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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을 위해서…'지도층'을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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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을 위해서…'지도층'을 말하지 말자"

[홍성태의 '세상 읽기'] '리스트 공화국' 상류층의 실체

이재오 전 의원이 봄바람과 함께 귀국했다. 그는 조만간 다시 정치를 재개할 것이며, 지금은 미래만을 보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가 보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혹시 '한반도 대운하'의 강행은 아닐까?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 교수 모임', 종교환경회의, 운하저지국민행동 등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를 막고자 애쓰는 모든 학자, 종교인, 시민들이 그의 행보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공개적으로 반박하고자 했던 수경 스님은 진정한 녹색의 희망을 찾아서 오체투지 순례를 하고 있다.

거대한 논란의 핵심인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조차 잠시 리스트 문제에 가려 버린 듯하다. 사람들은 최근의 한국을 가리켜 '리스트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 때문이다. 앞의 것은 한창 뜨기 시작했으나 돌연 자살한 예쁜 여자 연기자가 남긴 것이고, 뒤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의 여비서가 작성한 것이다. 두 리스트가 왜 문제인가? 앞의 것은 여자 연기자에 대한 이른바 '성 상납'의 문제를 여실히 증명해주기 때문이고, 뒤의 것은 정권과 친한 기업인이 막대한 '비자금'으로 만든 부패의 먹이사슬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연예계의 현실을 가리켜 흔히 '화려한 조명 뒤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한다. 장자연 리스트는 정말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이 정도로는 크게 모자라는 것 같다. 장자연 리스트는 많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연예계는 '생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은 술집으로 불려나가 시중을 드는 것은 물론이고 '비밀 요정' 식으로 꾸민 집에서 '성 상납'마저 강요받는 모양이다.

장자연 리스트는 연기로 인정을 받아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여자 연기자들이 어떤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유추하게 한다. 그들은 스타는커녕 아예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들은 그들을 그저 자신들의 '성 노리개'나 '돈벌이 도구'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권력자를 비롯한 이 나라의 상류층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상류층이 여자 연예인들을 성 노리개로 여기는 문제는 물론 우리만의 '미풍양속'은 아니다. '세기의 섹스 심볼'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여배우 메릴린 먼로도 권력자와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결국 비참하게 살해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오래 전에 지구 전역으로 퍼지지 않았던가?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비밀리에 작동하는 독재체제에서 이 문제는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독재시대는 이러한 추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40년이 넘는 기나긴 독재시대를 지나면서 이 문제는 이 나라의 상류층 사이에서 그야말로 습속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성 상납'이나 '성 접대'는 결코 없다. '성폭력'이나 '성매매'가 있을 뿐이다. 성공을 원해서 자발적으로 섹스에 응했다면 '성매매'일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명백히 '성폭력'일 것이다. 모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큰 죄이다. 그런데 이런 큰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한 수사가 좀처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또 다른 의혹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의혹의 핵심에 신문사 대표들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 놀라고 있는 것 같다. 여자 연예인들을 성 노리개나 돈벌이 도구로 여기는 자들의 실체가 철저히 밝혀져야 장자연 씨가 죽음으로 해결하고자 한 참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열릴 것이다.

▲ KBS 등이 입수한 장자연 리스트.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우리가 평소 '지도층'이라고 부르던 한국 사회의 '상류층'이다. ⓒ프레시안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필립 쿡 외 지음, 권영경 외 옮김, CM비지니스 펴냄)라는 책에서 잘 밝히고 있듯이, 연예 산업은 운동 산업과 함께 대표적인 '승자독식' 산업으로 손꼽힌다. 이긴 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진 자는 어떤 것도 가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흔히 극단적인 경쟁이 이루어진다.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 온몸을 던지는 연예인도 분명히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장자연 씨의 비극은 다분히 구조적인 것이다. 성 노리개를 탐하는 상류층과 여기에 야합하는 기획사가 문제의 핵심이지만 근원은 아니다. 근원은 구조 자체일 것이다. 이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연예인들의 조직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예인들이 스스로 승자독식 게임을 하지 않으려고 해야 비로소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

박연차 리스트는 장자연 리스트보다 더 위험한 문제의 산물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좀먹는 대표적인 악으로 손꼽히는 '정경유착'의 문제이다. 장자연 리스트의 문제는 흔히 박연차 리스트의 문제에 포함되기도 한다. 정경유착에서는 검은 돈과 이권이 오갈 뿐만 아니라 흔히 술 접대와 성 접대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각된 청와대 행정관의 성매매 사건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따라서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이지만,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그보다 더욱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체의 규명과 엄정한 처벌이 모두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박연차 리스트는 세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나는 재벌이 아닌 기업이 주도한 정경유착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 정경유착을 주도하는 것은 재벌이다. 한국은 분명히 '재벌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적극적으로 정경유착을 하고 있으며 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박연차 리스트는 증명해주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가장 민주적인 정권을 자부했던 노무현 정권도 정경유착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과 삼성재벌의 관계에 대해서 비판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제 중견기업과의 정경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전 방위적 정경유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기업인은 한 쪽에만 '쥐약'을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쪽에도 꼭 '보험'을 들어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경유착을 특정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와 경제의 총체적 문제로 파악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고 대단히 상이한 사건이다. 그러나 두 사건은 한국 사회의 어떤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적으로 대단히 관련이 깊은 사건이다. 무엇보다 먼저 두 사건은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정치와 경제는 검은 돈과 이권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연예 산업에서는 아예 사람을 노리개로 삼아서 부패가 행해지는 실정이다. 이로써 경제력은 세계 10위이지만 부패는 세계 40위권인 '돈 많은 못 사는 나라' 한국의 실태가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기서 우리가 더욱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부패 문제를 이른바 '상류층'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리스트의 주역들은 모두 상류층이다. 상류층의 유착과 부패가 결국 문제의 원천인 것이다. 썩은 상류층이 나라를 좀먹고 망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를 똑바로 인식하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하다.

두 리스트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상류층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투기와 부패로 돈을 번 상류층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경유착 또는 정·경·언 유착을 추구하고, 이렇게 해서 확보한 돈과 힘을 이용해서 여자 연예인들을 불러서 과거의 독재자들처럼 주지육림 속에서 질펀하게 놀며 지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두 리스트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실상이 아닌가? 이 참담한 실상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자연 씨를 위해서라도 제발, 절대, 상류층을 '지도층'이라고 부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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