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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수사'와 '사채업자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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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수사'와 '사채업자 수사'

[김종배의 it] 시늉만 내다 사실상 수사 종결…고인의 해원은?

결국 나왔습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본부가 그랬답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연예기획사 대표) 김 씨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일부 수사대상자에 대해 참고인 중지에 들어간다'고 했답니다.

수사를 중단하겠다는 뜻입니다. 김 씨의 신병을 확보할 때까지 수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는 뜻입니다.

다행입니다. 그나마 수사 종결이 아니라 중단이라면 다행입니다. 언젠가는 수사를 재개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습니다. 김 씨가 제 발로 귀국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본 경찰이 김 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범죄인 인도 신청에 적극 응한 다른 나라의 예는 거의 없습니다.

뻔합니다. 경찰의 수사가 중단 또는 종결되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이 고개를 뻣뻣이 세울 겁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 내용이라도 공개한 인물과 언론에 역공을 가할 겁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내용을 '사실무근'으로 전제해 놓고 '생사람 잡은 무고꾼들'을 '응징'하려 할 겁니다. 소송 대란이 일어나겠죠.

'응징' 리스트에 오를 사람들의 안위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들의 '장자연 리스트' 공개 행위가 정당한지 여부도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고 장자연 씨의 '해원'입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고 장자연 씨의 사실상의 유서입니다. 자신이 겪은 고초와 살아생전 혼자 짊어져야 고뇌를 고스란히 남긴 육필입니다. 이게 묻힙니다. 경찰이 수사를 '중단' 또는 '종결'하면 고 장자연 씨가 각혈하듯 토해낸 고백이 묻히고 원한이 묻힙니다.

▲ 고 장자연 씨. ⓒ뉴시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28일 50대 이모 씨가 경기도 평택의 한 저수지 부근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흘 전 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대학교에 다니던 딸이 친구와 쇼핑몰을 만들기 위해 2007년 3월 사채업자한테서 300만 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 빚이 1500만 원으로 불어났고, 돈을 갚지 못한 딸은 사채업자의 강요에 룸살롱으로 내몰렸습니다. 여기서 하루에 3회까지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빚은 6700만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견디다 못한 딸이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다른 빚이 더 있다는 사채업자의 협박에 짓눌린 아버지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겁니다.

그 뒤 경찰이 나섰습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에 나섰습니다. 누가 고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녀의 사연을 전한 신문 기사를 보고 자발적으로 수사에 나서 넉 달간의 끈질긴 수사 끝에 사채업자와 룸살롱 마담 등을 구속했습니다.

수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추적 끝에 딸의 친구들을 찾아냈지만 진술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사채업자의 협박에 겁을 먹어 입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그 뒤 석 달 동안 친구들을 설득합니다. 그리고 4월초, 딸 친구들로부터 사채업자의 신원과 행각에 대한 진술을 얻어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수사 경찰관이 그랬답니다. "죽은 부녀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겠다"며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불법 대부업을 더욱 강력히 단속해야겠다"고 말했답니다.

당연합니다. 죽은 부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사회의 도리이고 사법기관의 의무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부조리를 없애는 게 '해원'의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다시 돌아봅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본부의 행적을 돌아봅니다.

너무 짧습니다. 참고인들을 집요하게 설득해 결정적 진술을 얻어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일본에 체류 중인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노력했는지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한 달은 결코 긴 기간이 아닙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를 개시한 지 한 달 만에 사실상의 수사 '종결'을 운위하는 건 섣부르고 안일한 짓입니다. '수사 시늉만 내다 말았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짓입니다.

그냥 그렇게 덮어버리기엔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이 너무 크고, 사회에 미친 충격파가 너무 크고, 국민이 안을 실망감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냥 덮어버리기엔 고 장자연 씨의 육필에 담긴 이른바 사회 유력인사들의 행각이 너무 부도덕합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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