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말했다. 학원 심야교습 단속에 대해 "교과부에서 실무자 수준으로 대화하는 중인데 준비절차가 없이 성공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곽승준 위원장에 대해 "앞으로 자제할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교과부 장관만이 아니다. 교총 회장 출신인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곽승준 위원장을 향해 "대학교수 출신이라 현장을 잘 모른다"며 "현실성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다르다. 곽승준 위원장의 주장과 교과부·한나라당의 주장이 엄청 다르다. 거의 상극에 가깝다.
▲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
궁금해진다. 그럼 곽승준 위원장은 뭘 믿고 저렇게 나서는 걸까? 그는 공명심에 사로 잡혀 앞뒤 안 가리고 나대는 돈키호테인가? 아니다. 그렇게 보기엔 발언 강도가 너무 세고 발언 빈도가 너무 잦다. 곽승준 위원장은 어제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또 다시 말했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의 학원을 중점 단속대상으로 삼겠다면서 "1천만 학부모와 학생들이 우리 편이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정권 안팎의 반발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무소의 뿔처럼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분석한다. 곽승준 위원장이 이주호 교과부 차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성안한 점에 주목한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학원 심야교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 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로 한 점에 주목한다. 정권의 핵심 3인이 물밑조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교과부·한나라당 '전체'가 아니라 '일부'와 사선에서 조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니 궁금한 게 하나 더 생긴다. 핵심 3인을 뭉치게 한 원동력은 뭘까? 정두언 의원은 "겁이 없어서 나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뱃심을 키운 자양강장제는 뭘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곽승준 위원장이 그랬다. "3-4년 후 이 정부는 결국 교육과 부동산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다. "나 같은 교수 출신에게 자리 준 것은 혁신을 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고도 했다.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권의 최고 책임자, 즉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보니 정정할 게 눈에 들어온다. 곽승준 위원장은 "사교육 규제는 전두환 정권도 밀어붙였는데 왜 우리가 못하나"라고 반문했지만 비교가 한정됐다. 전두환 정권뿐만 아니라 김영삼 정권도 닮아가고 있다.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내밀었던 김영삼 정권의 '깜짝쇼'를 본뜨고 있다. 최고 통치권자의 밀명을 받고 밀실에서 방안을 만들어 느닷없이 들이댄 김영삼 정권의 이벤트를 따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좋다. 잘 될 수만 있다면 어찌되든 좋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금융실명제의 족적을 보면 안다. 시행된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유명무실하다. 정관계 인사의 검은돈 추문이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게 차명계좌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던 게 바로 금융실명제다.
전철을 그대로 밟을 공산이 농후하다. 주무부처 장관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라면 교육공무원의 자발적 참여는 기대하기 어렵다. 위에서 찍어누르니 시늉이야 하겠지만 거기서 그칠 공산이 크다. 안병만 장관의 말처럼 "(위에서)자제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또는 '힘 빠질' 그날을 고대하면서 엉덩이만 들었다 놨다 할 가능성이 높다.
검은돈 왕래도 더 성해질 것이다. 법으로 금지하는 순간 불법이 될 테니 음지에서 '차명과외'를 하고, 그 대가로 검은돈을 주고받는 풍조가 만연할 것이다. 물론 그 주체는 가진 자가 될 것이다. 권세 있는 자가 금융실명제를 유린했듯이 가진 자가 사교육 근절 구호를 비웃을 것이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취지와 실행이 따로 놀았던 금융실명제를 되짚으면서 비교할 필요가 있다. 고관대작의 차명계좌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가진 자의 '차명과외'는 나와 내 자식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점, 그래서 취지를 공감 받지 못하고 실행이 공평하지 않으면 어차피 안 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다간 1천만 학부모와 학생을 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곽승준 위원장은 "개혁은 부드럽게, 점진적으로, 조심스럽게, 사려깊게, 점잔 빼면서, 겸손한 태도로 해서는 결코 진척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교육문제만큼은 사려 깊게, 겸손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마저 제기했다. MB교육의 철학은 규제완화인데 왜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느냐고 의아해했다. 바로 이 점이다. 대학입시 자율화와 고교유형 다양화를 통해 사교육 유발효과를 극대화해놓고선 사교육을 틀어막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행태가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부드럽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MB교육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더듬어야 한다.
국민이 보기에 곽승준 위원장이 총대를 멘 사교육 근절책은 '사정책'이다. 정부의 행정계통을 밟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私)정책'이고, MB교육의 '정체성'에 대해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邪)정책'이며, 학생과 학부모를 더 골병들게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사(死)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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