이 반쪽이 되고 입술에 꺼멓게 딱지가 앉았어요. 끌탕을 하면서 여기 저기 돈 빌리고 가게 알아보고 댕기느라고. 그 정신에도 목사 영은 거역 못하는 갑대요. 여전도회장 아입니까. 그 교회에서 화장품 좀 팔아줬겠지요, 감투를 쓰면 떡고물이 떨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이라요. 목사가 하나님의 집이 이사를 가는데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영을 내리가 떡을 했다 하대요. 교회도 날에는 고사떡 해 묵는 갑지요?"

떡을 오물거리는 남순 씨 입술이 비웃음으로 일그러진다.

"참, 양문교회 얘기 들었어예?"

무슨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알지, 선례 씨는 그저 눈만 깜박인다.

"양이 한 마리, 두 마리 이래 자꾸 기어 들어와서 교회가 미어터지라는 뜻으로 교회 이름을 양문이라 했다 카대예. 그 교회 목사가 조합에다가 영업보상을 신청했는데, 뭐라 했는지 알아요? 교인 머릿수대로 영업보상을 해 달라 그랬대요. 교회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아입니까. 교인이 양 대가리라요! 양 대가리로 끝났으면 양반이요. 내사 정확하게는 모르지만은, 교회 터가 몇 백 평은 될 거예요. 그 땅 명의를 언제 그랬는지, 목사가 몽땅 지 앞으로 다 해서 한 입에 톡 털어 넣을라고 했다지요, 아마. 하도 이 바닥에 흉악한 소문이 많아서 땅문서 확인 안 한 다음에야 고소당할 말인지 모르지만......"

주워들은 얘긴지 슬그머니 꼬리를 뺀다.

"나도 요번에 알았는데, 교회는 목사가 임자가 아니라 하대요. 지금 그 목사가 지그 아버지가 목사 하다가 암으로 일찍 죽고 그 자리 3년 전에 물려받았다 아입니까. 유산 탄탄하게 물려받았네, 그랬드만. 그기 아이라 교회 땅은 장로들 하고 공동명의로 딱 묶어놔서 혼자서 못 건드리는 갑대예. 목사는 월급쟁이처럼 다달이 돈 받고 설교하고요. 그런데 남일당 강 사장이 사바사바를 우째 해가지고 교회 땅문서가 몽땅 다 목사 앞으로 가고 목사도 조합 이사로 들어가서 아파트 장사 할라고 구청에 와이로를 많이 믹있다고 쑥덕거리대요."

선례 씨가 말조심하라고 남순 씨 허벅지를 철썩 한 대 때린다.

"시장 사람들이 말말이 그 소린데, 뭐가 무서워서 말을 못해요! 교회 장로들이 사기죄로 고소한다고 난리 벅수를 치고 교회가 두 개, 세 개로 쪼개지가지고 교인들도 뿔뿔이 흩어지니까, 세입자 콘테이너에 모인 사람들 하는 말이 포크레인으로 안 때리뿌사도 저절로 알아서 쪼개졌다고 흉이 한 바가진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납니까! 조합이라는 게 본시 땅 많은 놈이 오야진데 집터 크기로 보자면 교회 당할 게 없능기라요. 젊은 목사가 한 몫 할라꼬 안했겠어요. 희한한 세상이라예. 포크레인으로 한번 딱 뒤집어 엎으이 교회 목사나, 건물 주인이나, 깡패 두목이나 다 조합 이사로 둔갑을 해버리고!"

천막을 찢어버릴 듯 겨울바람이 설치고 지나간다.

"강 사장 개발돼야 된다꼬 설치면서 구청장이랑 밥 묵고 하드마는 묏자리를 잘 했나, 하느님한테 빌기를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빌었나. 몇 층이라 했어요, 여기 아파트가?"

선례 씨는 부동산 유리창에 붙은 늘씬한 아파트 사진이 퍼뜩 떠오른다. 40층이라고 쓰여 있다.

