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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수용 장애인의 고발…"배 고파서 개밥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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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수용 장애인의 고발…"배 고파서 개밥도 먹었다"

탈시설 외치는 장애인들 "인간 창고형 정책은 이제 그만둬야"

배덕민(43)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란 이유로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가 선택한 길은 장애인을 돌봐주는 시설 보호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1997년에 그는 충북 충주 창호원 근처 시골 기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은 기도원도 아니고 정신질환자의 '수용소'였다.

한 달에 한 명꼴로 사람이 죽어나갔다. 정신질환자가 80%, 알코올중독자가 20%였다. 한 방에 6~8명이 대·소변기 옆에서 잤다. 새벽 4시에는 무조건 기상해야 했다. 밥은 늘 정량이 나오지 않아 늘 굶주렸다. 그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개밥도 먹었다. 인간의 삶을 포기한 셈이다. 당시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삶의 의욕도 없이 그냥 거기서 죽고 싶었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들이 계속됐다.

결국 배덕만 씨는 장애인 시설을 나왔다. 큰 용기였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그가 시설 말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2006년 6월 서울시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운 좋게 당첨돼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시설에서 살 때는 이러다 죽겠다며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이렇게 사회로 나와서 살아보니 40년간 집과 시설에만 갇혀 산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며 "사회에 나와 살면서 사람들과 갈등을 겪고 어려운 일도 생기지만 그마저도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배덕만 씨 말마따나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을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는 공간은 그들에게 "감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난 14일 노들장애인야학 등 6개 인권단체는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에서 워크숍을 열고 장애인에게 있어 시설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현재 장애인 시설들을 두고 "사회와 격리시키는 공간"이라고 규정지었다.

▲ 14일 노들야학에서는 '사회가 만든 감옥, 시설밖으로'라는 주제로 탈시설워크숍이 열렸다. ⓒ프레시안

"시설 장애인은 사회와 단절된 창고형 인간"

2008년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생활시설 288개소에 2만958명, 공동생활가정 및 단기보호시설 427개소에 3502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생활시설 1개 소당 평균 72명 이상이 생활하고 있으며 보편적 거주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대규모 시설이 일반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날 발제에 나선 박숙경 탈시설정책위원회 위원은 이를 두고 "대부분의 시설이 집단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창고형으로 건축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 창고형은 정신질환이나 노인들에게 적용되는 유형"이라며 "창고 속에 가구를 보관하는 것과 같이 시설생활자를 무능력자로 취급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창고형식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일렬로 거실에 앉아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TV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시설 직원들에게는 시설 생활자들을 시설에만 붙들어 놓고 먹이고 씻기고 대·소변을 가리게 하는 역할에 치중하도록 만든다.

그는 이러한 인간 창고형 시설과 관련해 "시설의 문제는 인권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문제는 이런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고 사회에서 단절되고 분절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장애인을 점차적으로 사회 적응을 떨어지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며 "결국 어떤 희망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버림받은 채 시설에 격리돼 있는 삶은 무색의 삶"

한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연구위원은 철학적인 개념에서 장애인의 시설 수용, 즉 인간 창고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시설은 분명 번지수를 가진 물리적 장소이지만 또한 도덕적 장소"임을 강조하며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서점이나 박물관, 병원에 가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시설에 들어가면 장애인은 '자립할 수 없는 존재, 버림받은 존재'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 그는 "명목상으로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돌봄을 받기 위해 들어가지만 그것은 주변에서 돌봄을 포기했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버림받은 채 시설에 격리돼 있는 삶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자.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에 가는 것, 일 년에 한두 번 놀이 공원에 간 것이 전부인 사람들의 삶, 그 삶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이 제거된 채, 삶의 모든 색깔이 벗겨진 채 시설에서 관리되고 있는 그 무색의 삶은 무엇인가."

그는 "철학적 표현을 빌리면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삶은 '발가벗겨진 삶(barley life), 날 생명(just life)'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인간의 삶이 생물학적 생명으로 축소된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격리가 아닌 사회 적응 위해 노력해야"

이처럼 장애인 시설의 부정적 측면으로 인해 최근 장애인의 '탈시설 운동'이 힘을 받고 있다. 이는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고 있는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9대 정책 요구안 중에서도 첫 번째 요구이다.

이들의 주장은 무턱대고 시설에서 장애인을 내보내라는 뜻이 아니다. 충분한 대책과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졸속으로 탈시설을 추진할 경우 지역내 방임과 학대, 가족의 부담 증가, 보다 열악한 시설로의 재입원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인정한다.

▲ 발언을 하고 있는 김동림 석암재단생활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프레시안

박숙경 위원은 "탈시설이 거주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방임하거나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탈시설 운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기반 시설이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 장애인의 가족들은 실제로 장애인 당사자가 '가족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포기한 상태에서 시설에 맡긴다. 뇌 위축증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동림 석암재단생활인권쟁취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늘 '저거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결국 25살에 석암재단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장애 있으면 시설 보낸다? 당사자 관점에서 정책 수립하라"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은 무엇이 있을까. 박숙경 위원은 "시설 보호에 따른 문제를 제대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바람과 인권에 근거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문제의 중심인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증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설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산정하고, 사람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거주시설 확충을 추진하는 현재 정책이 문제"라며 "당사자의 관점에서 시설 보호주의를 넘어서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현재 대규모 시설해체, 지나친 민영 기관 의탁을 벗어난 공공의 책임 강화, 통합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 등을 제시했다.

이어 고병권 위원은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살기 위해 국가의 책임을 촉구하는 운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또 함께 하는 삶이란 서로 달라도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의 삶"이라며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한편,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24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여기에는 김명연 상지대 교수가 '탈시설 권리의 법적 근거와 실현과제'를 발제하고 김윤태 우석대 교수가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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