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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디 바비디 부'를 경계하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모두가 '생각대로' 산다면…

1970년 4월 22일, 미국의 워싱턴에서는 자연환경의 보호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미국 전역에서 무려 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날을 기념해서 미국에서는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정했으며, 1980년대에 들어와서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지구의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오늘날 지구는 파국 직전의 상황에 있다. '녹색 성장'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내걸고 강을 파괴하고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고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지 않는 식으로는 지구는 곧 파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지구를 돌봐야 한다.

지난 4월 17일~18일 이틀간 서울 마포구 민족의학연구원 대강당에서는 전통 의학을 연구하는 민족의학연구원과 동서 의학의 소통을 지향하는 인문의학연구소가 '21세기 한국 사회와 몸의 생태학'이라는 주제로 학술 대회를 열었다. 나는 이 뜻깊은 자리에 초대를 받고 무엇에 대해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우리 몸에 대해 말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요청받은 짧은 발제문을 쓰다가 문득 최근 유행하는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주문'과 연관지어 말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법이라는 것은 충족될 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 위기의 근원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한 장면. 최근 한 이동통신회사가 광고에 이용하면서 유행하는 '비비디 바비디 부'는 이 애니메이션에션에서 마법사의 '주문'으로 선보였다. ⓒdisney.com
'비비디 바비디 부'는 본래 디즈니의 만화영화 <신데렐라>에서 마법사의 '주문'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근에 한 이동통신회사가 이 '주문'을 이용한 광고를 만들어서 널리 퍼졌다. <신데렐라>라는 동화 자체가 사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짙게 반영하고 있거니와 디즈니는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주문'을 통해 이런 욕망이 쉽게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잘 빚어냈다. 그러나 환상의 대가는 대단히 무섭다. 현실은 <신데렐라>의 이야기처럼 해피 엔딩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이동통신회사의 광고처럼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주문'을 외치는 것으로 누구나 자기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만일 중국이 미국처럼 된다면 지구가 7개는 더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자원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욕망은 무한하다. 욕망의 충족은 자원의 소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유한한 자원으로는 무한한 욕망을 결코 충족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욕망을 다스리는 수양을 교육의 핵심으로 여겼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욕망의 충족을 내걸고 강력한 개발을 추진했다. 개발을 추진한 동력은 '비비디 바비디 부'와 같은 '주문'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태 위기로까지 개발을 밀어붙인 것은 '비비디 바비디 부'와 같은 '주문'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었다.

우리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몸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면서 우리를 괴롭히거나 돕고 있다. 어떤 것들은 우리 몸의 외부에 살고, 또 어떤 것들은 우리 몸의 내부에 산다. 어떤 것들은 우리들과 공생하고, 또 어떤 것들은 우리들에게 기생한다. 우리 몸을 너무 방치하면 기생충이 우리 몸을 점령해서 우리는 병에 걸리거나 죽게 된다. 그러나 우리 몸을 너무 깨끗하게 관리해도 역시 우리는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 있다. 생태계로서 우리 몸은 많은 미생물들과 공생을 통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몸은 우리 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생태계로서 우리 몸은 더 큰 생태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더 큰 생태계의 외부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더 큰 생태계의 산물이면서 오직 그 내부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더 큰 생태계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돕는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더 큰 생태계를 갈수록 크게 괴롭히게 되었으며, 바야흐로 우리는 더 큰 생태계 전체를 격렬한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더 큰 생태계의 파멸은 그것의 한 부분인 우리 자신의 파멸이다. 현대 사회는 이 당연한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임박한 파국'을 알리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게 되었다. 자연의 파멸은 바로 인간의 파멸이다.

생태계는 생물과 비생물, 그리고 생물과 생물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물리적 질서에 따라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는 체계이다. 그것은 지구에서 생물이 탄생한 이래 계속 변화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우리 몸을 포함해서 생태계는 무려 40억 년에 걸친 공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 몸에는 40억 년의 공진화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200년 만에 40억 년에 걸친 공진화를 통해 형성된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괴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많은 문제가 발생했으며, 생태계로서 우리 몸도 이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른바 '아토피' 질환을 포함해서 흔히 '문명병'이라고 불리는 각종 질환의 만연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이다.

인간은 자신은 물론이고 더 큰 생태계마저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이런 무서운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겸손'이다. 이미 오래 전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오늘날 '겸손'은 더 이상 윤리의 요청이 아니라 과학의 요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자이자 '현자'였다. 우리는 우리의 무서운 능력이 초래한 무서운 결과를 직시하고 '겸손'을 내재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생태계로서 우리 몸은 이미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우리 몸에 맞지 않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이미 생태 위기라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 생태계로서 우리의 몸을 올바로 건사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몸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더 큰 생태계를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무서운 능력이 초래한 무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무서운 능력을 더욱 더 강화하고자 한다. 심지어 모든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는 '비비디 바비디 부'와 같은 '주문'마저 진심으로 열렬히 찾고 있는 듯하다. 디즈니의 만화영화 '신데렐라'에서 마법사가 호박마차를 만들면서 외친 주문인 '살라가툴라 메치가불라 비비디 바비디 부'가 "아이를 불태우면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라는 무서운 뜻의 고대 히브리어라는 낭설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너도나도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한다면, 결국 우리 모두의 '엄마'인 지구를 불태우고 우리의 '아이'도 불태우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 것이다.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욕망을 쉽게 충족하거나 우리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희망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비비디 바비디 부'를 권하는 사회, 그리고 '비비디 바비디 부'를 기대하는 우리 자신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구의 날'이 제정되고 어느덧 거의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생태 위기는 계속해서 더욱 더 악화되었다. 그러니, 거대한 자연의 파괴를 거대한 '대박'의 기회로 선전하는 망령된 '비비디 바비디 부'에 현혹되지 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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