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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잔인한 쌍용차 노동자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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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참으로 잔인한 쌍용차 노동자의 봄날"

[질주]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쌍용차 노동자들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질주 이레째.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발표한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에 출근 선전전을 하기 위해 나섰다. GM대우,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까지 요즘 자동차 산업이 난리다. 수출도 내수도 경기불황을 비껴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들 거대자본들이 선택한 것은 하나같이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소식을 접하고 나는 두려웠다. 1998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진 정리해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울산에는 그 때의 고통스런 기억 때문에 자다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뇌에는 잊고 싶은 일을 정말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 노동자들이 겪은 십년 전 대량해고의 기억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십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밤, 아무렇지 않은 듯 밥을 먹고 편안히 누운 잠자리에서 불쑥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아마 또 다른 십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은 그렇게 가끔 노동자들의 밤을 괴롭힐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문을 들어서니 양쪽으로 늘어선 초록색 텐트촌이 보인다. 텐트촌 앞에는 현장의 대의원들과 선봉대들이 줄을 지어 서서 출근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정리해고 철회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질주단과 노동조합에서 나눠주는 선전물을 받아 들고 관심 있게 읽어 본다. 대공장이 대부분 그렇듯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없다. 마지못해, 정말 먹고 살기 위해 고단한 일상을 시작하는 가장들의 처진 어깨, 회색빛 작업복, 회색빛깔 공장은 그야말로 절망 3종 세트 같다. 더구나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까지 발표된 마당이니 그 흉흉함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둘 중 하나는 해고란다. 셋 중 하나, 넷 중 하나도 아닌, '나 아니면 너'라는 이 잔인한 현실 앞에서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설 자리가 없다. 노동자들도 그걸 알고 있다.

▲ 나란히 선 쌍용자동차 비정규직과 정규직. ⓒ질주

선전전이 끝나고 쌍용자동차노동조합과 쌍용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이 질주단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비정규직지회는 작년부터 이미 정규직의 전환배치에 따른 해고를 꾸준히 당해 온 상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호소했다. '오늘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는 곧 정규직에 대한 해고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함께 싸우자'. 그러나 정규직 노조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은 곧 현실이 되었다.

어느 사회건 약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옳다. 약자들은 늘 가장 낮은 수준의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사회 최저선의 기준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약자가 되는 것이고, 최저선이란 그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가장 낮은 수준의 요구다. 일자리를 보장해 달라, 최저임금을 보장해 달라,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그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때로는 임금삭감까지도 받아들이면서 고용을 보장해달라는 것은, 고용이 보장되어야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 선의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요구인 것이다.

쌍용자동차노조도 3조 2교대, 자동차생산에 대한 긴급자금 등에 대한 노조 담보 1000억 원 등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는 자구안을 내면서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말하는 '뼈를 깎는 고통'은 그냥 수사가 아니다. 온갖 도둑질로 법정에 섰을 때만 '뼈를 깎는 마음으로 참회 한다'해 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900억짜리 전용비행기를 사는 재벌 총수의 수사와는 뼛속부터 다른 것이다.

▲ "쌍용자동차 위기의 공동의 4적은?" 노동자가 위기를 불러온 것일까? ⓒ질주

장기투쟁 사업장과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이 많은 질주단의 특성 때문인지, 질문은 주로 비정규직과 공동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쏠렸다. 만일, 회사가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로 이 상황을 끝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그게 가장 염려가 됐다. 지금 정규직 노조의 집행부는 작년 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분들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해 온 분들이 많아 비정규직노조가 거는 기대가 남다른 상황이라고 한다. 정규직노조는 그런 상황에 대해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총고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갈라치기 하려는 어떤 시도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믿고 싶다. 제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믿고 싶다.

현장에 어지럽게 널린 선전물 가운데 '다함께'라는 조직에서 낸 유인물이 눈에 띤다. 공장점거 파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98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대량해고에 맞서 공장점거 투쟁을 벌인 덕에 사측의 1538명 해고 시도를 277명으로 최소화했다" 적고 있다. 화가 났다. 277이란 숫자에 담긴 한국노동운동의 모순과 부조리와 질곡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 최소화됐던 277명은 바로 현대차정규직의 해고를 막기 위해 노조가 나서서 해고에 합의한 비정규직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다. 가장 힘없고 약한 대상, 자신들의 파업 때 시장에서 시래기를 주워 나르며 밥해먹이던 여성 노동자들을, 자신들이 살기 위해 가차 없이 버린 잔인한 정규직 노조. 277명은 그런 숫자다. 노동자로서 가장 기본인 연대와 단결의 원칙을 저버린 점거투쟁이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싸움이었다. 부디 쌍용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는 정규직 노조를 보는 일이 없기를 모두 한 마음으로 빌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바로 노동청 앞에서 열리고 있는 동우화인캠 해고자들의 선전전을 찾았다. 노조탄압 백화점으로 불리는 동우화인캠은 포승공단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업이다. 직원이 2000명이나 되는 곳인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절반씩이다. 화장실도 정규직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정규직들 성과급 받을 때 비정규직은 볼펜 한 자루 받는 현장, 발암물질을 들이마시면서도 건강검진 한번 제대로 못해본 암울한 상황을 바꿔보고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간부들에 대한 해고와 노조탄압이 뒤를 이었고 지금 위원장과 사무국장은 구속 중이다.

