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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音, 뒤늦은 少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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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音, 뒤늦은 少考

[오동진의 영화갤러리]<12>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 많이 울지 않았다. 아니 거의 울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이 차이가 마흔이나 나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나 꽤 나이가 먹어서나 참으로 나를 항상 예뻐했던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늘 감기 치레가 일상사였던 나를 아침에 깨우실 때는 이불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꼭 가디건을 감싸 입혀주시곤 했다. 갑자기 이불밖으로 나오면 또 감기걸린다면서. 기억으로는 평생을 내게 큰 화를 내신 적도, 손찌검을 하신 적도 없다. 아, 한번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마당 구석에 있던 광에서 불장난을 하다 불을 냈을 때 퇴근하고 들어오셔서 엉덩이를 두대쯤인가 살짝살짝 때리신 적이 있다. 화가나셔서가 아니라 그러다가 당신 자식이 화상이라도 입었으면 어쨌을까 싶어서, 그 걱정 때문에 그러셨던 것 같다.

데모를 하다가 성북서에서 열흘인가를 있다가 군대에 강제로 입대할 때,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 아랫 니가 네개나 빠졌다고 했다. 아무런 이유없이. 평소에 튼튼했던 이가. 어머니가 그랬다. 에구 이눔의 새끼야. 니가 얼마나 걱정되면 그러셨겠니. 강원도 화천에서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때, 막 위암 수술을 받으셨던 어머니 대신 아버지는 종종 혼자 면회를 오곤 하셨다. 오이 소배기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나를 위해 혹여나 오는 길에 쉬기라도 할까봐 아이스박스에 넣어 강원도까지 낑낑 들고 오셨다. 어느 때였던가. 연락도 없이 면회를 오신 아버지는 마침 야외 훈련을 나가던 나를 부대장에게 사정을 해서 간신이 붙잡으신 적이 있었다. 중대는 이미 저 앞으로 행군을 한지 오래고 부대장은 특별히 몇시간만 아버지와 있다가 오라고 허락을 했다. 강원도 산속 오후는 해가 짧다. 곧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데 어두워져 오는 주변때문에 아버지가 걱정이 됐다. 나 없이 부대 주변 여관에서 하루밤 주무시고 가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너없이 내가 여기서 왜 자니?" 시외버스도 끊긴 시간. 아버지는 서울로 가는 봉고차 기사에게 사정얘기를 하고 간신히 자리를 얻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이 짐이 가득 실린 뒷칸 구석, 의자도 없는 곳이었다. 하 참 그러니 그러지 마시고 내일 버스로 올라가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어여 훈련장소로 가라고, 몸조심하고 있으라는 말뿐 기여이 가시겠다고 했다. 짐칸에 덩그러니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눈초리를 보면서 봉고 뒷문을 쾅하고 닫을 때가 생각난다. 짐짓 화가난 듯 소리내서 닫았지만 부대로 복귀하는 순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서울로 가는 그 장시간 동안 늙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나는 별로 울지 않았다. 입관을 하면서 가족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흐느꼈다. 특히 형이 많이 울었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형은 더 많이 슬퍼했다. 아버지를 관에 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가슴을 안았다. 그때도 참 이상했는데 할 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그랬다. 속으로는 이렇게 얘기할 참이었다. 아버지 잘 가세요. 오래 사셨어요. 이제 가실 때가 됐어요. 그동안 고생하셨잖아요. 그러니 이제 가실 때가 된 거에요. 아버지도 편안해질 때가 되신 거라구요. 그러니 잡지 않을께요. 어서 가세요. 어서 잘 가세요…그러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정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굿' 바이

일본영화 <굿' 바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수입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본다,본다하고 아직 보지 못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타기도 했고, 재개봉도 했다고 하니 이제는 볼 만도 하겠다. 하지만 당분간 이 영화는 보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이 나서. 그동안 말랐던 눈물이 펑펑 터질 것 같아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난 아버지를 정말 사랑했을까. 아버지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가셨을까. 그 한마디만이라도 듣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늘 후회는 뒤에 남는다.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71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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