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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제한구역, 조종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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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제한구역, 조종 울리다

[윤재석의 '갑론을박'] 그린벨트→비닐벨트→개발벨트→사망벨트?

어제(4월2일)자 <동아일보> 1면 톱 기사를 보면서 참담했다. 동시에 든 불길한 생각, "아! 이제 서울-경기-인천이 남한 전체 인구의 과반이 거주하는 울트라 메가시티로 변모하겠구나"였다.

그린벨트 훼손 총대 멘 <동아>

"서울 도심서 25km내 '비닐벨트'에 일반분양 아파트 24만채 짓는다"는 제목의 기사는 동아일보가 사흘 전인 3월31일 정종환 국토해양부를 단독으로 만나 가진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정부 계획이었다.

일부 포털과 방송에도 소개됐으니 간략히 내용을 정리해 보자.

(1) 말만 그린벨트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된 서울 근교 '비닐벨트'를 해제해 주택 40만 채를 짓는다.

(2) 도심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에 매년 평균 2만4000채 씩 10년간 일반분양 아파트 24만채를 공급하면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커져 주택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3) 특히 해제 부지 일부를 보금자리주택단지로 지정해 2018년까지 임대주택 16만채를 지어 저소득층에게 분양한다.

(4) 국토부는 서울 강북 도심에서 반경 25km 범위 안에 있는 서울과 경기 경계지점의 그린벨트와 산지, 구릉지 등을 택지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를 위해 25일 '2020 수도권 광역도시계획 변경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여의도 면적(8.5㎢)의 16.6배에 해당하는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141㎢를 2020년까지 해제한다. 아울러 여의도의 9.3배 규모인 78.8km²를 보금자리주택단지로 전용할 계획이다.


같은 날 <동아> 10면의 정 장관 인터뷰 기사는 더 가관이다. "이런 불황에 투기 우려하는 건 난센스, 수요 있는 곳에 주택 충분히 공급할 것"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개발지상주의의 속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사실 없는 확인사살

그런데 <동아>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펼친 내용이 기실 하나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2월26일 MBC 뉴스데스크는 청와대발 기사로 "靑, 다자녀 가구에 주택 우선 공급… 자녀 셋 이상 혜택"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출산율 저하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고 출산장려를 위한 획기적인 주택정책의 하나로 "서울 주변 그린벨트에 비닐하우스만 가득한데 이런 곳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강조한다.

그보다 반년 전인 작년 9월9일 이 대통령은 SBS 방송을 통해 방영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주택을 싼값에 공급하겠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보름 동안 논란이 증폭되자 9월24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그린벨트가 아니라, 창고벨트·비닐하우스벨트를 풀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고 보면 어제자 <동아> 기사는 MB정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그린벨트 훼파→토건 일자리 창출" 시나리오를 앵무새처럼 반복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MB와 국토해양부장관, 환경부장관 등 현 정권의 지도부와 관련부처장이 도대체 그린벨트의 존재 의미가 뭔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개발 지상론자의 혜안

유신 반포 한 해전인 1971년 박정희는 영국이 시행하고 있던 그린벨트를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개명, 우리나라에 도입한다.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게 된 주원인은 6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 인구 집중이었다. 그로 인해 서울 주변 임야 등이 무분별하게 개발되었다. 가뜩이나 피폐한 서울 근교 산은 민둥산이 되어버렸고, 판자촌이 즐비해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63년 말 서울 인구가 300만명을 돌파하자 박정희는 특단의 조치를 구상하게 된다. 70년 1월, 박정희는 서울시 연두순시 자리에서 그린벨트 지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이름해 7월1일 서울 외곽지역에 최초로 그린벨트가 지정됐고 72년 8월에는 수도권 그린벨트가 배로 확대됐다.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30㎞ 이내 6개 위 성도시를 망라한 68.6㎢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인 것이다. 이후 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전국토의 5.4%에 이르는 14개 권역이 그린벨트로 편입됐다. 그 면적은 5000㎢가 넘었다.

박정희 對 DJ, 노무현, MB

당시 그린벨트는 '성역'이었다. 그린벨트 정책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개발지상주의자로 평가받는 박정희가 조림사업과 함께 양대 환경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린벨트의 획정과 유지였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아무튼 그의 확고한 의지와 신념에 기반한 철권 보호 덕에 본산에서조차 실패한 '무모한 시책'이 동쪽 끝 작은 나라에 성공적으로 유지됐던 것이다.

그런 그린벨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DJ정권과 노무현정권에 들어서 삼림과 함께 무차별 훼손되기 시작한다. 특히 그린벨트의 경우 훼손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파괴되었다. 99년부터 추진돼온 그린벨트 구역 조정 작업 결과, 수도권에는 그린벨트 안에 대단위 임대주택을 짓기로 한데 이어, 2020년까지 124㎢를 해제 방침을 정했다.

그러고 보니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정권의 그린벨트 훼손 방침이 (수치는 약간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MB 정권으로까지 전염돼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불황에 투기 우려하는 건 난센스"라는 정 장관의 확신에 찬 부인에 아랑곳없이 이제 수도권 그린벨트는 고삐 풀린 망아지 형국이다. 불황에 갈 곳 몰라 하는 돈 보따리가 조만간 그린벨트 지역 상공을 훨훨 날아다니겠지.

확실히 기억하자, 허파 없앤 이들

정말 큰일이다. 무엇보다 큰일인 건 그나마 비닐벨트라고 해도 그나마 남아 있던 그린벨트가 이제 완전히 거덜나게 생긴 것이다. 우리의 허파가 말이다.

서두에도 걱정했지만 미구에 남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사는 기현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조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른바 도시와 도시가 이어지는 연담화(連擔化:conurbation) 현상 때문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 3년 전 서울대 이성우 교수팀이 내놓은 연구결과다. 그린벨트 면적이 1% 증가하면 범죄가 약 1.1%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그린벨트→비닐벨트→개발벨트→사망벨트로 진화한다는, 거칠지만 그럴 듯한 가설까지 나오고 있는 세태다. 궁금하다. 그린벨트를 도입해 원산지 영국보다 더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상찬을 들었던 하늘나라의 박정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부에 부탁한다. '저탄소 녹생성장' 입에 담지 말라고, 제발!

지구상에 가장 해악을 많이 끼치는 인간이 지구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공헌이 뭔지 아는가? '가능하면 존재했던 자취를 최소화하고 사라지는 것임을 깨닫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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