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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다…'청소차'로 들어가는 '군용 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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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다…'청소차'로 들어가는 '군용 빵'을"

[복지국가SOCIETY] 진보는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프레시안>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칼럼을 공동 게재합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회원이 돌아가며 쓰는 각 분야의 깊이 있는 칼럼을 <프레시안>을 통해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실현하고자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명적 정책을 추구하는 자발적 모임입니다. (☞바로 가기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민주노동당 탈당파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진보신당이 최근 당 대회를 열고 당 강령을 확정지었다. 최대의 관심은 진보신당의 경제 강령이었다. 흔히 좌에서 우까지 쭉 늘어놓고 누가 어느 정도로 좌파인지? 혹은 어느 정도 우파인지? 이를 규명하기 위한 잣대로 '경제 강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진보신당의 경제 강령은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의지를 좀 더 강하고 뚜렷하게 표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직접 거명하면서 이에 대항한 투쟁 의지도 밝혀 놓고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강령은 '시장 원리'의 긍정적 측면을 어떻게 사회 공공성 강화라는 커다란 목표 안에 반영할 것인가? 이런 좀 더 난해한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한 입장을 정리된 형태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시장주의"라는 등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진보세력은 보통 '시장'의 원리 또는 이념을 적극 반대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시장은 자본 또는 자유 경쟁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이 원래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일까? 국가나 사회 운영의 기초를 설계하면서 '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삭제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하며,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시장'을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시장'을 배척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진보진영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필자는 스물두 살 때, 계획경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소련으로 유학을 다녀온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계획경제를 경험했던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맞서고 있는 한국군 내부의 생산과 소비는 일종의 '계획경제 시스템'이었다. 군대에서는 군수 담당자들의 계획에 의해 군용 빵을 대량으로 생산, 분배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군용 빵이 맛이 없어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군대의 계획경제는 끊임없이 그 맛없는 빵을 만들어서 계획대로 배급했다. 빵은 여기저기서 계속 남아돌았다.

▲ 시장 원리를 맹신하는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의외로 계획경제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빵보다 맛에서 떨어지지만 일괄적으로 군대에서 보급되는 군용 빵은 좋은 예이다. ⓒ프레시안
그 결과, 필자는 어느 날 '빵 차'와 '청소차'가 서로 뒤를 마주 보는 꼴을 보고 말았다. 군수 담당 병사는 빵 차에서 빵을 내려 곧바로 청소차로 옮겨 실었던 것이다. 빵은 포장도 안 뜯어진 채 청소차로 직행했다. 물론 상부에는 계속 다 소비된 걸로 보고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런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체험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일방적 계획경제의 사례는 조금만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회 구성원의 개별적 사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전체적 차원에서 획일적으로 수립된 직접 계획은 비효율과 낭비를 낳는다. 필자는 이것을 생산과 소비의 2차 모순이라고 부른다(생산과 소비의 1차 모순은 무정부적 생산에 의한 낭비를 뜻한다).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2차 모순을 방지하려면 반드시 전체의 목표와 개체의 개별적인 선택권을 상호 결합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 원리를 무조건 배타시하는 것이 꼭 진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대 측면에서, '시장'이 꼭 보수 정치 세력의 노선인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최근에는 보수주의자와 시장주의자를 구분하는 관점이 점점 강화되고 있기도 하다.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적 자유의 핵심적 요소로는 자유시장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를 거부해왔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가 대표적이다. 사실, 시장 원리를 사상계에 적용한다면 국보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설사, 불온한 사상이 있다 해도 그것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자유 경쟁을 통해 도태시켜야 하는 것이지, 사상의 시장 진입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분명히 반시장적인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장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와 어떤 역동성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라서 '보수의 원리'와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 원리에 따른 차분한 해법보다는 자유의 제한에 해당하는 간편한 '소유 제한'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준표 국회의원이다. 홍준표 의원은 2005년 여름, 부동산 가격 급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자 '성인 1인당 1주택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주택 소유를 수량적 차원에서 직접 제한하자는 좌파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논평이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입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방식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한다"는 신중한 논평을 냈다. 뭔가 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원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자유시장의 원리'를 부정하고 소유권에 대한 직접 제한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보수주의' 정책 노선에는 더 잘 부합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한 때 권영길, 심상정 의원실에서는 대형 할인마트에 대한 영업 시간 직접 규제를 법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상인들의 영업 시간을 규제한다는 것이 헌법상 어떤 합리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해법이 '12시 넘으면 통행 금지'를 시행하던 박정희 시대의 보수적 해법과 본질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유시장'인가, '직접 제한(규제)'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해법의 기초는 무엇일까? 소유권의 직접 제한 또는 과도한 정부 규제가 시장 원리의 근본적 부정이라면, 또 다른 방법은 '세금에 의한 방법' 또는 '유인(인센티브)에 의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공공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직접 제한을 통한 해법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세금의 중과' 또는 '경제적 유인'을 통한 해법을 추구할 것인가? 이 문제가 최근 논쟁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이것은 부동산 문제를 '소유의 직접 제한'이 아니고 '세금 부과에 의한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토지정의시민연대가 제시한 이러한 조세주의 해법에 대해 '어설픈 타협'이라고 비난한 바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비난을 보며 2002년 당시의 사회당을 떠올렸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에서 부유세를 주장하자, 사회당에서 "부유세로 세금을 더 걷는다고 자본주의가 뒤집어지나?"라는 비판을 제출한 바 있었다. 이는 세금을 더 물리는 방식으로는 자본주의를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당시 민주노동당의 불철저한 진보 노선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세금을 많이 걷으면 자본주의도 장기간에 걸쳐 근본적으로 성격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보 정치 세력의 강령이 신자유주의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고 올바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그것이 '시장'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범 진보진영 차원에서 시장 원리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정리와 구체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전체적인 전략 속에서 시장의 원리는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결부되어야 하는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가 당장 시장의 원리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을 확보하지 못한 조건에서 무조건 시장을 백안시하는 것은 전혀 진보적인 태도가 아니다. 서민과 노동계급의 정치적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부와 사회의 적절한 규제와 유인 하에서 보다 공정하고 혁신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과 이와 더불어 작동할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의 제도화이다.

더불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사 그것이 복지국가라 하더라도 군대에서 빵 나눠 주는 식의 복지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거시적 비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시장 실패' 못지않게 이러한 '정부 실패'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계획경제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이런 체제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연대를 동시에 구현하려는 우리의 복지국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복지국가'가 아닌 '역동적 복지국가' 모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에게 '시장'이란 무엇인가? 라는 어려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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