▲노동청 앞에서 열리고 있는 동우화인캠 해고자들의 선전전을 찾았다. 어딜 가나 그렇듯 주무부서인 노동청은 모르쇠다. ⓒ질주
어딜 가나 그렇듯 주무부서인 노동청은 모르쇠다. 선전현장에서 수첩에 노동자들의 발언을 적고 있는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났다. 노동자들의 이런 요구에 대해 주무관청의 담당자로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공식적으로 저 분들을 만난 적이 없어 요구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취할 조치가 있으면 취하겠다고 하는 관료식 답변. 그런 태도 때문에 노동자들이 공장도, 시청도, 국회의사당도 아닌 이 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것인데…. 노동자 편에 선 노동부를 우린 언제쯤에나 볼 수 있을까.

선전전을 마치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나는 방송 차에 올라타 포항 시내를 누비는 자전거 질주를 구경했다. 쌍용차비정규직지회와 동우화인캠, 이젠텍 해고자들과 쌍용차시민대책위 분들이 오늘 질주에 함께 했다. 질주단은 비정규직 철폐 깃발을 꽂고 시장과 대형마트와 시내 곳곳을 다니며 비정규직 철폐와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를 외쳤다.

하늘은 높고, 햇볕은 뜨겁지 않을 정도로 이마에 내려앉았다. 이 좋은 봄날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정리해고라는 매서운 한파에 잔뜩 웅크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봄소식은 언제쯤에나 전해질 수 있을까. 2646명을 해고한다는 것은 그에 딸린 가족 만 명이 함께 무너지는 일이다. 아빠가 해고 된 어떤 아이는 학원을 끊을 것이고, 정리해고자의 자식이라는 놀림 속에 날로 말 수가 적어질 것이다. 어떤 아이는 급식비를 못 내 밥을 굶고, 더 큰 아이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둘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오늘을 책임지지 못한 어느 가장은 목을 맬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참으로 잔인한 봄날이다.

질주하는 사람들 ⑦ : "쌍용차에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선전전을 하는데 발언자로 나오는 그를 가리켜 동우화인캠의 해고자가 '입이 상당히 거친 분'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이 순수청년이던 자기를 이렇게 만들었다며 '거칠게' 항변하는 쌍용자동차비정규직지회 유제선 교선부장을 만났다.

- 정규직의 공동투쟁과 총고용 보장 약속을 믿고 싶다.

어떤 우려인지 잘 안다. 물론 우리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들의 희생을 막아 온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300명 정도 되는 비정규직을 정리해서 정규직이 살아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또한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꾸준히 싸워 온 분들이 집행부를 꾸렸고, 지금 정규직의 회의에도 우리가 함께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공동투쟁, 총고용 보장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의지를 믿는다.

▲ 쌍용자동차비정규직지회 유제선 교선부장. ⓒ질주
- 현재 비정규직 상황은 어떤가?

회사는 계속 비정규직들을 안심시킨다. 2646명에 비정규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회사는 정규직을 잘라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려 할 것이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비정규직 100%인 동희오토 같은 공장이다. 노노갈등을 일으키려 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싸울 것이다. 오늘 정규직과 공동투쟁하기 위해 주요 거점인 농성천막을 쳤다. 조합원 정서 때문에 쉽게 하지 못했던 일인데 정규직 노조와 합의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 정규직 노조가 의지를 많이 보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현 정규직 집행부와 거의 한달 차이로 임기를 시작했다. 우리 쌍용의 비정규직지회는 투쟁을 해 왔지만 간부들 모두 전과가 없다. 다른 비정규직지회들이 모두 놀란다. 정규직노조의 방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국에 모범이 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공동투쟁 사례를 만들고 싶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만의 싸움으로는 안 된다. 실업자, 대학생, 금속노조, 자동차4사 모두 나서서 이명박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자만 희생시키는 이 구조를 바꿔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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