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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서 '아침이슬' 읊조리면서 이 맛을 알겠어!"

[기고]"진정 그곳엔 사람이 있었습니다"

23일 추계예술대학에서 열린 용산학살을 기억하고 유가족을 돕기 위한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희망'에 다녀왔습니다. 아현역에서 굴레방 다리를 지나 추계예술대학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과거의 모습들이 적잖이 남아 있었습니다. 만 20년 전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토론하고 배웠던 곳, 한국정치연구회라는 '진보적 대중학술단체'가 세 들어 있었던 북아현파출소 맞은 편 골목, 우측의 하얀 2층 건물도 여전히 거기에 변함없이 서 있더군요. 그 때 그 동료, 선배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요.

하지만 오랜만의 이런 반가운 감회도 잠시, 서글픔이 밀려들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젊은 시절에는 신군부파시스트들이 저지른 광주에서의 학살을 마음 속에 새기며 이 길을 무겁게 걸어 다녔는데, 만 20년이 지나 머리가 희끗해진 지금 그 신군부의 후예들이 저지른 용산에서의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또 다시 이 굴레방 길을 걷습니다. 얄궂게도 왜 하늘은 저리 파랗고, 옷깃을 파고드는 조금은 차가운 바람은 왜 이리 싱그러운가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무하기에는 지금의 이 고통스런 현실이 너무도 엄중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연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멋들어진 공연이 될 수 있을까 염려도 됩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신부님'은 지팡이를 짚고 저 앞을 먼저 걸어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또 나의 착찹한 마음은, 공연의 시작과 더불어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예상했던 대로 흐른, 이상은, 오브라더스, 윈디시티, 그리고 이승환 등 뮤지션들은 (모던)포크, 록, 알앤비, 소울 풍 등 자신의 독특한 음악 색깔과 공연스타일로 콘서트홀 1, 2층을 꽉 메운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자신들이 음악을 통해 용산참사로 숨진 고인들과 고통 받는 유가족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이들의 독특한 음색과 리듬, 몸짓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고조되는 공연장의 열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장르가 어떤 것이든, 그 노랫말이 어떤 내용이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용산 참사 유가족을 돕기 위한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 희망'에 오른 이들은 모두는 자신들이 음악을 통해 용산참사로 숨진 고인들과 고통 받는 유가족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 ⓒPD저널

무엇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들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가 삶을 중심에 놓고 있었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삶보다 더 귀중한 것이 그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런 귀중한 삶이 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무참히 밟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살아남아 더욱 고통스러운 자들은, 또 그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자들은 지금 가해자인 권력에 의해 철창에 갇혀 있고 수배되어 쫒기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이 그 추모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계속 소환장을 발부받고 있다니, 진정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민주화된 사회의 모습인가요. 확실한가요.

하지만 모두가 즐겁게 웃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사랑하기에 잠시 웅크린 어깨를 펴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함께 노래하고 환호합니다. 그렇기에 이 아티스트들의 연주와 노래, 그들의 말 한 마디와 몸짓 하나는 청중의 그것이 되어 이 냉혹한 현실을 이겨갈 새로운 힘의 생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상은은 "여기에 오신 분들이 바로 '사회지도층'"이라는 풍자로 분위기를 돋웁니다. 스스로를 아무런 생각 없고 가장 촐싹대며 못생겼다고 소개해 관객에 웃음을 던져준 '복고풍'의 오브라더스는 공연 사이사이에 "그런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를 물으며 암울한 현실과 공연장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게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때마다 청중들은 고민합니다. 열정적인 연주 솜씨를 보인 윈디시티 또한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이런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맞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 참담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리멤바(?!)'(기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즐길 줄 아는 성숙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중스타 이승환은 자진하여 콘서트 참여를 결정했다며 오히려 자신에게 먼저 섭외가 오지 않아 '서운'했다고 말합니다.

▲ 이상은은 "여기에 오신 분들이 바로 '사회지도층'"이라는 풍자로 분위기를 돋웁니다. ⓒPD저널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 삶에 대한 관심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찌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이것이 어디 예술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건가요. 진정 우리의 자유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공유하는 바로 그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무언가 세련되지 못해 더 사랑스러운 아티스트 흐른, 그들이 노래한 '글로벌시티즌(global citizen)'의 가사에 담겨 있듯이 그 고통은 지금 나만의, 우리만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말 많은 민주주의의 본질 아닌가요.

마지막 곡을 들려주며 자신들의 순서를 마치겠다는 오브라더스를 향해 이번에는 반대로 청중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린 무얼 하지." 이 반전에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그 촐싹대고 아무런 생각 없다는 그들은 조심스레, 하지만 힘 있게 말합니다. 지금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도 바로 실행하라고요. '오 나의 형제여.' 청중들 모두가 환호성을 울립니다. 바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그 말을 그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다시 시작되고 이제 모두 하나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내재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 아닌가요. 저력 아닌가요. 그것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권력과 자본이 어찌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만끽할 수 있나요. 명박산성으로 소통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 그들은 단지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 먼데서 들려오는 '아침이슬'을 혼자 읊조릴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해와 권력만을 위해 살아온 그들이, 지금 대중의 권력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그들이 긴 밤을 지새우고 고통 속에 피어나는 아침이슬의 영롱함을, 그 맑음을 어찌 느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에 불평등한 사회관계와 권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역사적 인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권력과 자본에 의해 다양한 영역에서 고통 받는 인간은 자기 옆의 타인들의 고통을 자기화하는 만큼 진정 인간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꿈꿀 수 있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임을 선언하는 이들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국립묘지로 박제화된 광주를 잊을지언정 망월동을 잊지는 못합니다. 용산에서의 저 참혹함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아마도 말 없는 죽은 자를 대신하여 계속 시로 그것을 그릴 것이고 그림으로 쓸 것입니다. 노래로 음악으로 그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계속 저 반인륜적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항의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살아 있는 인간'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아직도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는 망자들과 따스한 봄볕 아래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 "헤어진 모습 그대로"요. 그렇기에 음악을 통해 인간을,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준 아티스트 흐른, 이상은, 오브라더스, 윈디시티 그리고 이승환이 더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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