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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도 노동자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뉴스메이커]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원들, 해고 후 첫 집회 가져

4월 8일 수요일 오후 세 시,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광부') 앞. 한쪽에는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반대! 부당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하라!" "국립예술단체의 역할을 망각한 국립오페라 합창단의 해산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난 3월 31일자로 계약 해지 통고를 받으면서 사실상 해고된 국립오페라 합창단원들의 제5차 결의집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4월 1일부터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해고된 이후 처음 갖는 집회였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구호가 울려퍼졌다. 규탄발언과 연대발언이 이어지다 집회 말미에 예의 합창단원들이 앞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4월의 햇살이 따갑게 꽂히고 황사 때문에 입안이 꺼끌거리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도, 목이 악기이자 생명인 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부른 곡마저 얄궂게도 '오 해피데이'였다.

▲ 해고 이후 첫 집회를 가진 국립오페라합창단 노조원들. 집회 말미에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프레시안

"할 만해요."

해고 이후 열린 첫 집회에 대한 소감을 묻자 소프라노 이윤아 씨는 웃으며 말한다. 투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투쟁 현장에서 좋은 노래를 들려주지 못해 속상하단다. 해고 투쟁을 하느라 연습도 부족한 데다 황사가 부는 거리에서 계속 노래를 하며 목을 혹사하다 보니 이전보다 실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혹여 거리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들은 이들이 "국립오페라합창단 실력이 이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할까 두렵단다. 오페라 문외한의 귀에는 눈물이 찔끔 났을 정도로 좋기만 한데, 역시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실력에 가장 예민하다.

지난 1월 구두로 해고를 통보받은 이후, 문화예술계 전체가 들썩이고 오페라합창단 문제는 신문의 문화면뿐 아니라 사회면을 가득 채웠다. 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반대하는 13,000여 명의 서명지도 문광부에 제출됐다. 하지만 합창단원들은 3월 31자로 결국 공식 해체를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이후 문광부에서는 "비영리단체 통해 새로 (민간) 합창단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를 흘리고 있는가 하면, 국립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은 "합창단은 규정에 없는 단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속 극장 하나 가지지 못한 국내 오페라의 현실"을 개탄한다. 전속 극장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멀쩡히 존재해 활약하고 있던 전속 오페라합창단을 없애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민주당 최문순 국회의원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소영 단장의 각종 비리 사실이 밝혀지면서 도덕성 시비도 일고 있는 상태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2002년 창단 이래 7
▲ 누가 이들에게서 노래를 빼앗아갔나?ⓒ프레시안
년간 국립오페라단의 전속 합창단으로서 활동해왔으며, 합창단 단원들은 겸직이 금지되는 한편 외부와의 협동 공연도 사전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국립오페라단이 그간 '찾아가는 오페라'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소외 지역을 돌며 콘서트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건 '국립'예술단체로서 '공공성'을 우선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합창단원들이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고 월 7, 80만원의 박봉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매년 합창단원 모집시 반복되었던 '상임화'의 약속 때문만이 아니다. 문광부는 이들을 가리켜 '국립'이라는 말에 연연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들이 그간 열악한 조건을 감내해온 데에는 자신들이 '국립'오페라단에 소속되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술가들이란 자부심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들 중 아무도 제 월급을 몰랐는데 이번에 다 들통났죠."라며 웃던 이윤아 씨는 곧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정은숙 전 단장이 말하기를, 국립오페라단은 비영리단체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오페라 자체가 제작비가 많이 들고 수익이 안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죠. 하물며 저렴한 입장료를 받는 오페라 콘서트 같은 공연처럼 이윤도 안 남는 걸 국립단체가 아닌 민간단체가 어떻게 계속할 수 있겠어요?"

문광부는 이미 국립합창단이 있는 이상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해체를 강행했다. 하지만 이윤아 씨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의 말을 따르면, 오페라합창단은 합창단과 달리 특수한 기능과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일반 가수와 뮤지컬 배우가 구분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가수가 얼마든지 뮤지컬 배우가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가수가 다 뮤지컬 배우는 아닌 것과 같다.