▲ ""맞다, 40층이라 했제. 내한테 딱 세 평만 주면 얼마나 좋겠노." ⓒ프레시안
"맞다, 40층이라 했제. 내한테 딱 세 평만 주면 얼마나 좋겠노. 커피전문점은 세 평만 있어도 되거든요. 내 커피 맛이야 시장 사람들 혀에 딱 달라붙었다 아입니까. 강 사장도 용다방 커피가 호텔 커피보다 더 입에 붙는다 하믄서 오매 가매 입에 달고 살드만. 강 사장이 워낙 마당발이라서 내가 서비스로 수월찮게 해바쳤어요."

새빨간 입술을 흘낏거리는 선례 씨가 짓궂게 새끼손가락을 든다.

"노인네가 별 소리를 다하네. 내가 강 사장 만날라고 입술 바르고 머리 올리고 했는지 아능교. 복장 터지는 소리 고만하소 마. 노래방에 가서 탬버린이라도 뚜디리야 쌀 한 봉지라도 팔아묵어예. 강 사장이 뭐라 했는줄 알아요? 하루에 3만원 벌이로 치가 장사 몬해 묵게 된 거를 보상을 좀 해주야 안 되겠나, 여기 아이믄 어데 가서 벌어먹고 사냐고, 우리 아저씨 중풍으로 자리보전 한 지가 인자 10년도 넘었는데. 남일당 강 사장이 그 내력을 모르는 사람이라예? 내 보고 좋은 데 있으믄 그만 팔자 고치라고 눈을 찔끔 거리던 인사가. 지가 언제부터 조합 이사 곤리를 누맀다고. 아줌마는 보상에 해당이 안 됩니다, 영판 모르는 사람처럼. 커피 장사야 서울 시내 시장이 한 두 개인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난전이니까 재개발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없다는 기라요. 강 사장이 교회에 용역소장이랑 와서 목사 사택에서 한 상 받아 묵고 있대요.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서 살리달라고 애원을 해도 사람을 쳐다 보도 안 하고 안 그카요.

가게가 있나, 권리금이 있나! 용다방 저 구루마가 남일당 변소보다 값이 없으이. 그래도 내 용다방 해서 문디 같은 서방 병수발에, 가시나 하나 있는 거 학교 보내고 했어요. 급식비 한번 안 밀맀어예. 등더리에 뭐라 쓰고 나부대는 사람들이 그 카등만, 세입자도 생존곤이 있다. 용다방 구루마가 우리 식구 생존곤입니더. 엠뱅할 세상인심이 생존곤은 값은 안 쳐주네예!"

남순 씨의 남편은 한참 좋던 신혼에 그만 뇌졸증으로 쓰러져 반신을 쓰지 못한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 식모살이로 전전하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했다. 남의집살이로 눈치구덩이가 됐을 법도 했건만 남순 씨는 애교와 싹싹함으로 남자들을 설레게 했다. 남편은 그 시절 전문대까지 나오고 제법 펜대 굴리는 사무직 노동자였다. 제 자식들 반만큼이라도 공부시킬 요량 없이 식모로 부리던 친척들은 죽은 부모 은덕이라고 입들을 놀렸다. 하지만 그녀 팔자에 들었던 볕은 서향 집 겨울 해보다 짧았다.

"보상 받을 가게는 없어도 여기서 장사하고 벌어 묵었는 거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하늘님이요, 땅님이요 증인 댈 게 뭐 있어요! 모두들 삼시 세끼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커피로 입술 안 훔치믄 쇠바늘 돋는 중 알드마는."

상가 경기가 좋을 땐 시장 경기도 따라 올라갔고 자연 용다방도 매상이 올랐다. 자판기가 점포마다 없는 곳이 없었지만 커피를 마시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세상 푸념이며 이웃 간의 이문 없는 흉이며 할 수 있는 곳이 용다방이었다. 커피 없이 못사는 건 난전에 나앉은 노인네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된 장사판에서 늘 손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그네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건 용다방 남순 씨뿐이었다. 게다가 피곤에 절은 몸을 깨워야 했기에 진한 카페인은 하루에도 몇 잔씩 필요했다.

