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제성장률 제고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강조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가 커진다. 최악의 재정건전성 희생을 감수할 만큼 실질 효과가 있느냐는 것과 경제위기를 빌미로 정부의 중점사업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게 핵심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이와 같은 지적이 나올 정도다. 나아가 정부가 추경 편성과 함께 추가 규제완화 의지도 내비쳐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재정적자 엄청나네…적자수지 외환위기 이상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을 살펴보면 위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보다 경제덩치가 세 배가량 커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추경이 결국 국민의 미래 빚을 미리 당겨 쓰는 개념임을 감안할 때 그만큼 국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추경 규모 확정에 따라 올해 총지출(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은 종전보다 17조7000억 원 늘어난 302조3000억 원이 됐다. 종전보다 예산이 7조5000억 원 늘어났고 사회보장지출 등이 늘면서 기금이 10조2000억 원 증가했다. 반면 세입은 11조2000억 원 감소한 279조8000억 원으로 확정됐다. 당초 6조5000억 원 흑자이던 정부살림이 22조5000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늘어나는 정부 빚은 기금과 국채 발행으로 메운다. 총 28조9000억 원의 재원 중 고용보험기금(2조1000억 원), 공공자금 관리기금(1조 원) 등 기금여유자금에서 총 3조3000억 원이 충당된다. 또 세계잉여금에서 2조1000억 원, 기금차입금에서 1조5000억 원이 조달된다.
나머지 22조 원은 국고채 발행으로 마련된다. 일반회기에서 17조2000억 원 분을 발행하고 지방채 일수를 위해 4조3000억 원, 근로복지 진흥기금에서 5000억 원 등이 조달된다.
추경이 이처럼 확정됨에 따라 재정수지 악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4%에 달하는 51조6000억 원을 기록하게 됐다. 당초 대비 26조8000억 원 악화된 것이며 역대 최대치다. 98년 당시 적자수지 규모는 5.1%, 99년은 3.9% 수준이었다. 관리대상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융자)에서 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빼고 공적자금 상환원금을 더한 수치다. 공적자금이 사실상 국가의 채무임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국가재정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국가채무는 당초보다 세출 증액분(17.7조)만큼 늘어나 총 366조9000억 원이 됐다. 이에 따라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8.5%로 확정됐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5.4%에 비해 매우 적은 수치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재정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잠재적 채무를 감안할 경우 실질 국가채무비율은 훨씬 높아지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정부는 올해 주요 선진국의 재정수지 전망을 예로 G-20평균이 -6.2%인 반면 한국은 -2.4%에 불과하다고 강조하지만 관리대상수지로 비교할 경우 한국의 재정수지는 프랑스(-5.5%)와 비슷한 수준이다. 엄청난 규모의 부담을 감수하고 정부가 내놓은, 말 그대로 '슈퍼 추경'이다.
▲추경예산 편성에 따른 주요 재정지표 변화(자료 : 기획재정부 제공). ⓒ프레시안 |
돈 쏟아붓는만큼 일자리 괜찮아지나
정부가 이처럼 큰 규모의 재정부담을 감수하는 이유로는 당장 성장률 지키기가 꼽힌다. 추경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 규제완화 방안 발표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일단 정부 발표는 '추경 편성으로 1.5%포인트 성장률 제고, 일자리 55만 개 창출'로 요약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번 추경과 함께 규제완화와 민간투자 확대가 같이 추진될 경우에는 2%포인트 수준의 성장률 제고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이 취임 당시 내놓은 '-2% 성장, 일자리 20만 개 감소'와 단순 끼워맞추기를 하면 정부가 이번 '추경+규제완화' 대책으로 '성장률 0%, 일자리 33만 개 증가'를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윤 장관은 규제완화와 관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규제완화추진위원회 등 각 부처별로 그러한 부분(추가 규제완화)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정부와 여권에서 흘러나온 기류를 볼 때 규제완화의 핵심은 강남권 투기지역 해제일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핵심은 일자리다. 이번 추경예산안 자료명 자체가 '민생안정을 위한 일자리 추경예산'이다. 문제는 정부가 공언한 55만 개 일자리의 질이 얼마나 높은가다. 정부 대책만으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일단 정부는 고용유지와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총 3조5000억 원의 예산을 추가 배정했다. 전체 추경예산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예상보다 미미해 안 이름을 '일자리 추경예산'이라고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지적이 제기될 지경이다.
