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역단체 교육감 선거의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교육과 선거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과거 학교 운영위원 등 교육계 이해관계자들에 의한 간선제가 이제 주민 직선제로 바뀌었다. 이전에 비해 선거 비용도 많이 들고 정당과 사회단체가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들면서 교육 이슈가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2008년 7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의 치열한 대결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보수 성향의 공정택 후보에 대한 '강남 몰표'로 상징되는 계급 투표의 성향이 강화되었다. 그 후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율을 고려해 사실상 교육감 선거는 보수성향 후보가 압도적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4월 8일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진보성향 후보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광역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현 교육감이었던 김진춘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김상곤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상곤 후보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그런데 후보 등록 불과 45일 만에 기적처럼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투표했는가?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대부분의 재보선 선거와 마찬가지로 12.3%에 그쳐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점에서 각 후보 진영의 조직 동원율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대부분 선거에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교사들과 교육계, 학부모 관련 조직, 보수성향의 관변단체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 그리고 정당에 참여하는 핵심 지지층들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무늬만 직선제이고 실제로는 간선제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투표 결과가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결과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09년 4월 18일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KSOI 여론조사를 보면,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투표 성향이 다른 선거와 약간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개 선거는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투표율이 높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의 응답자 분포를 보면,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가운데 연령이 낮고, 학력이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도 상당히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는 젊은 고학력층 고소득층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지역에 따른 투표율의 차이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지역별 득표율을 보면, 진보성향의 김상곤 후보는 수원, 성남, 의정부, 안양, 부천, 광명, 안산, 고양, 의왕, 구리, 용인, 화성, 시흥, 군포, 하남 등 도시 지역에서 크게 승리했다. 특히 경기도의 안양, 부천, 안산, 고양 등 주요 대도시에서 15% 정도 우세한 결과는 놀랄 만하다. 심지어 다른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던 수원, 과천의 우세도 주목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의 김진춘 후보는 경기도의 외곽 농촌지역에서 주로 승리했다.
투표성향의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왜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번 K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투표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시간이 없다'(42.9%), '투표해도 달라질 게 없다'(23%),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13.9%)로 순서로 나타났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자들 가운데 '시간이 없다'(44.3%)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낮은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이 투표장에 반드시 가야겠다는 동기가 약화된 사실을 보여준다.
왜 진보성향 후보가 승리했는가?
당선된 김상곤 후보는 진보성향의 대학교수로 전교조와 진보적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김상곤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MB교육 심판'을 전면에 내걸고 투표에 참여했다. 진보진영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결과를 MB식 특권교육에 대한 심판으로 보고 향후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평가로 분수령이 될 수 있을까? 왜 진보성향 김상곤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4월과 10월 재보선에 이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정치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뉴시스 |
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을까? 분명한 해답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층이 촛불 시위 이후 붕괴되어 사실상 15%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촛불 시위 당시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15%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맞다면 최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의 상승은 투표장에는 가지 않는 '소극적 지지층'의 일시적 증가에 불과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큰 관심을 끌지 않아 보수층이 투표장에 나올 동기부여 효과가 약했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정치상황에 따라 다시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온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예측은 앞으로 다가올 선거 결과에 의해 검증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높은 조직동원율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다음 요소로 대개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 후보들의 '구도'(frame)라고 말한다. 