"이모도 인자 장사 그만 해요. 경찰이 시장 입구도 막는다, 안 합니까. 누구 좋은 일 시킬라꼬 국수를 삶능교? 쇳빠질 놈들 저녁마다 참 해믹인다꼬 이모 앞에 떨어지게 십 원 한 장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는 줄 아능교! 보시를 할라카거든 제대로 하소 마!"

선례 씨도 남순 씨만큼 알고 있다. 용역들이 잔치국수집을 이용하다가 결국에는 철거해버릴 것이라는 것쯤은, 무엇보다 좋은 일, 궂은 일 함께 했던 상인들에게 못할 짓 하고 있다는 것을 왜 선례 씨가 모르겠는가. 환이만 다녀가면 선례 씨도 천막을 걷을 생각이다. 환이는 선례 씨가 열여덟에 낳은 유일한 혈육이다. 환이는 고시공부다, 신학공부다 하며 도서관에서만 마흔을 넘겼다. 번번이 실패한 끝에 방랑벽이 들어 여기 저기 헤매고 다니는 모양이다. 일 년이고 이년이고 불쑥 찾아와 가겟방에서 며칠씩 시체처럼 잠만 자다가 기약 없이 훌쩍 떠나는 환이 에게 선례 씨는 모아두었던 통장을 탈탈 털어 국수 판 돈을 쥐어주곤 했다. 환이 나타나면 편한 팔자를 타고나 도사 흉내를 내고 산다고 남순 씨는 부아를 끓였는데 선례 씨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남순의 등을 떼밀어 천막 밖으로 쫓아버렸다. 잔치 이모가 환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순 씨가 보시 운운하며 비위를 긁은 것이다.

"다들 살아 볼기라꼬 별 짓을 다하구만. 내 팔자나 이모 팔자나."

선례 씨의 낯빛이 영 안 좋아지자 남순 씨는 어조를 가라앉히고 빈 커피 잔만 잘근잘근 씹는다. 가겟방에 내려앉은 답답한 침묵을 걷어내 준 건 양문교회 앞을 지키고 섰던 남자들이다. 복집 양 사장과 호프 작은 사장 그리고 떡집 천 사장이 들어선다. 강 사장을 못 만나고 허탕 친 사람들이 잔치국수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아이고 마 양반되기는 글렀네. 안 그래도 커피 한 통 들고 콘테이너 갈라고 설참에……."
"용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할라구. 그래 장산 여태 하는 거예요? 버티는 거예요?"

양 사장은 남순 씨의 사설을 자르고 잔치 이모에게 묻는다. 선례 씨는 맹탕이 된 전기장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입만 놀리고 있는 남순의 등짝을 치고 종이컵으로 종주먹을 댄다.

"이모도 삼대구년 만에 용다방에 손님 왔는데 그냥 보낼까봐 그라능교. 장사는 무신 장사라예."
"아이고 춥다. 쥐새끼 겉은 놈이 어느 구멍으로 내뺐는지. 아침나절 내내 이게 무슨 고생이여. 동태되겄어. 용다방 우리 커피 곱빼기로 한 잔씩 돌려. 이모도 한 잔 드리고. 올라가기 전에 커피라도 한잔 대접혀야지."

천 사장이 먼저 신을 벗고 비좁은 가겟방에 엉덩이를 붙인다.

"얼른 들어가 보이소. 이모나 내나 우째야 좋은지 초죽음이라예. 올라가다니 어데를요? 조합에 가봤자 깡패들만 천지고 청와대라도 찾아갈라고요?"

뜨거운 커피를 건네주고 남순은 가겟방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가겟방이 꽉 차서 엉덩이 한쪽 걸칠 자리도 없다.

"청와대 민원은 안 해봤나. 포크레인 쓰는 기술로 대통령 된 사람인데 오죽 할라구요."

