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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너흰 어느 별에서 왔니?

[질주] 50일 가까이 관제탑 농성 중인 로케트전기 해고자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전노동철폐연대,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질주 닷새 째,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러고 보니 질주 시작하고 하루도 날씨가 좋았던 적이 없다. 첫날 기자회견 때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한 겨울처럼 추웠고, 대구와 구미에서도 계속 먼지바람을 맞으며 고생했는데, 이제 바람이 잔잔해지나 싶더니 서산 도착하고부터는 계속 비다.

남부 지방에 계속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어도 광주에 가지 않을 수 없다. 빛고을 광주에서 로케트 전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이 600일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로케트 전기는 힘 좋은 건전지로 유명한 로케트 밧데리를 만드는 회사다. 광주가 자랑하는 유명한 향토기업이기도 하다. 옛 전남도청 앞에 세워진 로케트 전기 해고자들의 농성장에는 집단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은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도 함께 투쟁하고 있다.

훗날 2000년대 들어서 새롭게 생긴 풍속으로 꼭 기록될 '휴대폰 문자해고 통보'는 요즘 자본이 애용하는 해고 통보 방법이다. 출근하려는데 갑자기 '귀하는 정리해고 되었으니 나오지 마십시오'하는 문자를 받고 주저앉았다는 노동자가 있고, 동료들의 문자 해고 통보 소식에 문자 신호음만 울리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는 노동자도 있다. 작은 액정 화면 안의 텍스트를 통해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IT강국 대한민국의 우울한 단면이기도 하다.

오늘 질주단이 찾은 로케트 전기의 해고자들은 2007년 9월 1일,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한 11명 가운데 남은 해고자들이다. 로케트 전기는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였고, 이들 해고자 11명은 위원장 선거 때면 이른 바 '민주파'로 출마해 왔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도 이들의 해고를 위해 싸워주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 위원장이 노동위원회에 회사 쪽 증인으로 출석해 회사의 해고가 정당함을 증언해줄 정도였다니 이들의 싸움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보지 않아도 알겠다.

▲오늘 질주단이 찾은 로케트 전기의 해고자들은 2007년 9월 1일,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한 11명 가운데 남은 해고자들이다. ⓒ질주

회사는 경영상태가 좋아지면 해고자를 우선 복직시키기로 합의했지만, 흑자로 돌아선 이후 신규 사원을 채용하면서도 해고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지금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싸우고 있는 해고자들은 11명 가운데 해고 무효 판정을 받아 복귀한 2명과, 해고자 생활을 정리한 2명을 제외한 7명이다. 실업급여 받던 것도 끝나고 생계가 막막했는데 다행히 금속노조의 지원기금으로 버티고 있다. 해고자들은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의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는 이들의 복직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의 강승철 본부장은 농성철탑의 아래쪽에 또 다른 고공농성장을 만들어 그 위에서 엿새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살고 싶다. 돌려 달라." 30미터 높이 교통관제철탑에 올라가 농성 중인 조합원 2명이 만든 고공 농성장이다. ⓒ질주
집회장에 도착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옛 도청의 민주광장 한켠 저 위 하늘 쪽으로 현수막을 두른 농성탑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30미터 높이 교통관제철탑에 올라가 농성 중인 조합원 2명이 만든 고공 농성장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학 모가지처럼 얇고 긴 몸통 맨 위에 둥그런 발판이 있는 불안한 모양새의 탑은 실제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휘청 흔들린다. 눈에 뚜렷이 보일 정도로 바람결 따라 휘어짐이 심한 것이 아찔하기만 하다. 쳐다보기도 어지러울 정도로 곧 흔들려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의 관제탑에서 46일 째 농성중인 이주석, 유제휘 조합원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집회에 온 동료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리 펴고 잘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고, 투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46일 동안 저런 곳에서 버틴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로케트 전기에서 해고 된 후 노동자들의 고공농성만 이번이 세 번째라는데 자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해고자 유제휘 씨는 고공농성장의 생활에 대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허리와 무릎 관절에 전해 오는 고통이 입을 통해 신음소리로 절로 기어 나온다"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한탄하면서 "이윤을 위해 생존을 앗아 가는 잔인한 짐승 같은 세상"에 절망하고 있었다.