선거란 상대적인 권력게임이기 때문에 상대 후보의 강세, 성향, 숫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구도가 진보진영에 크게 유리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진보진영은 후보단일화를 이룬 반면, 보수진영은 4명의 후보로 분열되었다. 게다가 김상곤 후보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노동조합 뿐 아니라 중도 시민단체와 민주당 등 범야권 정당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선거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선거 구도가 유리하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면 진보진영은 주경복 후보로 단일화를 이룬데 비해 보수 후보는 여러 후보로 분열되었지만, 최종 결과는 진보진영의 패배이었다. 보수진영 후보가 분열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진보진영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보진영도 유권자에게 투표장에 나올 만한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의 결과만 놓고 무조건 '반MB 후보 단일화'가 선거 승리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유권자의 기대와 교육정책의 방향
이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김상곤 후보의 정책 변화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육정책이 진보 성향에서 중도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점은 지난 해 서울시 교육감 주경복 후보와 비교된다. 당시 주경복 후보는 교원평가제 반대, 특목고 확대 반대, 0교시 반대, 우열반 반대 등 일관되게 네가티브 선거전략을 채택했다. 이에 비해 김상곤 후보는 교원평가제를 찬성했다. 교육능력을 개선하는 합리적 교원평가제를 지지했다. 또한 자립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의 폐지가 아니라 정상화를 주장했다. 매우 유연한 변화이다. 이에 비해 보수성향 김진춘 후보는 상대 후보에 대한 네가티브 공세에만 몰두했다. 급기야 선거 막판에 분당 등지에 김상곤 후보가 전교조와 가깝다며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별 효과가 없었지만. 전교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김상곤 후보의 정책 때문에 네가티브 공세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는 'MB 특권교육 반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원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사교육비로 고통 받는 유권자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공교육은 이명박 정부도 강조하는 정책이지만, 실제로는 소수 엘리트 위주의 특권교육이라고 효과적으로 반박했다. 경기도에 소재한 외고에 5년간 지원된 예산이 일반고 지원예산의 5배에 달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질 높은 창의교육을 제공하는 '혁신학교'를 제시하여, 이를 공교육 혁신모델로 내세웠다. 실제로 KSOI 여론조사를 보면, 교육정책의 방향에 대해 응답자 가운데 63.4%가 '공정한 기회 제공을 확대하는 방향'을 지지한 반면, 35.4%의 응답자가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을 지지했다. 이는 김상곤 후보의 선거공약이 거의 유권자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상곤 후보는 세부공약으로 무상급식, 아침급식 제공 및 친환경 유기농 급식 확대, 고교평준화 확대,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하로 편성, 특목고 편중 예산을 일반고 지원으로 확대 등을 제시했다. K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상곤 교육감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가장 기대가 큰 것은 '무상급식, 아침급식 제공과 친환경 유기농 급식 확대'(38.6%)이었다. 이는 유권자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유기농 급식의 확대는 식품 안전에 대한 학부모들의 높은 관심을 잘 반영했다. 이런 공약은 다양한 생활세계의 창조적 동력을 정치적이고 공적인 주제로 변화시킨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감 선거가 교육계 내부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직선제 도입으로 인해 민주적 성격이 더 확대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교육감 선거제도의 개혁
물론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거 비용이 많이 들고 부정비리에 연루된 후보가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개인당 36억 원의 선거비용을 제외하고도 관리비용만 468억 원이 들어갔다. 교육감 후보가 표를 얻기 위해 동네 행사에 쫓아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도 직업 정치인의 선거판 추태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지만 주민직선제에 대한 지지가 훨씬 많다. K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행 주민직선제' (29%)와 '시도지사와 짝을 이룬 주민직선제' (20.5%)에 대한 지지율이 '학교 교육 이해관계자만 투표 참여하는 방안' (32.6%)에 대한 지지율보다 훨씬 높다. 이는 교육자치의 명분에 대한 공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도지사와 함께 짝을 이룬 선거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것은 기존의 지방선거의 구태와 부패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는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를 같이 실시할 때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에 지자체의 단체장이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교육감의 인사권과 전결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있다. 미국의 경우가 그렇다. 어쨌든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교육감 후보 정책 토론회 강화, 교육감 후보의 자격 제한, 교육감 후보의 모금 허용. 교육감 주민소환제 도입 등을 고려해볼 만하다. 민주주의에도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 글은 2009년 4월 23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발간하는 <동향과 분석> 130호에 '교육과 투표'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KSOI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 이후 4월 18일 경기도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경기도 지역별 득표율은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인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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