양손을 겨드랑이에 찔러 넣으며 양 사장이 쓰게 뱉는다.

"건설 경기가 있어야지 지지율이 안 내려간대요. 세입자들이 사면초가입니다. 안 가본 데도 없고 이제 하소연 할 곳도 없어요. 소송을 걸어 놨지만 어디 우리 편이 있어야지요."

호프 작은 사장은 차분하게 양 사장의 말을 잇는다. 좁은 가겟방에는 한동안 뜨거운 커피를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잔치 이모가 방구석에 밀어두었던 떡접시를 들어 팥고물이 지저분하게 묻은 모서리를 엄지손가락으로 한번 훔친 다음 세 사람에게 내민다.

"이전 예배 떡이라꼬 화장품 송이 엄마가 했다카대예. 점심은 했어예?"

남순 씨가 통복떡집 천 사장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핀다. 천 사장은 떡을 흘낏 보더니 양손을 조끼 주머니에 찌르면서 벽에 기대 눈을 감아 버린다. 선례 씨가 작은 사장의 손을 떡 접시로 끈다.

"아니 생각이 없습니다. 할머니 지금까지 버텨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로 몇 달은 굉장히 힘들거예요. 다른 데도 이런 일이 많대요. 우리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작은 사장은 그새 많이 변했다. 바람 많이 타는 난전 장사치들처럼 까칠하고 눈에서 스산한 바람마저 돈다. 외모가 훤칠하기도 했지만 낮에 쉬고 밤에 일해야 하는 술장사 특성 때문에 햇빛 구경을 못해 더 귀공자 같았다. 아들 내외가 밤에 장사하고 아버지가 장을 봐오고 청소를 맡아 한 레아호프는 큰 사장 내외가 30년 동안 갈비집을 하다가 막내아들에게 넘겨준 것이다.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작은 사장은 구청, 법원, 재개발 조합 그리고 용역과 상대하느라 말이 아니게 얼굴이 상했다. 시도 때도 없는 용역들의 협박과 폭력 그리고 경찰의 수수방관으로 인해 얼굴엔 공포와 한이 비친다.

"초록이 동색이더라고 세입자는 세입자 밖에 못 믿겠고, 철거민 사정은 철거민 밖에 안 도와주더라 이 말이유."

눈을 꽉 감고 있던 천 사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자로 입을 뗀다.

"인자는 영락없이 다른 사람들 하던 양으로 우덜도 헐 수밖에 읎어. 더 가볼 데가 있나, 이약을 들어주는 놈이 있나. 천지 사방에 깡패들이 완장 차고. 아, 이모 이런 무법천지를 본 적이 있슈? 빨갱이 잡듯이 잡도리를 하니 젠장을 헐. 내 마누라, 내 자식 지키자면 별 수가 읎어. 화염병에 불붙이는 것버텀 배우고, 천막을 치든 망루를 올리든 우리끼리 수를 내야지! 어이구! 용다방 밖에 물 있으면 한 잔 주어."

천 사장은 엉덩이를 엉거주춤 세우고 남순에게 종이컵을 내민다. 잔치 이모가 천 사장의 종이컵을 받아 남순에게 준다. 머리 떼고 꼬리 떼어버린 천 사장의 말에 선례 씨는 왠지 불안하다.

"무슨 말인지 의논지게 얘기를 안 하고 천 사장은......"

천 사장이 한 입에 물을 털어 넣는다.

"복집이 얘길 좀 혀. 입에 군내 나것어."

천 사장이 양 사장 옆구리를 찌른다. 양 사장은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참 씻는다.

"어 그러니까, 남은 사람들이 고생들이 많아요. 장사할 때야 잘 몰랐지요. 내가 여기서 시작한 지 이모보다야 한참 후에 일이니까요. 시장 통에서 평생 살았고 여기서 나가면 갈 데도 없다면서요. 그거야 시장 세입자든 건물 세입자든 남은 사람들은 다 한가지니까 긴 말이 필요 없겠는데, 여기 호프집도 살림집까지 한 건물이라 기가 막히는 사정입니다. 다들 사정 얘기하자면 연속극을 써도 모자랄 판인데. 요는, 저놈들이 우리 세입자들을 산 사람 취급 안 한다는 겁니다. 국수 가게 이거는 등기도 없이 천막에 붙어 있다가 가겟방 넣고 수도, 전기 끌어왔다면서요?"

