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씨는 요즘 잘 나가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난 2001년말부터 최근까지 무려 9년간 <프레시안>에 '김태규 명리학'을 연재하면서 명리학자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던 그는 요즘에는 재테크 전문가로 케이블방송과 경제신문 등 각종 언론매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명리학자와 재테크 전도사, 얼핏 생각하면 부조화스럽다. 그가 이런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된 데는 물론 그의 인생역정이 녹아 있다. 그는 대학 졸업후(1981년) 10여년간 은행원이었다. 30대가 저물어가던 무렵(1993년) 그는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제2의 인생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5, 6년간 숱한 쓴 맛을 본 그는 1999년 명리학 상담가라는 전혀 새로운 인생길에 나섰다. 대학 1학년때부터 독학으로 갈고 닦은 명리학 실력을 믿고 시작한 모험이었다. 그로부터 10년, 그는 약 3만 명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제 인생의 봄날은 언제입니까"는 인생상담에서부터 "요즘 돈 좀 만지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요"라는 재테크 질문까지 답을 해주면서 인생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나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태규 씨는 최근 <프레시안> 창간 무렵부터 연재해오던 '김태규 명리학'을 365회에서 마무리하는 한편 명리학 상담가로서의 역할도 끝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블로그 '희희락락호호당'(☞바로 가기)을 운영하며, 새로운 인생역정을 설계하고 있다. 지난 20일 김태규 씨와의 인터뷰를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한 10여년간 은행원으로 일했지요. 제 입으로 말하려니 지나치게 자기자랑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제가 89년 2월 동화은행에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때 주축멤버였어요. 금융 IT분야 개척의 산 증인이었던 셈입니다. 법대(고려대 법대 74학번으로 설훈 전 의원과 동기) 나와서 은행원 하다가 금융권 전산업무까지 했으니 나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거지요?
잘 나간다면 잘 나갔고 안정적인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도 1993년에 사표를 턱하니 냈어요.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었다거나 드라마에서 흔히 그려지는 직장 내 권력암투의 피해, 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표를 쓴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이대로 살다가는 인생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다'는 공포심이 들었거든요.
▲ 1998년 퇴출이 결정된 동화은행 직원들 상당수가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외환위기는 한국사의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연합뉴스 |
그 때 짤막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제가 사표를 쓰면서 '동화은행 1998년에 문닫을 겁니다'하고 말했어요. 당연히 당시 사람들은 황당해했지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놈이 그냥 곱게 나가고 말지, 왜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하는 말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1998년 6월에 동화은행이 퇴출은행으로 결정되면서 소위 말하는 '빅뱅' 조치로 신한은행에 흡수됐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듣고보니 당시 동화은행 퇴직자들 사이에서 제가 유명인이 됐다고 하더군요.
세상이 참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어쨌든 중국으로 가서 한 동안 여행을 마음껏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마냥 아무 일도 안하고 돈만 까먹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마침 제가 IT사업 경험도 있겠다, 금융지식도 있겠다 싶어서 IT컨설팅 사업을 시작했어요. 어찌 보면 전산 개념이 아직 한국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시기에 중국에서 벤처붐을 일으켜보려 했던 거지요.
그런데 결국 2년 만에 실패했어요. '야,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구나' 하는 교훈을 얻게 됐지만 그만큼 쓴 잔을 마셨죠. 그때서야 제 과거를 돌이켜보게 됐어요. 전산업무 구축을 하면서 딴에는 자신감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제가 그때 교만해졌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니 다시 막막하더라고요. 베이징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이제 벌어놓은 돈도 없고…. '뭐해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명리학을 20년 넘게 공부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더라고요.
'에라, 관심만 가져서 뭘 하나. 기왕 시작한 공부 한 번 끝을 보자!' 하는 오기가 생겼지요. 그래서 제가 바로 명리학 사무실을 차렸어요.
당연히 아내가 펄쩍 뛰었죠. '그 동안 공부도 남부럽지 않게 한 사람이 미쳤다고 돗자리를 까느냐. 남 부끄러워서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느냐'며 난리가 났어요. 이거 설득을 해야 하잖아요. '생활비는 꼬박꼬박 벌어다 줄 테니 믿어보쇼'하고 그냥 밀어붙였지요. 그게 99년 말이에요.