"오페라합창단은 일반 다른 합창단과 달리 특수할 수밖에 없어요. 합창단은 오페라를 이루는 필수요소 중 하나로, 공연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를 뚫을 수 있을 만큼의 특별한 성량을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오페라합창단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합니다. 성악가이기도 하지만 '연기자'이기도 해요. 무대에 등장할 때 어느 발이 먼저 나가야 하는가, 무대의 테이블 위에 있는 물컵을 잡을 때조차 손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신경써야 하죠. 작품 한 편이 정해지면 한 달은 노래, 한 달은 연기를 집중적으로 리허설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7년간 다져온 노하우와 기량이 있는데, 국립오페라단은 우리를 해고하고 대신 학생합창단 등을 동원해 공연하고 있습니다. 공연의 질에 있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 국립예술단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해고 사태는 결국 국민의 '문화와 예술을 누릴 권리'와 직결되는 사태라 볼 수 있다.ⓒ프레시안
실제로 국립오페라단은 1월 포항에서 <휘가로의 결혼>을 공연할 당시 계명대 성악과 학생들을 합창단으로 급조해서 무대에 올렸다. 3월 LG아트센터에서 <마술피리>를 공연했을 때에도 국립합창단이 함께 공연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무대에 섰던 합창단은 국립합창단원 20명에 객원 20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그나마도 국립합창단의 자체 일정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을 국립오페라단에서 재차 요청해 겨우 20명이나마 협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연이 이루어진다면 무대에 선 이들이 개인별로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졌다 한들 전체 공연의 질에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공연의 질뿐만이 아니다. 2001년 당시 한 해에 24회에 불과했던 공연이 2008년에 '찾아가는 오페라' 공연을 포함해 54회로까지 늘어날 수 있었던 데에도 합창단의 존재가 컸다. 그나마도 원래 59회 가량 예정돼 있던 것을 이소영 단장이 취임한 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몇몇 공연을 취소하는 바람에 54회가 된 터였다. 그러나 2009년 4월 현재 국립오페라단은 총 10회의 공연만을 한 상태. 3월에서 5월 사이는 각종 공연으로 국립예술단이 가장 바쁜 때이지만, 국립오페라단의 연간 일정에는 4월 공연이 아예 없다. 5월 말 고양 아람누리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돼 있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경우 연습도 변변히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오페라에 출연할 합창단을 섭외하지 못해서다. 이소영 단장 부임 이후 '찾아가는 오페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설된 UTO(University Tour Opera) 시리즈는 대학을 순회해 공연하며 미래의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정작 지난 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휘가로의 결혼>으로 첫 공연을 올렸을 당시 한예종의 학생 오케스트라를 섭외했으면서도 VIP석의 가격은 무려 9만원에 달했다.

현재 합창단원들은 월, 수, 금 출근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출근을 해도 로비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법정 판결이 아직 나오기 전인데도 국립오페라단 측에서 합창단 연습실의 문마저 잠궈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일 국회와 문광부 앞에서는 번갈아가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고, 매주 수요일에는 오후 세 시에 문광부 앞에서 집회를 갖는다. 매월 첫째, 셋째 금요일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촛불음악회'도 계속하고 있다. 곧 국회에서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보다 많은 관객에게 보다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의 꿈이다. 하지만 그간 문광부와 국립오페라단은 '상임화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반복하며 그들의 꿈을 이용해 착취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 비정규직을 악용한 사례 중에서도 최악으로 분류될 만하다. 더욱이 정부기관과 국립예술단체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또한 이 사건은 '문화선진국'을 강조하면서도 장기적 안목과 비전 없이 마구잡이로 정책을 실행하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국립예술단이 국민의 문화와 예술을 누릴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이라 할 때, 이번 해고사태는 예술노동자들의 생존과 존중감을 해칠 뿐 아니라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합창단 해고 사태를 단순히 합창단원들의 생계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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