방바닥만 내려다 보던 양 사장은 겨우 선례 씨와 눈을 맞춘다.

"그거사 이모가 벽돌 한 장, 두 장 올리고. 의지가지없는 사람이 먹고 살라고 그캤는 거를 나라에 맥이 살리라고 그랬나. 물세며 전기세, 주민세 세금 꼬박 꼬박 내고, 월세도 안 빼묵고 다 챙기가대요, 주인이. 아무리 천막에 붙어서 야금야금 가게를 냈어도 세 안내고 누가 붙이주능교? 듣자니 가게 꼴이 되니까 시장 주인이라고 나타나서 세내야 한다, 그랬다는데."

"그런데 세도 그렇고 물세며 전기세 그게 다 주인이 달라는 대로 그냥 주었지 영수증도 없고 계약서도 없어서 이주비, 영업보상비 해당이 없다 그거야. 세입자대책위에서 남은 사람들 가지고 죽 보니까 여기하고 용다방은 말짱 십 원 한 푼도 저놈들이 생각도 없을 거라 그 말이지."

"흔한 말루다 무주공산에다 나가리판이다 이 말씀이여."

양 사장이 어렵게 짚어가는 이야기에 천 사장이 또 되지도 않는 문자를 쓰자 작은 사장이 마른 웃음을 짓는다.

"버젓이 영업을 하고 살았는데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요, 법이. 조합은 그걸 최대한 악용해서 용역들을 앞세워 내몰구요."

이야기의 감을 잡은 선례 씨가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에 기대고 있던 천 사장을 제치고 서랍을 뒤져 공책 하나를 사람들 앞에 펼친다.

"어이구 왜 이려?"

난데없이 떠밀려 당황한 천 사장 들으라는 듯 남순 씨는

"아따 이모는 여 있는 사람들이 누가 세내고 산 거 모르나. 천날만날 그거를 내 보이면 뭐하요."

잔치 이모를 나무란다.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겉장이 누렸게 변한 공책이다.

"가게세, 전기세, 물세 낸 거를 저래 적었는가 봐요. 시장은 물세, 전기세 한 몫에 안 나옵니까. 그래 냈다 안 냈다 시비가 많아서 그랬나봅니더. 내사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데예."

선례 씨가 양 사장 턱 밑으로 들이미는 공책엔 숫자가 난수표처럼 어지럽다. 호프 작은 사장이 선례 씨의 공책을 받아 천천히 넘긴다. 고개를 빼고 공책을 넘겨보던 천 사장이 공책 위에서 손을 휘젓는다.

"아닌 말루다, 이런 거는 용역들 불쏘시개 밖에 안 되는 거여. 내 보이지도 말어."

양 사장이 호프 작은 사장의 손에서 노트를 빼앗아 서랍에 다시 집어넣어 버린다.

"억울한 심정 씹어봐야 뭐 하겠어요. 우리가 잔치 이모 보러 온 건 이제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용역들한테 국수 팔면서 장사 계속 하고 있다는 거 우리도 다 알아요."

잔치 이모가 손사래를 치며 상체를 뒤로 물린다.

"아따 장사하는 사람이 부처님 돈은 받고 염라대왕 돈은 안 받나. 우리도 장사할 때 관에서 오는 손님 다 받고 그랬는데 뭘 그려."

천 사장은 잔치 이모를 흘깃 보고 능청을 떤다.

