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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게 '한반도 대운하'의 타당성을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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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게 '한반도 대운하'의 타당성을 묻는다면…"

[철학자의 서재] <UFO 아미코의 지구별 환경 탐사 보고서>

▲ <UFO 아미코의 지구별 환경 탐사 보고서>(김종옥 지음, 조진옥 그림, 휴먼인어린이 펴냄). ⓒ프레시안

"나는 '동물'이다"라고 말하기의 어려움

2009년, 올해는 찰스 다윈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공교롭게도 그가 남긴 불후의 명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올 7월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는 수천 명의 관련 학자들이 모여 학술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 하고, 한국에서도 11개의 학술단체가 모여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기념 학술 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나 또한 진화론에 나름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은 터라, 이 떠들썩한 움직임에 관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처음 진화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진화론, 그 가운데서도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에는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많았지만, 곳곳에서 유인원이나 다른 종의 행동에 대한 사례 연구가 더욱 많이 눈에 띄었다.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아마도 책장을 넘기는 어느 순간에 이런 소리를 했을 것이다. "이런, 나랑 원숭이랑 같다는 얘기잖아!" 사실 그것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온 소리였고, 아주 불쾌한 느낌이었다.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에게 인간은 무엇보다 이성적인 존재이다. 생각하고 따지며, 도구를 만들어 환경을 개선하고, 고상한 문화를 만들어 삶을 향유하고 즐길 줄 아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진화론이란, 무기물로부터 인류가 진화하기까지 모든 생명체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고귀한 '과학'이고, 인간의 질병이나 행동을 더욱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삶을 한층 진보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인간 기획의 이론적 토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장을 더 넘길수록 그런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그 동안 내가 공부해 온 생각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사람과 동물의 다른 점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고등학교 때 우리는 무기물과 유기물,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로 세계의 모든 것을 분류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러한 분류의 가지에 영장류가 있고, 그 영장류 가운데 하나의 종이 인류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언제나 그 바깥에 있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런데 진화론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 또한 '동물'이고 '생물'이며, 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과 수많은 생명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순간 내 머리 속에 <장자>에 나오는 '혼돈'(渾沌)이 떠올랐다. 인간들과 달리 얼굴에 구멍이 하나도 없었던 혼돈에게 눈과 귀, 코와 입의 일곱 구멍을 뚫어주자 그는 갑자기 죽어버렸다. 그 때, 내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던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도 함께 죽어버렸다.

나는 '아홉 개의 구멍'일 뿐

하지만 이 같은 나의 경험이 '인간'이라는 고상함의 죽음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고,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인해 유전체의 개수까지 확인된 지금,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이 과거보다 더욱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내 눈에는 새로운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구규'(九竅)이다.

동아시아의 고전에는 인간만을 가리키는 독특한 용어들이 있다. 지금도 우리가 쓰고 있는 '사지'(四肢)는 팔다리로 이루어진 우리 몸을 가리키고, '백해'(百骸)는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뼈를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인간을 가리키는 독특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아홉 구멍'(九竅)과 '일곱 구멍'(七竅)이다. 일곱 개의 구멍은 혼돈에게 없었던, 눈 귀 코 입을 말하고 여기에 항문과 성기/요도의 구멍 둘을 합하면 '아홉 구멍'이 된다. '구규'는 특히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에서 인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쓰인다.

<장자>는 이런 용어들을 동원하여 이렇게 묻는다. "인간의 몸은 일백 개의 뼈와 아홉 개의 구멍과 여섯 개의 장부를 갖추고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어느 것과 가장 가까운가?" 물론 이 모든 것이 합쳐져야 우리의 '몸'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아홉 개의 구멍'이 상징하는 의미를 우리는 한 차례 곱씹어봐야 한다. 코로 숨쉬고, 입으로 먹고, 요도와 항문으로 배설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바로 하늘과 땅과 서로 소통하면서 그 안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존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학자 유진 오덤은 그의 책 <생태학>을 1970년 아폴로 13호의 귀환과정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달에 접근해 가던 4월 13일 사령선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자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고, 아폴로 13호는 즉각 지구로 귀환하게 되었다. 산소와 전기가 부족했고, 점점 차오르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좁은 우주선에서 여러 명이 배설하는 소변이 우주인의 발을 적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소변을 우주선 밖으로 배출하면 우주선의 궤도이탈이 우려되어 그냥 바닥의 부대에 저장했다고 한다.

철학과 예술로 폼을 내고, 온갖 문명의 성취로 스스로의 외피를 두르지만 실상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단지 아홉 개의 구멍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숨 쉬어야 하고, 먹고 마셔야 하며, 눈을 감고 잠을 자야하고, 요도와 항문으로 배설해야 하는 그런 존재가 인간이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도 실은 '아홉 구멍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열린 아홉 구멍으로 드나드는 모든 것을 채워주고 받아주는 그것이 없을 때, 우리는 순식간에 소멸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유진 오덤은 아폴로 13호의 귀환 여행에서 겪은 어려움과 똑같이 지구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경 위기의 징후들은 "우주선 지구호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초기 경보"라고 말한다.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며 고상한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며 살아가지만, 실상 생물로서 인간이 처한 생태학적 위기는 이제 우리 스스로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현재 문명의 지속은 물론 인류 절멸의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환경의 파괴는 곧 우리 몸의 아홉 구멍이 막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연 우리는 아홉 구멍이 막힌 채로 살 수 있을까?

