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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랑하고 싶다면, 이것만은 꼭…"

[철학자의 서재]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

▲ <사랑의 철학>(이정은 지음, 살림 펴냄). ⓒ프레시안
김수영의 시를 다시 쓰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 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는 못하고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면, 이토록 섬세하면서도 1965년 늦가을로 우리를 데려갈 것만 같은 그 시대의 언어로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가에 대해 토로하는 김수영의 시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분노하고 정작 권력에 대해서는 반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65년의 김수영은 말이다. 그러나 먹을 것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이 더 이상 소소한 작은 일이기를 그만두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한 분노가 "왕궁"을 향해 나갔던 2008년 상반기, 이 시는 다시 쓰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치에 반대하는 나와 우리는 더 이상 옹졸하거나 작지 않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러나 과연 옹졸하지 않은 것일까.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수입 쇠고기 파동에 그토록 광화문을 가득 메우고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내던 시민들이 정작 2009년 초 경찰의 강경 진압에 의한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도무지 움직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의 말은 마치 나에 대한 질책같이도 들려 나는 소극적인 항변을 해보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나 광화문과 전국을 밤마다 비추었던 촛불의 불빛은 비단 내 아이와 내 가족의 건강만을 위한 우려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는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적인 정치 행위이며, 사람들이 현재 무관심한 듯 보이는 것은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의 몸짓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진압이 한 몫을 했다고 나는 변명을 해 보았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 진압에 의한 철거민들의 가슴 아픈 죽음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변명은 점점 누추해지고 있었다. 생각을 조금만 더 진전시켜보면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더욱 둔감하다.

핑계거리는 소진되고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나는 왜 나와 나의 가족을 넘어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둔감한가. 나는 오늘 기존의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힘을, 그리고 그로 인해서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 더 예민해질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사랑에서 찾고자 한다.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살림 펴냄)이 타인의 고통에 보다 예민해질 수 있도록 하는 사랑에 이르는 길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사랑, 그 다양함에 대하여

이정은은 꽤 단도직입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이런 대답에 사람들은 일순간 당황하는 듯하다가도 곧이어 불만을 터트린다. "애인 좀 없다고 짐승 취급하기냐?"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야!"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은 사랑이 드러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만을 떠올리는 나와 우리의 통념에 대해 문제를 던지며 사랑에 대한 도발적인 성찰을 시작한다.

<사랑의 철학>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의 방식을 넘어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사랑의 면모에 주목한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사랑의 대상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우리는 어떤 남자,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장미를 그리고 개나 고양이를 사랑한다. 또한 사랑의 대상이 다양한 것을 넘어서 사랑의 방식 역시도 다양하다. 남녀 간의 사랑만이 마치 사랑의 대명사인 듯하지만 남남 혹은 여여 커플과 같은 동성애도 이미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으며, 우리는 지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은 이토록 사랑이 천편일률적인 남녀 간의 사랑으로 국한되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사랑의 대상과 방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대 플라톤의 철학으로부터 보여준다. 나아가 그녀는 상투적인 사랑에 관한 철학을 전개하는 대신에 역사적이면서 현실의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보이는 왜곡되고 폭력적인 사랑의 방식 역시도 그려 보인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방식의 한 전형을 현대 헤겔 철학을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그간 그 두께만으로도 거리감이 드는 철학사 관련 책이라든가 강의실 철학 수업에서 배제되어 왔던 사랑이라는 주제를 서구 신화를 통해 이야기하듯 풀어내 주며, 때로는 서로 귓속말로나 소곤거렸을 법한 가정 내 폭력이나 성폭력과 같은 주제를 꺼내 놓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이정은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통념을 넘어서기 위해 플라톤의 에로스 신화를 경유한다. 에로스는 풍요의 남신과 빈곤의 여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아버지로 인하여 풍요로움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어머니로 인하여 동시에 끊임없는 결핍감에 시달리는 운명을 지닌 신의 이름이다.