"뭐 그놈들만 오는 게 아닌지 내가 알고, 워낙 여기서 장사를 오래 해서 아직도 시래기 사러 오는 단골들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아직 영업하는 사람이 더러 있고, 또 그놈들 보란 듯이 장사라는 건 우리도 대 환영이에요. 문제는 용역놈들이 점령군처럼 여길 들락거리고 이모를 포로 취급한다는 겁니다."

선례 씨의 흰자위가 새빨갛게 물든다. 작은 사장이 잔치 이모의 무릎을 쓸면서 조근 조근 설명한다.

"내일부터 경찰이 더 심하게 사람들 못 들어오게 할 겁니다. 용역들 말고는 시장 안으로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할 거예요. 시래기 사러오는 단골들에게 미안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네요. 아무리 단골이라도 경찰 방패 뚫고 시래기 천 원 어치 사러 오지는 못할 겁니다. 영업을 계속 철거도 공사도 늦어져 우리쪽에 유리하죠. 그것도 싸움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모네는 이상하게 용역들 가게가 되어버려서 대책위도 참 곤란하답니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용역놈들 하고 더 크게 싸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세입자대책위는 잔치 이모가 이제 그 놈들 상대로 장사 그만 하시라는 겁니다. 아닌 말로 우리가 저기 남일당 옥상에다 뭐라도 짓고 싸우는데 여기서 용역들 국수 말아 주면……. 말이 아니지. 말이 안 돼."

양 사장이 선례 씨처럼 손사래를 친다.

"이모가 그런 거까지 알고 그랬것어. 돈 욕심에 그런 것두 아니것구. 저승 야차보다 더 한 놈들인데 뭐. 말도 못 허는 노인네를. 천막을 뜯었다, 붙였다. 암튼 내일이라도 정리하고 대책위 콘테이나로 와요. 용다방도 이모랑 같이 말여."

세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좁은 방에서 다리를 옹송그리며 앉았던 터라 모두 움직임이 굼뜨다. 그 사이 잔치 이모가 신발도 꿰지 않고 뛰어나와 삶아서 사리 지어 둔 국수소쿠리를 방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내민다. 손가락으로 연신 젓가락 질 시늉이다.

"아녀. 우리는 지금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혀.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녀."

천 사장이 잔치 이모의 등을 다독거린다.

"아니에요. 오늘 저녁 장사까지만 하세요. 준비도 다 하셨는데. 그럼 안녕히 계세요."

작은 사장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다.

"인자부터 돕고 살자는 얘기요. 내 말에 맘 쓰지들 말고. 우리가 없어도 얘 엄마들이랑 의논하구요."

소쿠리가 기울어져 국수 가락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선례 씨는 세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어이구 참 그냥 갈번했네. 여기 커피값. 용다방 거까지 다섯 잔이야."

양 사장은 천 원짜리 다섯 장을 세어서 남순에게 내밀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드시고 가면 좋겠구만. 이모 성의도 있는데……. 문디 지랄 한다고 와 이래 눈물은 나노."

비닐 천막 밖으로 흐릿하게 세 사람의 솟은 어깨가 흔들린다.

저녁 9시, 폐허가 된 시장은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아 까만 어둠뿐이다. 된장을 넣고 지진 시래기와 김치 한 보시기, 찬밥 한 그릇으로 저녁을 에운 선례 씨와 남순 씨는 전기장판에 등을 대고 선잠을 들었다. 평소 저녁을 챙기러 가는 남순 씨도 오늘은 가겟방에 드러누워 버렸다.

"으허헛"

사람도 짐승도 아닌 시커먼 덩어리가 이모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는 것 같았다.

"뭐꼬? 와 그래요? 자다가 뭐가 쓰였구만. 국수 처 먹으로 올 시간이 넘었는데 와 이래 조용하노. 오늘 노래방 개시는 안 되는갑다. 그 놈들 마주치기 전에 내도 일어서야지."

남순이 하품을 물면서 중얼거린다. 선례 씨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나가 물솥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마른 국수를 꺼낸다.

"개미 새끼 하나 없는데 국수를 또 삶아요?"