▲"누구에게나 봄날은 옵니다. 너무 쫓겨 살지 마세요." ⓒ프레시안 |
<프레시안>에 글 쓰게 된 이유
1년 동안은 손님이 없으니 그냥 글만 계속 썼어요. 번역도 하고 그 동안 쌓은 지식 정리도 하고…. 그러다보니 2000년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한국의 국운을 보니까 2001년이 국운 추수기더라고요. 이 때는 뭔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전과 완전히 다른 문화 흐름이 나오지 않겠느냐 싶더라고요. 그렇게 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프레시안>이 시간 맞춰서 창간 했더라고요.
'이야, 이거 인연이구나'하는 생각에 무턱대고 바로 이메일을 썼어요. 새로 시작한 매체니 글도 필요하겠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시작한 게 '김태규 명리학' 코너예요. 이 연재로 쉽게 말해 뜨기 시작했지요. 단순히 인생철학 얘기만 한 게 아니라 경제지식을 육십갑자에 맞춰서 풀어낸 게 신선했나봐요.
그래서 쭉 이어오던 게 지난 3월 365회 연재로 끝났지요. 연재 일부를 묶어서 책으로도 냈고, 또 제 금융지식에 관심 가진 경제매체나 경제TV, 자산운용사, 부띠끄 이런 데서도 강연요청 오곤 했으니 결과적으로 <프레시안> 기고가 제 생각대로 저와 인연이 닿긴 닿았던 거지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사실 제 이메일을 받고 <프레시안>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창간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사량도 부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보면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는 명리학 연재를 해도 되겠느냐'는 얘기가 오갔다더군요. 조금 섭섭한 감이 없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누구에게나 봄날은 옵니다"
제가 명리학 공부를 한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담해줬나 대충 헤아려본 적이 있어요. 한 2만 명 정도 상담해준 것 같고, 돈 안받고 상담해준 사례까지 합하면 3만 명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상담을 안 합니다. 제가 재테크로 유명해지니까 만날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묻는 얘기가 '제가 돈을 언제 벌까요?' 뭐 그런 것밖에 없더라고요. 도저히 못 견디겠더군요. 사람들이 지나치게 돈에 얽매여요. 그러면 불행해집니다.
이건 명리학자로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젊을 때 돈 번 사람들은 결국 그거 번 만큼 헤프게 씁디다. 돈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게 검은색 자동차 타고, 계집질 하거나, 친구들 기죽이는 것 정도입니다. 그렇게 돈을 쓴다고 해서 결코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아요. 제 나이쯤 되면 '아이고, 이거 돈을 쓸 데도 별로 없네'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돈이 물론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만큼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다고요.
제가 그 동안 사람들 얘기를 꾸준히 들어오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다들 상처를 너무 많이 안고 살아가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혜택받은 계층에 속한 사람인데도 마음 속에는 아픈 걸 다 하나씩 담고 있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은 내가 아무리 마음 먹는다고 해도 못 이루는 게 있어요. 자연의 섭리라는 게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세상이 나를 죽이려고 하기도 하고 살리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기운이 있는데 항상 쫓기고, 상처를 안고 살면 안 됩니다. 마음 편하게 먹고 살아야지요.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봄날을 맞기 마련입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억울해하지도 마십시오. 제가 블로그 이름을 '희희락락호호당(喜喜樂樂好好堂)'이라고 지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유를 들자면 우리 고전이 갖고 있는, 또 우리 스스로 갖고 있는 가치들 중 굉장히 좋은 게 많은데 이런 것들을 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요.