"이윤을 위해 생존을 앗아 가는 잔인한 짐승 같은 세상"이란 구절을 보다 소름이 오싹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 한진의 김주익 위원장이 골리앗에서 썼던 유서의 말투다. 혼자밖에 없다면, 하늘 아래 혼자만 던져진 기분으로 짐승 같은 자신의 몰골을 저주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한가지 밖에 없다. 그래서 고공농성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투쟁이다. 둘이 함께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히 이들을 위해 지역의 노동자들이 많이 모였다. 오늘 집회의 주제는 '구도청 보전을 위한 결의대회'다. 민주주의의 역사이자 광주항쟁의 상징인 유적지 도청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들이기로 한 결정에 분노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모여 도청을 사수하자고 다짐하는 자리다. 한 목사님은 농성자들을 가리켜 "40일 넘게 철탑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5·18이다. 30년 전 광주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도청 건물 사수가 아닌 광주정신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시내 행진을 한 후 금남로에 모여 로케트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노동자들이 로케트 해고자들에게 힘을 줬다.

무대에 오른 로케트 해고자 오미령 씨는 "고맙다, 저 위 농성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 자리에 꼭 함께 하고 싶은데 못 가니 사진이라도 올려달라고 한다. 해고 된 후 지금까지 싸우면서 느낀 게 로케트 자본이 정말 악랄하다는 것이다. 자본가 저 사람들은 어떤 차원의 사람들인가, 정말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이렇게 짐승처럼 고통 받고 있는데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싶다. 위의 동지들 때문에 맘이 너무 간절하고 너무 조급하다. 하루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 문화제가 모두 끝난 후 늦은 밤 질주단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오미령 해고자는 연신 '조급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얼마나 조급한 마음인지 알 것 같다. 위에서는 50일 가까이 짐승처럼 살면서도 '살아 있는 한 싸우겠다, 절대 복직 없인 내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고 있으니, 그 초조한 맘이 어떨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살고 싶다.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질주

농성장을 둘러싼 현수막에는 선명하고 처절한 구호가 써 있었다.

'살고 싶다'. '일자리를 돌려달라'.

지금 여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노동자가 있다. 극한의 상황까지 왔으니 더 이상 몰지 말라고, 더 이상 몰리면 우리는 죽음밖에 길이 없다고, 그러니 우리를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해고자가 있다. 지상에 만든 천막농성장, 천막의 지붕 높이에 또 만든 고공 농성장, 그리고 그들의 맨 위 하늘 끝에 있는 철탑농성장까지, 위에선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래선 위를 올려다보며 서로를 버티게 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12년차 연봉이 1700만 원인 저임금에도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좋아 일터에 돌아가고 싶은 평범한 내 이웃들일 뿐이다. 이들이야말로 지구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질주하는 사람들 ⑤ : "너무 간절하고 너무 조급하다"

그녀는 몇 분 되지 않는 발언 가운데 '간절하다'와 '조급하다'라는 단어를 십여 차례 반복했다. 차라리 직접 위에 올라가 있다면 이정도로 간절하고 조급하진 않을 텐데…. 고공 농성장의 두 동지와, 자신들 문제로 굶고 있는 지역본부장 때문에 그녀는 날마다 피가 마른다.

- 위에 계신 두 분 상태는 어떤가?

처음에는 멀미가 난다, 어지럽다, 관절이 많이 아프다, 마비증세가 온다 고통을 많이 호소했는데, 이제는 고통조차 호소하지 않고 있다. 아래서 올려주는 밥 두 끼 먹고 피티병에 오줌 누면서 짐승처럼 생활한다. 너무 간절하고, 너무 조급하다

- 회사의 반응은 여전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로케트 자회사에 1명, 간접고용비정규직 1명 이렇게 해주겠다고 한다. 9월 1일 해고당시 우선채용을 합의해 놓고 약속을 팽개쳤다.

▲로케트 전기 해고자 오미령 씨는 몇 분 되지 않는 발언 가운데 '간절하다'와 '조급하다'라는 단어를 십여 차례 반복했다. ⓒ질주

- 그래도 지역의 연대가 참 잘 되는 것 같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해고 됐을 때 이 싸움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도 아니고, 한국노총 사업장이고, 공공성 문제도 아닌 우리 싸움에 누가 함께 해줄까 싶었다. 그런데 해고자들이 시작하니까 모두 달라붙어서 함께 싸워줬다. 정말 고맙다. 광주지역이 가진 자랑스런 전통이 아닐까 싶다.

- 회사 내부는 어떤가?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 회사 접근도 잘 못하고 있다. 해고됐다 복귀된 조합원은 풀 뽑기 시키고, 창고 청소 시키고 악랄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현장 안의 노동자들은 자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화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안에서 싸울 수 없어 걱정이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역의 모든 단위의 동지들이 함께 해주는 자체가 승리다. 승리로 보답해야 한다. 꼭 복직하겠다. 특히, 이 싸움을 백퍼센트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맙다. 뭔가 얻어내기 위해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지지해주기 때문에 싸울 수 있다. 물론 나도 남편이 이렇게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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