선례 씨는 세입자 대책위 컨테이너 쪽을 가리키고 벽에 붙어 있는 복집, 떡집 명함을 짚는다.

"이모가 맘에 많이 그카나 보네. 그라믄 내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고 올게요. 쪼매 있으소."

신발을 꿰는 남순 씨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 예, 압니다. 예, 10분도 안 걸립니다. 예-에, 예-에. 이모, 손님이 기다린다고 지금 퍼뜩 오라해서 가봐야 돼요. 국물 뜨겁게 해서 삶은 것만 갖고 가이소."

입술을 새로 바르고 분을 꺼내 도닥거리던 남순 씨는 어느새 비닐 사이로 사라져버린다. 희미한 전등 아래 선례 씨의 작은 몸도 천천히 움직인다.

다음날 오후 남순 씨는 잔치국수집으로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다. 퉁퉁 부은 뺨이 시퍼렇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아무렇게나 흘러내린다. 넋이 반이나 나간 모습이다. 남순 씨가 어제 저녁 노래방 도우미로 받은 첫 손님은 하필 용산 4구역 철거 용역들과 경찰들이었다. 고기 구운 냄새가 꽉 들어찬 노래방에 들어선 남순 씨는 단번에 그들을 알아봤다. 용역 하나도 그녀를 알아보더니 용다방 마담이라고 반색을 하며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이판사판 주는 대로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밤이었다. 아랫도리를 더듬는 갈퀴 같은 손들과 욕지거리가 기억 속에서 끊어졌다 이어진다. 거길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생지옥에 갔다 온 듯 끔찍하다. 칼바람이 전신을 감싼다. 조각난 장판, 뜯겨진 베니어판이 길바닥을 설설 긴다. 저만치 남일당 옥상에 망루가 올라가고 있다. 건물 위에서 검은 복면을 쓴 한 남자가 양손을 머리 위에서 오무린다. 뒤 이어 다른 남자들이 나타나서 똑같은 모양을 한다. 남순 씨는 미친 여자처럼 피식 웃는다.

▲ "건물 위에서 검은 복면을 쓴 한 남자가 양손을 머리 위에서 오무린다. 뒤 이어 다른 남자들이 나타나서 똑같은 모양을 한다. 남순 씨는 미친 여자처럼 피식 웃는다. " ⓒ뉴시스
"와 저라노. 어얄라꼬……. 영판 양 사장이네."

잔치국수집 천막에서 허연 김이 새어 나오고 있다. 남순 씨는 갑자기 뜨거운 멸치 국물에 국수 한 그릇이 간절히 먹고 싶어진다. 그러면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이 외롭고 막막한 심정이 좀 가실 것도 같다. 남일당에서 용역들이 폐타이어를 태우기 시작한다. 연기가 2층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멍하니 보던 남순 씨는 걸음을 잔치국수집으로 옮긴다.

천막 안에서 선례 씨는 새로 끓인 국물에 간을 맞추고 있다. 가겟방에는 방금 삻아낸 쫄깃한 국수가 그릇마다 푸짐하다. 선례 씨는 남일당 옥상으로 국수를 올리려는 참이다. 어제 저녁 세입자대책위에 저녁참을 날라 주면서 선례 씨는 생각했다. 잔치국수집 마지막 손님이 30년 단골들이라면 파장 운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기서 처음 국수를 삶을 때가 아득하게 떠올랐다. 큰 욕심 없이, 앞날을 걱정하지 말고 그저 매일 정성스럽게 국수를 말아 팔자던 그 마음이었다. 그때 그 마음으로 남일당으로 가자고 생각하니 선례 씨를 누르던 두려움과 기다림도 차츰 사라진다. 용역들이 아무리 드세게 굴어도 선례 씨는 남일당으로 국수를 올리리라 마음먹는다. 부서진 용산시장에 어둠이 내린다. 남일당에서 흘러나오는 폐타이어 태우는 연기가 시장을 검게 검게 싸고 돈다.

<지은이 소개> 김정아

인권재단 사람에서 활동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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