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를 매우 논쟁적인 방식으로 다뤘던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96년작 <래리 플린트>의 한 장면. |
가수 유영진은 H.O.T.의 작사작곡가로 유명해졌다. SES와 신화의 노래를 만들었고 지금은 동방신기와 보아의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있다. 현대의 대중가요가 말 그대로 대중화된 중세의 사랑노래라면 유영진은 이 시대의 바이런이나 세익스피어다. 위대한 시인들이 노래했던 사랑과 섹스를 그는 현대적인 리듬과 박자에 맞춰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사실이다. 유영진에 비하면 바이런과 세익스피어는 훨씬 고귀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면 그건 문학적 기품 탓이겠지 소재의 수준 차이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사랑과 사랑을 나누는 섹스 말이다.
유영진이 작사한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이 곡절 끝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 아니란 판정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주문'에서 '넌 내게 미쳐. 헤어날 수 없어'같은 가사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주장했다. 섹스를 연상시킨다는 얘기였다. 바이런이 비웃고 갈 얘기다. 사랑 노래 가운데 키스와 섹스를 은유하지 않는 건 없다. 키스와 섹스는 인간에게 유해한 게 아니다. 미성년 보호는 저작물 검열의 명분이 된다. 세익스피어도 코웃음 칠 얘기다. 로미오는 열 일곱 살 줄리엣은 열 네 살이었다. 재판부는 "'청소년에게 성적 욕구를 자극할 정도로 과도하게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번 확정된 유해물 판결이 뒤집히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개운치가 않다. 어느 정도면 유해한 것인가. 무엇이 유해한 것인가. 누구에게 유해하단 것인가. 그걸 누가 어떤 자격으로 구별할 것인가.
금지곡이 난무하던 긴급조치 시대는 과거의 유물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권력은 대중들 개개인한테 넘어갔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유해한지를 판단할 권한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2001년 유영진이 발표한 'Obsession'은 불행하게도 대중의 귀를 사로잡지 못했다. 유해물 논란 따위에도 얽히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중은 스스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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