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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통보서가 말하는 것

[위기의 자동차, 위기의 노동자①] 고용유지지원금이 해고의 명분?

경제 위기로 인해 제조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실질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다. 현재 먼저 '해고통보서'를 받아들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지만, 경제 위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규직도 안전하지 않다.

대체 지금,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 정책위원이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릴레이 기고로 고발한다. 이미 '해고'가 벌어지고 있는 쌍용차와 GM대우, 현대차의 '사례'를 통해 2009년 대한민국 노동자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파헤친다.

지난 3월 5일, 20명의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아 들었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강제로 장기 휴업 상태였던 이들이 끝내 '해고'라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오는 4월 23~25일 부로 해고하겠다고 밝힌 5개 사내하청 업체 외에도 또 다른 사내하청 업체 한 곳도 15명에 대해 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해고 예정자는 사실상 35명이다.

물론 지금 소리 소문 없이 잘려 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례는 곳곳에 있다. 그러나 쌍용차의 해고 예정자 35명 가운데 무려 25명이 금속노조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직된' 노동자를 상대로 날아든 집단 정리해고 통보는 완성차 업계에서 처음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작은 사건처럼 보이는 이 일은 사실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의 방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체 쌍용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 통보서'가 보여주는 휴업과 정리해고의 상관관계

지난해 10월 27일, 쌍용자동차 노사는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라인재배치, 전환배치를 합의한다. 동시에 사내하청 700여 명 중 절반에 달하는 350명에 대한 유급휴업도 합의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합의를 정규직 노사가 마음대로 한 것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휴업으로 나간 자리에 정규직이 전환배치 되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노사는 비정규직 유급휴업을 합의하면서 "업체계약기간 내 (2009년 9월 말까지) 업체직원의 신분을 유지한다. 휴업기간 내에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강제적인 인원정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러나 이 합의 또한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1월 4일 노사가 희망퇴직을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그 의미가 사라졌다.

희망퇴직 합의 바로 다음날인 11월 5일부터 휴업이 시작됐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도 될 수 있다"는 하청업체 사장의 말을 믿고 10년 안팎 일해 오다 강제휴업이 합의되는 것을 보며 '희망을 잃어버린' 300여명의 비정규직은 희망퇴직에 응했다.

반대로 "노동조합을 믿고 한번 버텨보자"며 마지막 희망을 간직한 이들만이 희망퇴직을 거부한 채 끝이 언제인지도 모를 휴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 35명의 다수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그들은 '절망퇴직'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서 싸워보자는 전망을 품고 버텨왔다.

그리고 휴업이 시작된 지 꼭 4개월이 된 3월 5일, 이들에게 해고 통보서가 날아온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나라, 게다가 해고되면 나가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거의 불가능한 대공황 상태에서 정리해고는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재밌는 것은 5개 업체가 날린 통보서는 글자 몇 개를 제외하곤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홀딱 벗고 뛰기'로 작정한 쌍용차"

우선 이 통보서는 원청사용자('갑'사)가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 사용주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 통보서는 사내하청에 대해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 완성차 자본가들이 즐겨 쓰던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표현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즉,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단순한 단어 사용의 변화로만 볼 수는 없다. 통보서 내용 중에는 원청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휴업임금을 '손실보상'이라는 형태로 직접 지급해 왔다는 점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없는"이란 표현 또한 원청인 쌍용차가 정리해고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적 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불법파견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이런 표현을 어떻게 공문서에 담게 되었을까? 하청업체들의 실수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청업체들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문구를 담았다는 것은, 위 문서의 기초 작성자는 쌍용차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아예 노골적으로 나가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경제위기와 대공황인데 불법파견 같은 시시한 쟁점에 걸리는 것이 무에 대수이겠냐는 것이다.

"불법파견? 억울하면 고발해! 어차피 법원에 소송 걸어야 할텐데 법정관리 들어간 기업 상대로 몇 년 동안 소송한들 이긴다는 보장도 없을 걸?"