"육체적 결핍의 차원에서 나타날 때는 일단은 '성적 결합 욕구'가 되며, 이러한 성적 사랑의 감정이 '자신의 아이를 육체적으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욕구'로 승화된다. 이에 반해 '지적 결핍'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욕구는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새로운 지식 체계를 산출하고자 하는 욕구로 승화된다."

플라톤의 신화에 따르면 이러한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인간은 이성일 수도 있으며, 동성일 수도 있으며, 지적 교감을 나누는 우정의 형태로도 드러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하게 드러나는 사랑의 양태들의 뿌리를 이정은은 철학적 이야기를 통해 그 다양한 사랑들이 전혀 어떤 변종이나 뒤바뀐 사랑이 아니라 충분한 고유의 정당성을 갖는 아름다운 사랑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반면에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은 사랑하는 사이에 서로의 동등성을 망각하는 사랑이 어떻게 폭력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관찰한다. 자신의 의사를 강압적으로 강요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혹은 그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언어적이고 육체적 폭력을 가하는 모습. 반대로 희생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존재이기를 포기하는 아내의 사랑, 나아가 상호 동등성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성희롱이나 성폭력 행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사랑을 가장한 채 생겨나는 이러한 폭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한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그녀의 세계로부터 빼 내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종국에는 여성으로 하여금 그 남자의 어두운 세계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버리는 영화 <나쁜 남자>의 여대생에 대한 어느 깡패의 사랑은 한 편으로는 혐오스럽지만 동시에 낭만적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때로는 부인에게 혹은 자식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사랑의 다른 면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정은은 사랑을 내세운 이러한 폭력을 상대방을 마음대로 휘둘러야 한다는 '지배욕'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지배욕은 또한 자신이 아닌 타자가 갖는 자신과의 좁혀질 수 없고 좁혀져서도 안 되는 고유한 차이를 자신과 동일화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사랑에 대하여

지배욕과 자기 동일시에 기인하는 왜곡되고 일방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사랑을 가장한 폭력은 타인을 나와 동일한 고유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할 때 사랑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사랑은 타인을 자신과 다른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함과 동시에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이정은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타인에게서 나와 같은 인간의 보편성을 직시하고 타인을 바라보던 시야를 통해서 다시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랑을 통해 인간이 보다 생명력 있고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감정과 이성 모두와 연관되어 있는 활동이며,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고 인간의 고귀성을 드러내는 통일작용이다. 인간이 사랑의 힘으로 모든 고통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 담고 있는 생명성과 고귀성 때문이다."

나의 사랑의 목록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은 여러 가지 색채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여러 독법 중에서도 이정은이 기존의 사랑에 대한 통념과 다른 새로운 사랑의 전형을 제시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서로의 차이와 동시에 동등성을 인정하는 태도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정은의 <사랑의 철학>은 최소한 우리 시대의 사랑에 대한 도발적인 물음 혹은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사랑을 남녀 간의 혹은 가족 간의 사랑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커다란 그 무엇인가를 조그마한 상자에 꾸깃꾸깃 접어 넣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나누었던 대화로 인해 조금이나마 생겨난 생각의 힘을 통해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쪽에 나의 사랑의 전형의 목록을 다음과 같이 작성해 보았다.

다른 동물 종들과 다른 인간만의 사랑의 고귀성은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 상대방과 관계할 수 있을 때 그리고 타인을 나와 동일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에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 내가 사랑하는 이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와 나의 가족의 고통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랑의 촉수를 나와 다른, 무엇보다 나와의 어떠한 이해관계에도 얽혀 있지 않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다른 생물 종들과 다른 인간만의 사랑의 고귀성은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자신의 판단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 기반을 둔 타인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고 처분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귀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고통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타인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한 편으로는 과중한 명령이면서도 동시에 공허하고 한 편으로는 또 다른 폭력마저도 허용할 수 있는 명령인 듯하다. 반면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해지라는 요구는 사랑에 대한 가장 최소한의 요구이면서 동시에 실천하기에는 어렵고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로 나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뎌질 수도 있는 우리에게 비록 실천하기 어려울지언정 이러한 최소한의 사랑의 방식은 가능하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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