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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음악프로그램의 이상한 돌려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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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음악프로그램의 이상한 돌려막기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윤도현에서 이하나로, 그리고 유희열로

부지런한 세상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망스러운 소식들이 전해진다. 이제 암담한 뉴스를 접하는 일과는 '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의 문제가 되었다. 방송가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름은 아직 멀었는데 진행자 교체 등의 냉풍이 1년 내내 불고 있다. 멀쩡히, 그리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연예인과 음악인의 방송 하차가 새삼스럽지 않다. 며칠 전엔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뒤를 이어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진행해온 이하나가 갑자기 마이크를 넘겨주게 되었다. 이번에도 예의를 갖춘 양해보다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이틀간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에 시청자들의 항의가 300여건 가까이 빗발쳤다. 교체 사유가 광고수익 부진 등이라지만, 결과적으로 윤도현과 다음 진행자인 유희열 사이의 스티로폼으로 이용당했다는 설왕설래까지 있다. 윤도현을 떼밀 때에 비용절감을 고려했다고 했으니 유희열의 출연료는 어느 정도냐고 궁금해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사실 이하나의 기용은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은 되었다. 그러나 결국 브라운관 너머의 책임자들은 상당(히 적은)량의 비용으로 KBS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경감효과를 올리고 말았다.

다른 각도에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윤도현은 이하나를 알게 모르게 응원해주었고, 이하나는 YB(윤도현 밴드)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우애를 나눴다. 지난 3월에 그들은 한국대중음악상의 사회를 자청하여 맡기도 했다. 시상식의 난항에도 불구하고 사전 약속을 지키겠다는 순수한 의미였다. 속 좁은 사람이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어떤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못마땅해 하겠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믿고 싶다. 윤도현의 출연을 불편해한다는 인사가 있었고, 최근 예정된 KBS 출연이 속속 취소되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21세기 판 방송정화사업의 후유증

▲ 이하나의 하차마저 정치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방송가의 '정화사업'의 후유증을 앞서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할만하다. ⓒ뉴시스
알려졌다시피 한국대중음악상과 문화부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문화부가 시상식을 고작 일주일 앞두고 지원금을 없던 일로 하면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의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일시와 장소를 옮겨 개최되어야 했다. 지원금 얼마 때문에 그러느냐는 물정 모르는 얘기도 있지만, 무슨 행사든 1주일 전에 갑자기 돈이 빠지면 액수에 상관없이 차질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동차는 바퀴가 네 개지만 하나만 빼가도 난감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면에는 새 문화부가 한국대중음악상의 성향을 심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있었다.

물론 이하나의 하차마저 정치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본의와 다르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기에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방송가에 잇따르고 있는 '정화사업'의 후유증을 앞서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할만하다. 꽤 기여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갑자기 폐지하고 다른 진행자를 투입하면 예전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게 상식이다. 후속 프로그램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해야 하고, 돌려막기가 반복되면 불신만 증폭된다. 이번 일이 그러한 순리를 확인시켜준 것은 잘한 일이자 성과이다.

더구나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는 기품 있고 우아한 교체 방식은 고정 시청자를 깎아먹기까지 했다. 저간의 사정을 안다면 후임 진행자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개중에는 속상한 동네에 소금을 뿌리는(鹽藏) 이들도 없지 않지만, 유희열의 사려 깊은 팬이라면 마냥 좋아하며 순진무구함과 세상 돌아가는 일 따위엔 무관심함을 과시하기 힘들다. 근래 예술계와 방송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문화지체현상을 뛰어넘는 의식지체현상을 보여준다. 권위적인 소수가 일반의 의식수준과 떨어져 있는 만큼 무지에 가까워지는 현상이다.

정녕 회사를 위한다면 당장 실천할 일이 있다

그저 몇몇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프로그램만의 한계도 아니다. 방송 시스템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속성과 허점의 압축판이다. 하차를 해야 한다면 타당성도 검토하지 않은 결정으로 광고들을 덜어낸 것도 모자라 자사 이미지까지 악화시킨 책임자가 해야 맞다. 노고가 많은 현장의 제작팀이 아니다. 일반 기업이라면 신중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주장했거나 하달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 유사한 사례들이 각 방송사에 끼친 영향을 수치로 환산한 연구는 아직 발표된 바 없지만, 호감도가 족히 1/18이나 1/28 정도로 축소되고 있지 않나 싶다.

경영 차원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개입되었다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이 순수하면 남의 순수를 발견하지만 자신이 정치적이면 남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물 들어왔을 때 그물이나 치자는 식의 행위와 자의적인 마타도어 생산은 위험하다. 간략히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면 굳이 종이의 수면을 방해하고 애꿎은 마우스의 노동을 가중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50년간 살인죄로 복역한 사람에게 공무원 한 사람이 찾아와 머쓱해하며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이거 좀 죄송하게 되었네요. 진범이 잡혔다더군요."

사회의 다원화가 국체유지에 유리하듯이 문화와 방송의 다원화 역시 필수적이다. 입에 쓰면 뱉고 덜 달아도 뱉을 바에는 차라리 지자체의 장이나 기업 대표들이 굳이 출연해가며 모양새만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광고들을 벤치마킹하는 편이 낫다. 속 편한 속편이 환영받든 말든 연이어 맹(구)타를 휘두른다면 많은 연봉을 축내면서 해사행위에 열중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정녕 회사를 위한다면 당장 실천할 일이 있다. 사과상자를 하나 구해 슬리퍼와 칫솔을 챙겨 넣은 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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