특히 명리학에서 중요한 게 바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입니다. 이 도덕경의 내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데요,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회남자(淮南子)>를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남자가 중국 사상사에서도 조금 한 켠으로 밀려나있는 데다 한문도 매우 어려워서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국내에 회남자 번역본이 두 권 나오기는 했는데 둘다 일본책을 번역한 것이라 회남자 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앞으로 제 블로그에 회남자의 내용을 찬찬히 올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한국 경제는 이제 겨울 돌입기…"얼어죽지 마세요, 제발" 김태규 씨는 음양오행이론을 실물경제에 적용시킨 독특한 방식으로 금융시장의 과거 움직임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 것으로 유명하다.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특히 유명한 그는 부동산 버블 붕괴와 주식 폭락 등을 예측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의 경제전망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씨는 이제 한국경제가 긴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오는 8월 경에는 겨울의 시련을 알리는 '진짜 경제위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전망을 정리해봤다. ■ 앞으로 15년은 겨울 60년 주기로 나눠서 보지요. 한국의 최근 60년 주기가 지난 1964년에 시작했어요. 즉 64년부터 78년까지가 봄, 79년부터 93년까지는 여름, 94년부터 2008년까지가 가을, 그리고 올해부터 2024년까지가 겨울이지요. 올해가 60년 주기상 입동(立冬)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겨울추위가 본격화되지 않았지요. 겨울한파는 2011년에 옵니다. 첫 추위예요. 아마 이때 즈음 추위를 견디지 못한 북한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첫 추위가 올 2011년에 얼어 죽지 마시라는 겁니다. 아마 이 때 수많은 사람이 동사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볼까요? 이전 60년 주기 때 겨울한파는 1951년에 왔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기 시작한 게 51년 여름입니다. 당시 남북 인명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했지요. 민간인 학살이 본격화된 때도 바로 51년 즈음입니다. 이를 비춰보면 2011년이 얼마나 어려워질지 알 수 있지요. 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마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제가 전에 <프레시안>에 연재할 당시 자살하지 말라는 글을 쓴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바로가기 :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당신에게). 이번 겨울 시기에 통일을 위한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될 것으로 저는 봅니다. 중국은 추수기 3년 이후에 올 혼란기이고 일본은 2015년이 돼야 봄이 오거든요. 미국도 60년 주기가 한국보다 1년 빠르니 그 때는 겨울입니다. 2012년은 이처럼 각 강대국이 다 자기 앞가림 하느라 바쁠 때이고 한국에서도 대선이 있는 해이니 이 때 큰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한 십여년 정도 지나면 평화통일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 경제위기는 8월부터 본격화 요즘 주가도 회복되는 것 같고 부동산 시장도 살아나는 것 같다고들 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또 위기가 도래할 겁니다. 요즘 다시 자산을 사는 분들은 큰 어려움을 겪으실 거예요. 세상의 움직임은 결국 60갑자 속에서 일어나는 춘하추동, 이 네 가지 포인트를 기준으로 일어납니다. 곡우(穀雨, 4월 20일경), 대서(大暑, 7월 24일경), 상강(霜降, 10월 23일경), 대한(大寒, 1월 20일경)이 그것입니다. 겨울의 시작을 동지(冬至)로 보지만 가장 추울 때는 한달 뒤인 대한이지요. 햇빛의 양과 열량 사이에는 한 달 정도의 시차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비단 자연의 섭리만 이런게 아닙니다. 주식시장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 순환이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시장에 대입시켜 보지요. 이번주로부터 약 한달에서 한달 반 뒤인 6월 초순, 혹은 중순경부터 서서히 에너지가 약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최근 주가 흐름을 13주(일년 52주를 춘하추동, 즉 네 부분으로 나누면 13주) 구간으로 나눠보면 하락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에너지 약화는 필연적이거든요. 그리고 대서 무렵인 7월 말 본격적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금년 8월 즈음부터는 세계 경제가 다시 하락국면으로 진입한다는 말이지요. 지난해 우리가 경험한 것이 위기의 예고편이었다면 올해 대서 이후로 도래할 위기는 이제 본편이 될 것입니다. ■ 이명박 정권 운명=노무현 정권 운명? 사람들이 흔히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정반대다' 이렇게 얘기들 하지요. 제가 볼 때는 같습니다.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기'가 중요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의 '기'는 2004년 3월에 끝났어요. 이유야 어쨌든 대통령이 직접 한 사람의 죽음과 연결됐지요. 씨를 뿌려야 할 봄이 좋게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씨가 제대로 안 뿌려졌으니 추수를 많이 할 수가 없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기'는 지난달에 끝났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이명박 대통령이 크게 원한을 살 일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말로도 그리 화려하지는 못할 듯 싶습니다. 둘은 결국 같은 짝으로 묶이니까요. 우리 정치사에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던 사건이 72년 유신독재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에요. 딱 30년 간극이 있고 그 중간에 87년 체제가 등장했지요. 이런 정치사 변화의 기본 단위는 10년이에요. 보면 82년에는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이 나면서 한국에 반미정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92년에는 군부독재가 종식됐어요. 이 10년 간극의 기운은 모든 대통령이 똑같이 누립니다.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각기 따로 떼놓고 볼 수가 없다는 거에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보듯 한 짝이지요.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한 짝입니다. 얼핏 보기에 양극단의 성격을 지닌 것 같지만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한 짝으로 보면 됩니다. 결과도 비슷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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