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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스템 개편 논의 본격화…"MB정부 반성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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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스템 개편 논의 본격화…"MB정부 반성부터"

학계·시민단체 "졸속 개편할 땐 언제고…금융위 해제해야"

금융정책 조직 통합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시스템 재개편 방안이 학계는 물론 여당에서도 점차 힘을 받으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바로 지난해만 하더라도 금융정책 권한을 분리시키고 정책과 감독 기능은 통합시켰던 정부가 1년 만에 실수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반성의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금융시스템 개편 논의 본격화

금융시스템 개편 필요성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 조직 개편을 단행한 이후 줄곧 제기된 사안이다. 이명박 정부의 조직 개편으로 금융정책이 기획재정부(국제정책)와 금융위원회(국내정책)로 분산된 데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수장 분리에 따른 감독권한 충돌 문제, 금융위의 정책과 감독기능 통합에 따른 비대화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에 경제위기로 한국은행의 감독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까지 얽혀 들었다.

특히 지난해 경제위기를 맞아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금융정책·감독 시스템이 적절한 대응을 못했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개편 필요성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논의가 본격 불거진 계기는 지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를 통과한 한은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자료제출 요구와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 금융기관을 현행 136개에서 526개 기관으로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다. 감독권한 행사의 밑바탕인 조사권이 정부에서 한은으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일단 법안이 나오자 정부 경제정책당국이 술렁였다. 한은의 감독권한이 강화된다면 자연히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은의 감독기능 강화는 곧 금융정책기능 확장으로까지 이어진다. 정부의 금융정책 기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 출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정책수장의 입장은 사진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

당장 정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23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금융안정은 중앙은행 혼자, 정부 혼자, 개별 금융기관 혼자만으로는 안 되고 모두 협력해야 이뤄진다"며 "지금은 (금융정책) 조직에 손을 댈 때가 아니고 현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결함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또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적 추세는 통합감독기관으로 가는 것"이라며 "중앙은행에 조사권을 부여하면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참으로 피곤하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조사권 강화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낸 것이다.

역시 같은 자리에 나온 이성태 한은 총재는 윤 장관의 말을 정면으로 맞받았다. 이 총재는 "감독이라면 인가, 규제, 제재권이 있어야 하는데 (한은법 개정안에 포함된) 조사를 감독으로 봐선 안 된다"며 "중앙은행의 현장정보 수집을 보장할 것이냐,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감독권한을 가지지 못하는 것도 답답한데 금융시장 조사권마저 안 주면 어쩌느냐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갈등은 정부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재정부는 거시정책 기능을 다시 재정부로 집중시켜 권한을 강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금융위는 아예 국내외 금융정책을 전담하는 금융부(가칭), 즉 정식 정부부처로 승격하고 금융감독원을 산하 청으로 만들자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금융감독 권한을 민간에서 정부로 되돌리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어느 쪽 주장이 채택되든 다른 부처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부처로 전락하고 마는 '치킨게임'을 두 부처가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복잡해지자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결국 "한은법은 단면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관련 당사자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김성식 의원은 한은법 개정안을 강하게 주문하는 반면 임태희 위의장은 조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미묘한 시각차이가 있다.

졸속 개편이 문제 키워

문제는 이처럼 부처간 불협화음이 커지는 빌미를 제공한 곳이 다름 아닌 정부라는 점이다. 원래도 문제가 많던 정책·감독 기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개악됐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과거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기능을 통합하고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통합하는 등 금융정책기능과 금융감독기능을 통합시켰다. 동시에 금융정책은 국내와 국제부문을 나눠놓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 결과 기획재정부는 환율 등 국제금융 정책을 전담하고 국내 금융정책은 신설된 금융위가 맡게 됐다. 금융위는 또 금융감독권한과 금융정책권한을 동시에 갖게 됐다. 금융감독 권한이 정부 손아귀로 돌아간 것이다. 학계가 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반대했던 근본 원인이다.

반면 실질 금융감독권한을 가진 금감원은 감독정책을 펼 수 없게 됐고 통화, 신용정책을 전담하는 한은은 사사건건 금융위와 충돌하게 됐다.

경제위기에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혼선이 빚어진 이유가 결국 정부 권한 강화였던 셈이다. 당초 정부는 신속한 정책공조가 이뤄져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자신했으나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주는 일이 많았고 의사결정도 신속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11일 경제, 경영학 전공 교수 147명은 서울시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직 인수위의 경제-금융분야 정부 조직개편안은 외환위기 체제 이전으로의 회귀를 뜻한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금감위가 사실상 정부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경제위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못했는데 새로 개편된 정부조직은 오히려 더 개악됐다"며 "한국이 97년과 2003년, 2008년 등 짧은 기간에 세 번이나 위기를 맞은 근본 원인은 금융정책·감독 기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고 감독기능이 정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지난해 경제 및 금융관련 부처 조직개편의 위험성에 대해 당시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여러 차례 강력히 경고했었다. 소위 진보와 보수 학자들 모두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반대했었다"며 "진지한 검토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개편을 독단적으로 추진해 결국 1년 만에 금융부처 재개편을 추진하는 비효율을 낳은 것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스템 재개편 핵심은 '금융위 해체'

금융시스템 재개편은 과연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학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재개편의 핵심으로 금융위 해체와 금융감독기능 독립을 꼽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위를 해체시키고 감독권한은 전부 금융감독원으로 이관하는 게 핵심이다. 또 과거 금감위와 같은 조직을 마치 한은의 금통위처럼 금감원 내부 의사결정기구로 둬 정부로부터 '완벽한 독립'이 보장되는 민간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해체를 학계에서 요구하는 이유는 감독과 정책 기능의 충돌, 한은과의 정책기능 충돌 때문이다.

현재 금융위는 국내금융 정책과 감독정책을 모두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통화, 신용정책은 한은이 담당하고 거시경제정책에는 여전히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질 감독기구인 금감원과 금융위 수장이 분리되는 바람에 감독정책이 현장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김태동 교수는 "금융위가 감독과 정책기능이라는 상충되는 업무를 맡다 보니 감독을 해야 할 때 경기부양을 위해 감독을 유예하는 일이 많았다. 지난해 가을 위기 대응이 무뎠던 이유"라며 "금융감독은 금감원이 맡고 은행감독기능은 한국은행이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모습의 금융위는 당연히 설 자리가 사라진다.

재정부와 한은의 역할분담 역시 금융위 해체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평가다. 학계는 거시경제 정책은 재정부가 전담하고 금융부문 감독권한은 한은의 힘을 보다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한은의 감독권한을 어디까지 둘 것이냐는 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은 모양새다.

김 교수는 "금융감독은 금감원, 은행감독은 한은이 전담해야 한다.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이와 같은 체제를 가지고 있다"며 "관료들이 금융부문의 중복감독을 핑계대고 있는데 중복감독은 미국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 교수는 "금융권에 대한 상시감독 권한은 금감원으로 집중시키는 게 낫다. 평상시에도 축구경기에 심판 둘을 뛰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상시 감독은 민간화된 금감원이, 감독이 실패하면 예보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 금융시스템 전체 불안이 예상되는 경우에만 한은을 포함한 전담 기관 간 권한과 역할 재배분을 하는 식의 비상체제를 만드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은법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개정논의돼야 한다는 평가다. 전 교수는 "현재 한은법에도 금융안정 관련 조문이 있다. 다만 목적조항에 물가안정 기능만 있을 뿐"이라며 "목적조항에 금융안정기능을 추가해 중앙은행의 비상시 최종대부자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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