"지구에 인간만 없다면…"

김종옥의 <UFO 아미코의 지구별 환경 탐사 보고서>에서 펼쳐지는 생각은 이 같은 나의 고민과 매우 닮았다. 저자는 유진 오덤과 같은 생태학자의 시선을 더욱 색다르고 낮은 곳까지 방향을 바꾸어 끌어내린다. 마치 다윈이 우리 몸속의 '동물'을 응시했듯이 말이다.

"지금 우리 인간들은 한껏 잘난 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건축물과 자동차로 꽉 찬 도시, 유전자 조작 기술,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미세 기술, 어마어마한 댐과 운하 따위를 만들면서 '어때, 나 대단하지?' 하고 뽐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뽐낼 만한 일일까요? 그건 어쩌면 어릴 때 하던 '땅따먹기' 놀이와 같은 건 아닐까요? 많이 차지했다고 으스대고 좋아하지만, 결국 남의 몫을 '빼앗은' 것일 뿐이지요." (6쪽)

저자는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외계인이 늘 침략자로 나타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외계의 행성을 방문하더라도 먼저 폭격을 퍼붓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누구와 인사를 할지" 망설일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문명을 뽐낼지 모르지만, 외계인의 눈으로 보면 수많은 지구 생물의 몫을 빼앗고 착취하면서 자기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려 가는 아주 이기적이고 괴상한 폭군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낯선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어떠할까 하는 물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니말로'(동물), '플란토'(식물), '미네랄로'(광물), '게노'(유전자, 생명)이란 이름을 가진 외계의 어린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지구를 탐사하러 온다. 그들의 고향 '비비'(살다)는 괴물질로 인해 파멸되었고, 모든 지적 생명체는 '파밀리오'(공동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유랑하고 있다. 이들의 지구 환경 탐사 보고서는 이 행성이 장차 파밀리오가 평화롭게 공존할 만한 곳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작업이다.

지구에 도착한 네 외계 어린이는 식물과 동물을 만나 대화하면서 생명의 의미를 묻는다. 그들은 여러 생명체를 만나가면서 참으로 희한한 생명체인 '인간'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인간만 사라져 준다면" 하는 마음으로 인간 종의 횡포와 착취에 이를 갈며 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외계 어린이들은 엄마(생명)를 찾아 헤매는 인간 어린이 '아해'와 만나 여행을 계속하지만, 환경파괴마저도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숑숑당 그룹의 기계 '몰토'를 보며 실망한다.

외계 어린이의 눈으로 본 지구의 생명과 환경

결국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아해와 더불어 지구를 떠나면서 외계 어린이들은 <지구별 환경탐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지금으로서는 그 자신과 친구들의 목숨마저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인간 종족에게, 우리 파밀리온의 이웃이 될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는 행복하게 더불어 살 곳을 찾고 있는 우리 파밀리온으로서는 매우 슬픈 일입니다.

다만 인간이 '우정'을 회복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정이란 '공존'과 '조화'를 상징하며, 인간 사이뿐 아니라 지구 생명체 전체와 인간 사이의 우정을 뜻합니다. 지금 인간은 공존과 조화의 우정에 살짝 눈을 떠가는 상황이나, 워낙 욕망이 강하여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지구의 지적 생명체로서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신들의 친구인 지구 생명 모두를 살리는 우정이 살아난다면 좀 더 오래 살아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같이 살고 있는 생명체들까지 더불어 예상보다 지구에서 짧게 살다 간 생물종이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도 꽤 커 보입니다."



― 대표 작성자: 미네랄로, 작성 일자: 270억 촘촘.


저자는 외계 어린이의 시선을 통해 지금의 지구는 "인간이 지적생명체로서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결론짓는다. 생태학자나 과학자들이 말하는 학문적 근거를 책 속에 녹여가며 나름대로 뼈아픈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SF소설 형식으로 이루어진 김종옥의 <UFO 아미코의 지구별 환경 탐사 보고서>는 환경과 생명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제고할 것을 권하는 가슴 따뜻한 철학적 소설이다. 물론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지구의 파멸을 예고하는 섬뜩함이 있지만, 그 안에는 환경과 생명의 의미, 생명에 대한 예의와 같은 지나칠 수 없는 과학 지식과 환경 윤리가 유쾌한 문장의 숲 속에 녹아 있다. 또한 환경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애틀 인디언 추장이나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이 등장하고, 새만금이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과 같은 우리 이야기들, 장회익 선생님의 온생명 이론 등 생태와 환경에 관한 지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외계어린이의 '토론방'이나, 카페에서의 토론회, 국제회의장에서의 토론 등 곳곳에서 토론마당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작자가 의도한 바, 교실이나 학습 현장에서 이 내용을 도구로 해서 토론을 함으로써 누구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아니말로', '게노', '플란토'와 같은 주인공들의 낯선 이름은 에스페란토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도는 패권주의적인 영어에 비해 새로운 언어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려는 저자의 세심한 배려에서 나왔다. 이와 더불어 이름에 맞게 구상해 낸 캐릭터 이미지들과 삽화는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생명과 환경의 문제는 어른과 기성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과 아이, 현재와 미래의 세대가 함께 나누고 생각해야 할 근본적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재미있게 읽으면서 스스로, 함께 환경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텍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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