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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 아랫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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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 아랫사람

[한국에서 살아보니] 유사 신분제 구실하는 서열 문화

결혼을 앞두고 친정어머니는 나에게 솥에서 밥을 풀 때는 반드시 가장인 남편 밥부터 퍼야 한다고 일렀다. 유교적인 질서로 보면 가장은 하늘같은 존재로 가족의 우두머리이다. 가장 다음에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겉으로나마 남녀가 평등하다고 교육을 받은 나에게 어머니는 이런 질서를 일러주신 것이다. 지금도 나는 밥을 풀 때 남편의 밥부터 푼다. 그러나 의미는 달라졌다. 가족의 우두머리라서가 아니라 존중한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과천에서 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 까는 것이 문제가 되어 초등학교를 가볼 기회가 있었다. 교장실을 방문했는데 학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일층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내부도 근사했다. 교장이 학교의 맨 웃어른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장 다음에 교감이 있고 그 다음에 교사 그리고 학생 순으로 자리가 매겨지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직장에는 직급이 있다. 평직원에서부터 대리, 과장, 국장, 혹은 실장 하는 식이다. 이들이 모이면 대개 말을 하는 사람은 높은 사람들이고 묵묵히 경청하는 사람들은 부하직원이다. 어쩌다 직장에서 부인을 동반하는 모임이 있으면 남편의 서열에 따라 부인의 서열도 정해진다.

나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 뻗쳐있는 이 서열의식이 어느 사회에나 의당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이 깨진 것은 평등을 중요시 하는 덴마크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덴마크에서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100여 년 된 학교로 최근에 새로 전체 수리를 해서 최신 설비를 갖춘 곳이었다. 방과 후 학교 교장을 만나러 갔는데 무슨 컨테이너 박스 비슷한 곳으로 안내를 했다. 별로 넓지 않은 그 속에는 사무 보는 책상과 의자, 컴퓨터, 그리고 온갖 파일과 서류들만 수북이 쌓여 있어서 작업장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 교장, 방과 후 학교 교장, 서무 담당 이렇게 세 사람이 근무하는 곳이라고 했다. 한국 학교의 교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님용 소파나 교장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어떤 물건도 없었다. 교장은 학교를 대표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직책이라는 느낌이었지 학교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나타내는 직위로 보이지 않았다.

덴마크에 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 중에 작은 기업체의 사장이 있었다. 어쩌다 집에 가보면 근무처가 먼 아내 보다 먼저 퇴근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마주치곤 했다. 남자들이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거나 수퍼마켓에서 시장 보는 것도 흔한 광경이었다. 남자가 상당기간 육아 휴가를 내서 아내 대신 전적으로 아기를 돌보고 살림까지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덴마크의 유명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이 있었다. 회사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농담을 하고, 회의를 할 때는 위아래 직급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동등하게 발언을 해서 당면한 안건을 풀어간다고 했다. 만일 누군가가, 설사 아래 직급이라 할지라도 집에 갑자기 빨리 가야할 사정이 생기면 눈치 보지 않고 일어나고 회의는 다음 날로 미루어진다고 했다. 회사에서의 직급은 맡은 일에 대한 직급이지 윗사람, 아랫사람으로 나누는 서열이 아닌 듯 했다.

학교와 가정, 직장에서의 예를 통해 단편적이나마 서열의식이 거의 없는 사회의 모습을 보았다. 서열의식이 덜한 것은 그만큼 평등사상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평등사상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레 길러진다.

서열의식이 강한 사회에서는 항상 무의식적으로라도 위아래를 가리게 된다. 가정과 학교, 직장, 단체나 모임 등 어디에서나 구성원의 위치 혹은 직급을 기능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 아랫사람으로 구분을 해서 윗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아랫사람은 그에 복종하는 존재로 인식을 한다.

신분제도가 사라진 현대에서 서열은 마치 유사 신분제처럼 작동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권위주의와 비민주적인 관행이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윗사람의 한마디에 무언가 달라졌다는 신문기사를 읽는다. 그야말로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관행이 아닐 수 없다. 작년에 일어난 촛불시위는 쇠고기 수입 협상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한 항의였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12> "단체행동, 꼭 따라해야 하나요?"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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