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물고기

[별, 시를 만나다]

<프레시안>은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 연재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이야진(IYAZINE)>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인다. 매번 첨부될 시인의 '시작 노트'와 천문학자 이명현 교수(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연세대 천문대)의 감상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우주 물고기

침몰한 유령선처럼 뼈만 남은 혼령들이
우주를 떠다니며
돌조각을 주워 먹고 있을 것이다
소화기관이 없어서
배도 고프지 않고, 배도 부르지 않은 천국
운명의 궤도를 통과하며 울리던 굉음도 잊고
홀로그램처럼 서로를 지나다닐 것이다
안부 인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의식이랄 것도, 감정이랄 것도 없는 물고기 떼처럼
귀신들이
몰려다니고 있을 것이다
어두워지는 거리에 자동차를 몰고 나가면
길 잃고 떠다니는 비행선 같은 사람들
마주친 눈을 피해
제 안으로 시선을 거두고 혼자 캄캄해지듯
사람들이 펑펑, 기억 밖으로 관짝을 쏘아 보낸다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가는 별의 어린 씨앗들처럼
관짝들이 환하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광경
이따금 혼백들이 창문까지 내려와
잠든 자들의 흐린 꿈속을 헤엄쳐 다니듯
캄캄한 우주
눈도 없고, 귀도 없이 어둠을 지팡이 짚고 다니는 물고기들이
아무것도 못 알아보고
서로를 삼켰다 뱉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몸이 없으니까
무게가 없으니까
아프진 않을 것이다, 더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파이널 환타지>에서 운석에 묻어온 우주 유령이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지구 이곳저곳에 우주 물고기 유령이 떠다니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최소한 시인의 상상 속에서 우주 물고기 유령은 살아있다. 그런데, 진짜 살아 숨쉬는 우주 물고기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이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인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위성의 표면은 꽁꽁 얼어붙은 두꺼운 얼음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균열된 모습도 보인다. 목성의 강력한 인력 때문에 불안정한 궤도를 돌고 엄청한 조석력을 받는다. 화산 활동과 지열도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다소 격렬한 주변 환경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층 아래 존재할 수 있는 액체 상태의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다다. 화산과 지열의 영향으로 꽁꽁 얼어붙은 얼음층 밑에는 얼음이 녹아 바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있고 열원이 있다면, 생명체의 서식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아직은 계획 단계지만, 유로파와 이오에 우주탐사선을 보내려고 한다. 얼음을 뚫는 장비를 싣고 가서 10킬로미터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두터운 얼음층을 뚫고 그 곳에 몰래카메라를 들이밀고 우주 물고기가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발 맛사지 집에서 만나던 발에 키스하는 물고기가 몰래카메라에 키스하는 장면을 지구에서 생중계로 보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양극단의 무지에 서 있다"라는 파스칼의 말은 옳다.
우주 앞에서 무지하며, 또한 죽음 앞에서도 무지할 것이다.
인간은 그 양극단 어딘가에 천국을 세우고 자신을 닮은 물고기들을 풀어놓는다.
당연히 물고기들에게 표정은 없다. 최후의 희망은 망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절된 세계를 잇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며, 그 상상은 어쩌면 불행하다.
더 이상의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이면은 온통 검은색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인간은 그 암흑의 바다를 헤엄친다.

최금진은…

1970년 생. 시집 <새들의 역사> 등. 오장환문학상 수상(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