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프레시안>은 <지방정치연구회>(공동대표 손혁재·이기우)와 함께 기획연재 '이제는 풀뿌리 정치'를 연재합니다. <지방정치연구회>는 생활정치의 내용을 개발하고 전문가들의 실천적 연구를 통해 이를 정책화하기 위해 지난 4월 초 설립된 <생활정치연구소>의 산하기구입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가 지방정치의 개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지방정치연구회>는 지방정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향후 1년간 내부 세미나를 격주 단위로 가질 예정이며, 이 세미나에서 발표·정리된 내용은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지방정치의 의제와 쟁점, 정책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제는 풀뿌리정치'와 함께 민선 5기 지방자치의 밑그림을 그려보기 바랍니다. <편집자> |
이제, 정당공천제 논의를 접고 실질적 준비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선거가 일년(2010.6.2) 앞으로 다가왔다. 각종 리스트가 난무하고 보궐선거가 임박한 상황이라 각 정당이나 출마 준비자들의 움직임은 아직 조용하다. 하지만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내년 지방선거의 쟁점과 과제들이 차분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선거에 임박하여 졸속으로 '시민후보'를 내세웠던 과거의 관행에 비추어볼 때 의미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논의들은 '정당공천제' 여부에만 집중되어 있는 등 다소 편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정치연구회>는 더 이상 정당공천제 문제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당공천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로 의제의 초점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정당공천제가 불가피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정치에서 정당의 관여는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후보자의 정당표방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84조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4대 지방선거 중 유독 기초의회의원선거 후보자의 경우만 제한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아직까지 헌법재판소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둘째,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은 내천(內薦)이 난무했던 2006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과거 지향적 제안이다. 즉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정당과 특정 후보자 사이에 밀실 담합에 따른 내천을 막을 방도가 없다.
셋째, 정당공천제는 시대적 과제인 책임정치의 강화와 정당정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정당공천제는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연계를 강화시켜 정책방향에 통일성을 부여하며, 신진인사의 정치충원을 활성화시킨다. 특히 정당의 뿌리를 지방에 둠으로써 중앙당의 전횡을 막고 당내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편 주민에게는 후보자 선택의 객관적 기준을 제공하며 후보자와 정당 난립을 방지할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을 요약하자면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보다는 지방정치의 현실에 맞게 대폭 개선하자는 것이다. 개선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2010 지방선거 제도의 5대 개선 방안
첫째, 지방선거에 한하여 풀뿌리 지방정당(local party)의 허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영호남 지역주의 구도 하에서는 전국 차원의 조직화와 정책이슈와 무관하게 특정지역의 주민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인 '지방정당'이 정당이나 단체로서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특정정당의 독주를 막고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볼 수 있다. 풀뿌리 지방정당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처럼 특정 지역에 압도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지역 패권정당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의회에서 이들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지역 밀착형 정당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의 등록요건으로 각기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한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진 정치적 결사체만을 정당으로서 인정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을 개정하거나,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단체 설립을 금지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 다수 국가들이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는 정당 난립을 이유로 지역정당을 제약하고 있지만,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나 독일의 바이에른당의 사례처럼 지방선거에서는 대체로 허용하고 있다.
▲ ⓒ뉴시스 |
둘째, 거대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소수당이나 무소속에게 불리한 일괄적 선거기호 부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교육감과 교육위원까지 한꺼번에 선출하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광역단체장에서 기초의회에 이르기까지 무려 8명의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의석수에 따라 앞 번호를 부여하는 현행 방식은 문맹률이 높은 근대 초기 사회의 전통적 방식이며, 효율적 선거관리를 위한 행정 편의주의 탓에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보다 신중한 선택과 정당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추첨식이나 지역의회의 의석별 기호 부여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셋째, 관변단체와 지역유지가 장악하고 있는 토호정치를 개혁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대표성과 정책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의회에 진출 할 수 있도록 광역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30%로 늘려야 한다. 기초의원의 비례대표 비율 역시 의원정수의 30%로 늘릴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도 신진세력과 소수정당의 진입을 촉진한다는 중선거구제 도입의 취지를 살려 지역특성에 맞게 3-5인 선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지방정치인에게도 후원회 제도를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무리 선거공영제라 하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선거에서 후원회를 금지한 것은 비현실적이다. 국회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현실화한다는 차원에서도 후원회 제도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지역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막대한 단체장의 경우 선거기간 동안의 후원회만 허용하되 지자체 의원들의 경우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상시적인 후원회 제도를 허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다섯째,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추천 및 선정 권한을 지역의 시민사회와 공유(로컬 거버넌스)하는 방안을 적극 도입하자.
영국 노동당의 경우 그 지역의 노조 지회, 사회주의 성향의 지역 결사체, 하위 당 조직 등 관련 기관들은 복수의 예비 후보자들을 지명한다. 독일 녹색당 역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전·평화·여성·환경단체들에게 EU 선거와 지방선거에서의 일부 녹색당 후보자에 대한 추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비록 비당원이지만 녹색당의 주요 현안에 대한 토론권한은 물론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권마저 부여하고 있다.
시민단체연대회의와 같은 지역의 신망 있는 협의체로부터 추천받은 인사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이는 단기적으로는 의회개혁에 도움이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시민사회와 정당정치의 연계를 통한 한국정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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