쉽게 말해 비정규직의 실질사용주가 원청임이 드러날지라도 공황과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려는 마당에 "차라리 홀딱 벗고 뛰자"고 결심한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중단되면 곧 바로 정리해고 절차로?"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휴업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기간의 최대치는 180일, 6개월이다. 휴업 후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경우에 한해 90일 연장이 가능하지만, 합쳐 봐야 9개월인 것이다. 그럼 9개월 후에는?ⓒ프레시안
두 번째 주목할 점은 휴업임금('손실보상')이 지급되는 시기 동안만 고용을 유지하다가, 그게 끊어지니까 정리해고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되는 동안은 고용을 유지하되, 지급이 중단되면 그 지원금이 바로 정리해고의 명분으로 돌변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 사실은 엄청난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제조업의 상당수가 감산으로 인한 휴업·휴직·교육훈련을 실시하면서 휴업임금 지급을 위해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원금을 받는 동안은 해고가 어렵다. 해고 사실을 숨길 경우 그간 받은 지원금에 덧붙여 과징금까지 내야 한다.

그런데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휴업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기간의 최대치는 180일, 6개월이다. 휴업 후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경우에 한해 90일 연장이 가능하지만, 합쳐 봐야 9개월인 것이다. 그럼 9개월 후에는?

본격적인 제조업의 감산이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기업들이 받던 지원금은 오는 5월이면 6개월이 된다.

쌍용차 정리해고 통보서에 비춰볼 때, 5월이면 이 지원금이 '고용유지'가 아니라 '정리해고'의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법률가나 행정부는 이 지원금만으로 해고 회피 노력의 전부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명분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당장 쌍용차만 보더라도 신차인 C-200 공사 관련 조립1과가 5월 말까지 3개월간 휴업 예정인데, 휴업이 5월 말보다 연장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게다가 6월부터 출근하는 인원은 고작 20~30%에 불과할 뿐, 심한 경우에는 연말까지 휴업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이들 역시 휴업임금을 고용유지지원금에서 받는다. 6개월 이상 휴업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인데, 지원금이 끊기는 6개월 이후 이들은 어떻게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첫 번째 정리해고 타깃은 장기 휴업자다"

세 번째로, 주목할 점은 정리해고의 대상을 장기 휴업자로 명시한 것이다. '합리적인 대상자 선정 기준'이라는 법적 요건은 논외로 하려 한다. 경제 위기를 핑계로 있는 법도 바꾸겠다고 난리인 판에, 법을 준수하리라는 기대 자체가 순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경영계가 현재,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느냐이다.

물론 대규모 정리해고가 강행될 경우에는 장기휴업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는 공격 양상을 볼 때 '당분간'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수단을 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규모 인원정리 방식으로 장기휴업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자동차산업 부품사에서는 상당 기간 교육·휴업으로 장기간 현장으로부터 격리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완성차에서도 감산의 여파가 사업부나 부서별로 편차를 보이면서, 앞에서 사례로 든 쌍용자동차 C-200 관련 휴업처럼 일부 부서는 장기간 휴업을 보내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바로 그러한 노동자들이 자본의 공격에 가장 손쉽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사들의 보수만 줄여도 비정규직 고용보장 충분히 가능한데…"

비정규직 노동자 휴업임금의 평균은 100만 원 가량이다. 따라서 35명의 장기휴업자들의 휴업임금을 모두 합쳐봐야 월 35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만일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활용할 경우 휴업임금의 3분의 2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므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휴업임금은 월 1000만 원 정도로 줄어든다.


그런데 위 표에 나온 '쌍용차 임원 보수 현황'을 보면 2008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쌍용자동차 이사 1명에게 지급된 보수 평균이 1억2600만 원으로, 월 평균 2100만 원에 달한다. 비정규직에게 지급할 휴업임금이 없어서 정리해고 하는 회사의 임원 평균월급이 2100만 원???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한다는 전제 아래, 쌍용자동차 이사 1명의 보수를 절반으로만 삭감해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지급할 휴업임금이 만들어진다.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이사 4명의 보수를 절반으로만 삭감하면 비정규직 휴업임금을 지급하고도 남는다. 실로 충격적인 사실 아닌가?

'경영계가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기 위해 비열하게도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부터 칼을 겨누고 있다'는 노동계의 반발은 이런 이유 탓이다. 한 달에 수천 만 원 씩의 임금을 받아가는 사용자들의 부담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은 얼마든지 보장할 수 있으며, 그들의 임금을 충분히 올려줄 수도 있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빅3' 총수들이 - 비록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할지라도 - 연봉을 단 1달러만 받겠다는 선언을 하는데, 왜 쌍용차 임원들은 그런 방식으로 비정규직 고용보장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경영계의 공격은 비정규직 정리해고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에 대한 임금·복지삭감은 물론이고 대대적인 희망퇴직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은 사냥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결코 아량을 베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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