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서열화는 그야말로 노골적이다.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날 때쯤이면 여기저기 '축 합격 `○○대 -○○○' 이라는 현수막이 붙는다. 이에 대해 얼마 전 한 시민단체가 "특정 대학교 합격 게시물은 입시경쟁과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대학입학 여부만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피나는 점수 경쟁을 하고 사교육이라는 괴물 앞에 넙죽넙죽 무릎을 꿇는 것은 바로 대학입시를 향한 것인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이라도 서열의 위쪽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우리사회에서 학벌은 그만큼 중요하다. 인생의 다음 관문인 직업이나 직장 진출에 직결이 되는 까닭이다. 심지어 결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학벌을 따져 묻는 풍토와도 맞부딪쳐야 한다.
작년에 한 미술계 인사의 학력위조 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 있다. 사건이 한 번 터지자 유명인들이 줄줄이 위조학력을 고백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위조를 해서라도 학력을 갖추어야 무시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해프닝이었다. 올해 초 지하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린 '미네르바'가 체포되었을 때도 당국이 그의 학력을 크게 부각시켜 많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면 서열의 벽은 한층 완고해진다. 직업에 귀천에 없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직업도 좋은 직업, 그렇지 않는 직업으로 구분이 되어 서열화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축 사시 합격 ○○○' 이라는 현수막이 바로 직업의 서열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직장이라 해도 대기업 공기업 중소기업 하는 식으로 또 서열화 된다. 직업과 직장에 따라 사회적으로 사람 대접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회적 계층을 구분 짓는 핵심요소인 소득에 많은 차이가 난다.
서열은 차별과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인생의 단계마다 서열화가 되어있어 학력에 따라, 출신학교에 따라, 직업과 직장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고 종내 극도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사회구성원은 누구라도 서열의 윗쪽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내면화해서 결국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불과 얼마 전에 새로 깐 보도블럭인데 벌써 뒤틀려서 울퉁불퉁해진 것을 보게 된다. 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도블럭 놓는 기술이 특별히 뒤떨어지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노동하는 만큼 충분한 대가를 못 받기 때문에 우수한 기술자가 나올 수 없으리라는 점에는 수긍이 간다. 혹은 우수한 기술자가 있더라도 꼼꼼히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사람의 인체는 머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 머리 외에 손과 발, 몸 구석구석 어느 한 부분이라도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 사회도 이치는 같을 것이다. 어떤 특정 직업만 있어서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당장 살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 일어날 것이다. 어느 직업이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지 않고 다양한 능력을 인정한다.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체제가 만들어져 있다. 학교는 학업성취도에 따라 우열로 나누지 않고 저마다 특성을 갖추어서 다양화 되어있다. 대학은 서열이 없어지고 완전히 평등화 되었다. 대신 특성화 되어서 학생들이 앞으로 나갈 진로에 따라 대학을 선택한다. 학력과 직종에 따른 소득 격차도 없어졌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생활수준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느 직종이든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대접을 받는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꿈꾸어 본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12>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13> 윗사람, 아랫사람 |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 "노는 게 공부다" ☞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 인기 높은 헌 집 ☞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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