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살아나서가 아니다. 돈이 아파트로 몰릴 환경이 조성됐고, 때맞춰 규제완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강남권 아파트 시장의 특성이 뚜렷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추가 상승은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가능성 거론을 떠나, 추가 상승은 안 된다는 경고도 나온다. 비정상적 움직임이 이어지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잠실 파크리오 전경. ⓒ프레시안 |
일부 재건축, 2006년 가격 거의 회복
대치동 은마, 개포동 주공1단지, 잠실 주공5단지 등 이른바 '강남 서민 아파트' 3곳 가격은 최근 'V'자형 모습을 보이며 뚜렷하게 반등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34평형)는 지난달 최고 11억3000만 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8억6000만 원 선까지 내려갔던 곳이 석 달 만에 3억 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이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6년말 당시는 최대 14억 원 선까지 오른 바 있다.
▲주요 아파트 가격 변동 추이. 경기가 여전히 바닥을 찾고 있지만 강남권 아파트 '호가'는 상승세를 보인다. ⓒ프레시안 |
이들 아파트는 공통적으로 재건축 기대감을 받아왔다. 박합수 국민은행 PB사업팀장은 3일 "강남3구가 투기과열지구에서 풀리면 재건축 조합이 설립된 단지를 중심으로 매매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다소 있다. 가락 시영아파트, 개포 주공1단지 등은 이미 조합이 설립돼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규제완화 최고 수혜지 중 한 곳은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다. 이곳은 지난 1일 재건축 용적률을 완화하는 도정법 개정안 통과 이후에만 열 건 이상 거래가 이뤄졌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4월 첫째 주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는 강동구 아파트 매매가는 0.56% 올라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 0.17%를 큰 폭으로 넘어섰다. 강남구, 서초구는 각각 0.47%, 0.45% 올랐고 송파구는 0.13% 상향조정됐다.
당연히 매매가도 급격하게 치솟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주공4단지 16평형은 지난해 말 4억 원이던 매매가가 최근 6억 원 선으로 치솟았다. 이곳은 부동산 거품이 한창일 때 최고 7억 원에 거래되던 지역이다. 34평형의 경우 6억3000만 원에서 8억7000만 원까지 거래가가 뛰었다.
ㅁ중개업소 최인선(가명) 대표는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졌고 롯데월드가 들어선다는 소식도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건축 반등을 노리고 찾아오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중개업소는 지난달 한 달 동안만 40건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가히 폭발적이다.
실거주자 중심 지역은 잠잠…호가만 올라
하지만 일부 재건축을 제외하면 여전히 부동산 거래건수는 바닥을 긴다. 호가만 오를 뿐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매수세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호가가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말 입주를 시작한 잠실 파크리오 인근 ㅈ중개업소 나소영(가명) 대표는 "기대심리가 커져서인지 매도자들이 종전에 내놓았던 매물도 다시 거둬들이는 추세"라며 "매수심리도 최근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이지만 호가를 따라잡기 버거운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지하철 분당선 개통 호재가 있는 분당 정자동 우성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초 8억 원 선이던 47평형 호가는 최근 9억 원대로 올랐지만 매수세는 전혀 붙지 않는다. 인근 ㅅ중개업소 고영수(가명) 대표는 "작년보다 팔고자 하는 사람들의 문의는 늘어났는데 거래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는 다 실거주자가 오는 곳인데 누가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을 때 아파트를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사교육 일번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교육 수요로 인해 전세 입주자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강남권 투자수요와 교육수요가 만나는 접점이다. ⓒ프레시안 |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4월 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전국의 3월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보다 0.2% 하락했다. 하락세가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강남지역은 오히려 전국 평균보다 큰 폭인 0.4%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최근 아파트 호가 상승은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을 뿐, 아파트 시장 전체가 되살아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체력 강한 부자들이 호가 높여…"강남아파트는 사치재"
재건축 아파트가 경기와 관계없이 가격상승을 보이는 원인은 규제완화 기대감 외에도 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과 대출금리 하락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로 풀어놓은 시중 유동성이 결국 강남권에서도 단기 투자가치가 높은 재건축 아파트 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얘기다.
이혜순 닥터아파트 연구원은 "정확하게는 '강남 아파트 시장이 오른다'는 표현이 아니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일부가 오른다'는 게 맞다.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그 동안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시중자금이 재건축 시장에 몰린 것"이라며 "그 동안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워낙 크게 하락해 그 갭을 메운 것 이상의 의미를 둬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주식은 변동성이 너무 크고 해외 증시 투자도 수익성이 낮아 곤란하다. 자산가들이 관심을 가질 곳이 현금화가 가장 쉬운 부동산 말고 또 있겠느냐"고 했다.
▲분당 정자동 아파트 지구. 강남권 접근성이 좋아 투자가치도 높은 지역으로 각광받았으나 호가만 오를 뿐,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최근 거래 수요와 관계없이 호가만 높아지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전문가와 강남권 자산가는 '버틸 체력이 남은 사람들이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한다.
박합수 팀장은 "최근 강남권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한 사람은 결국 강남권의 자산가다.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추가 규제완화 기대심리로 시장가격을 밀어올린 것"이라고 했다.
수백억 원의 자산을 소유한 자산가 김모 씨(도곡동)는 "그 동안 매물을 내놓은 사람들은 유동성에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다. 금융자산을 크게 잃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가지고 있던 아파트 중 싼 것을 중심으로 '땡처리'한 것"이라며 "이런 급매물들은 2월까지 다 처리됐다. 지금 가진 사람들은 체력 좋은 사람들이다. 경기 수준과 관계없이 이들은 버틸 수 있다. '안 팔리면 말고'하는 심정으로 호가를 높인 것"이라고 언급했다.
변 교수는 최근 아파트값 상승 추세가 결국 강남 아파트 시장이 가진 폭발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경기가 조금만 회복기미가 있으면 아파트 시장은 곧바로 폭발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며 "강남 아파트는 다른 지역과 조금 성격이 다르다. '사치재' 성격이 짙다. 소비자의 소득능력으로 보면 강남 아파트 가격이 거품이지만 다이아몬드와 같은 사치재 성격을 가지니 일반적 아파트 가격변수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처럼 휘발성 강한 아파트 시장에 마지막 남은 투기제한 규제마저 풀어버리면 폭발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시장 전문가들은 "추가 상승은 힘들다"는데 무게를 두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결론이다.
변 교수는 "강남권 부동산 시장은 경기를 선도하는 특성도 일부 있다. 만약 규제를 다 풀어놓은 다음 아파트 시장이 다시 폭발하면 재규제가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부동산 시장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정부가 강남권 아파트 가격을 잘 통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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