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는 결국, 노무현 게이트라는 검찰의 '정황'적 설명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다. 동의한다. 하지만 너무 과하다. 편향이다. 매일같이 브리핑이 이뤄지고, 뭔가 더 복잡다단한 계좌의 흐름과 정치적 술수가 있는 양 기사가 난립하고 있지만 결국, 간단한 얘기다. 충분히 이해했다. 예정된 시간표를 당겨라. 노무현을 소환하라.
현재까지 검찰이 확실히 확인한 사실은 박연차의 돈 600만 달러가 노무현 '측'으로 전달됐다는 점뿐이다. 100만 달러는 정상문 총무비서관에게, 500만 달러는 연철호씨가 설립한 '타나도 인베스트먼트'로 갔다. 전달 방법과 시점까지는 비교적 소상하다. 100만 달러는 2007년 6월 말 가방에 넣어 전달됐고, 500만 달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22일 계좌로 송금됐다고 한다.
여기까지이다. 이후부턴 모든 게 엇갈린다. 검찰 '측' 주장이 대서특필, 도배되고 있지만, 하나 같이 '정황'뿐이다. 노무현 '측'은 무슨 소리냐며 정색하고 있다. 그나마 검찰 '측' 주장들마저도 매일 갱신되고 있어 헷갈림을 넘어 어지러울 지경이다. 잘 알고 있을 테다. 이게 결국 어떤 효과를 낳는가는. 맞다. 총량적으로 사건의 부피를 커 보이게 만드는 전형적 방법이다. 앙상한 사실에 풍성한 정황이 열린다면 대체로 정확할 것이다. 현재까진, 전형적이다.
죽은 권력에 대한 부관참시는 이쯤이면 족하다. 노건호이건, 노무현이건 혹은 권양숙이건 향후 드러날 사실관계에 따라, 책임이 분명한 누군가가 사법적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노렸던 효과는 이미 충분히 달성됐다. 이명박을 심판으로 가리라던 4.29 재보선 판은 완전히 헝클어졌다. 오는 5월 2일 촛불 1주년을 맞는 정권의 막연한 두려움도 해소됐다. 정권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노무현을 팔아 위기를 넘기는 수법의 대미도 화려하게 장식됐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 자체로 노무현'측'은 파산 났고, 또 그 파산은 마땅해 보인다.
▲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 자체로 노무현'측'은 파산 났고, 또 그 파산은 마땅해 보인다." ⓒ뉴시스 |
자, 그러니 됐다. 이제 이성을 차리자. 언론이 일으키고 있는 황색 소용돌이에 비해서 확인된 사실은 너무 간략하고 혐의는 불분명하다. 미디어에게도 염치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노무현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죽어가던 권력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려던 것이라면 완벽했다. 노무현은 이미 다 탔고, 바람대로 그가 누리던 일말의 권력은 완전히 일소됐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민주화 세력 전체, 386이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정치 세력까지 다 낡은 것으로 만들었으니 기대 밖의 성과까지 거둔 셈이다. 이제, 죽은 권력은 저잣거리에 그만 널잔 말이다.
다음 주, 노무현 소환을 앞두고 있다. 봄꽃 마냥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순간 충고가 귀에 걸릴지 모르겠지만, 바로 지금이야 말로 흘렸던 사실들을 주워 담을 때이다. 죽은 권력이 썩었다는 것과 함께 분명한 것은 홀로 썩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다. 산 권력도 박연차의 썩은 돈을 함께 썼다는 악취가 확연하다. 검찰에 따르면, 산 권력에게 청탁을 하긴 했는데, 받은 사람은 없다는데, 납득이 되질 않는 이야기이다. 구속된 추부길 전 비서관은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게 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들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도 있었다. PK, TK에선 거칠게 없다던 그의 스타일 증언도 있었다. 이후 어찌되었나?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는 박연차의 로비가 유독 한 쪽으로만 편향되어 보이는 까닭이 무엇인지 점검이 필요할 때이다.
검찰의 표현대로라면 박연차는 산 권력에게는 '실패한 로비스트'이다. 매우 선제적이고 단호한 저지선이고, 독창적인 수사기법이다. 그 언어게임대로라면, 박연차의 로비는 유독 참여정부 때만 '성공한 로비'로 규정된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당파로부터 자유롭다는 돈의 속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론을 검찰은 너무 쉽게 말하고 있다. 호도된 것은 아닌가? 노무현을 때리는 기사는 쉽고 매력적이지만, 돌이켜보면 별 부담 없는 꺼리이다. 앞뒤 안 가리고 마구 주워 먹다간 자칫 체하기 십상이란 말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간단하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로 돌아가면 된다. 포괄적이고 균형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적용하자면, 천신일 회장을 화면에, 지면에 불러 세워야 한다. 노무현이 소환되기 전까지, 검찰이 더 확인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앞서 말했지만, 의외로 구조가 간단한 사건이다. 이제부터는 검찰을 흔들어야 한다.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입으론 가혹한 매질을 하면서 동시에 온 몸으로 누군가의 매를 대신 맞고 있는 희한한 검찰의 포지션을 말이다. 검찰은 지금, 전형적인 권력형 마조히즘에 빠져있다. 언론은 객관성을 상실한 채 이를 구경해왔다. 이 기괴한 동거, 선정적 포지션을 흔들지 못하면, 언론은 끝끝내 검찰의 앵무새 밖에 못될 것이다.
리스트는 어떻게 활용되고 통제되는가? 충분히 알았다. 노무현이 나쁘다는 것도, 활용되고 통제될 수 있다는 것도. 다음 주는 넘어설 때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