일자리 55만 개를 만들고 기존 일자리 22만 개를 유지하며 교육과 훈련을 확대해 33만 개의 일자리를 확충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55만 개 일자리의 핵심은 이른바 '희망근로 프로젝트'로 불리는 공공근로다. 저소득층 40만 명이 공익형 근로기회를 제공받는다고 정부는 밝혔으나 이는 사실상 임시직에 불과하며 정부 발표에 따라도 구체안이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숲가꾸기(2만8000명), 아이돌보미(6000명) 등 사회서비스 부문 일자리는 물론 학습보조 인턴교사(2만5000명), 대졸 미취업자 인턴 채용(7000명) 등 대졸실업자 대책과 노인 일자리(19만5000명)도 장기적으로 안정된 소득원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사실상 올해 말까지만 일할 '알바'가 더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대표적 정책통인 이한구 예결위원장마저 "추경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단기적 일자리에 머물 것"이라고 우려할 지경이다.
정부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마당에 정부 노력만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윤 장관은 "질 좋은 일자리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양도 중시해야 할 어려운 시기"라며 "우리가 해야 할 조치는 말 그대로 한정적(Temporary)이고 일시적(Targeted)이고 적시성 있게(Timely)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저소득층을 지원에도 4조2000억 원을 투입키로 했다. 저소득 빈곤층 가구 120만 가구를 추가 지원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구 7만 가구도 추가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꼽은 '3T' 원칙, 곧 '일시적 지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시민단체 등에서 강하게 주장한 '복지예산 증액'과는 거리가 멀다.
위기 틈타 'MB노믹스'도 증액…4대강 사업 논란 격화될 듯
정부가 최종안을 발표했지만 국회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부문은 또 있다. 한반도 대운하로 상징되던 이른바 'MB노믹스' 철학이 모습을 바꾼 '녹색뉴딜'을 밀어붙이기 위한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23일 오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주당을 방문했다. 추경예산안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윤 장관은 이날 오후에는 민주당이 주최한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뉴시스 |
정부는 고용의 질 문제를 풀어갈 해법으로 녹색뉴딜을 내세웠다. 고용의 질을 유지하고 미래 성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추경예산안에 따르면 일단 이번 투자로 이공계 전문기술 연수인력 1300명과 박사 후 수련과정자가 지원 대상이 된다. 신성장동력 투자가 이유다.
교육선진화에는 총 1조1625억 원을 투입한다. 학습보조교사 2만5000명을 채용하고 국립대 시설확충, 초중등학교 화장실 개선, 1만여 곳 초중고교의 인터넷망 고도화에도 예산이 투입된다.
특히 MB노믹스의 핵심인 4대강 살리기 예산은 종전보다 1조 원이 증액된 3조986억 원이 잡혔다. 4대강 유역 하천환경정비 지원에 1조2645억 원이 들어가고 수리시설 개보수에 9440억 원, 지방하천 정비에 8900억 원이 들어간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사업을 경제위기를 빌미로 밀어붙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차관은 "민생안정이나 일자리와 특별히 관련이 없는 사업에 왜 1조 원을 증액하느냐"는 질문에 "저희들은 4대강이 대규모 토목공사라기 보다는 재해예방, 그 다음에 좋은 수질과 수량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MB노믹스의 표면적 이유인 '친환경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뿐, 일자리와 별 관계가 없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지방재정 악화·채권시장 혼란 우려
감세 추진과 그에 따른 지방재정 악화도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경안에서 정부는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3조 원을 투입키로 했다. 류성걸 예산실장은 "전체 내국세가 11조 원 이상 감소하기 때문에 지방재정교부금이 2조1000억 원가량 더 줄어든다. 전체적으로 감액분을 다 합하면 약 4조5000억 원 정도다. 이를 줄이는 대신 지방채를 인수함에 따른 차익을 합산하면 지방에 3조 원 정도가 배정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방재정 악화 주범이 정부가 추진한 감세정책이라는 데 있다. 종부세 완화 등 감세정책에 따라 지방재정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종부세 과세 대상이 밀집한 수도권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줄어들면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지원하던 지방교부세는 당초보다 5조 원 정도 급감했다. 하지만 정부는 감세정책을 바꿀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윤 장관은 "감세 문제의 경우 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 이른 시간 내에 감세방향을 되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혼선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부가 대규모로 발행할 국채를 전액 시장에서 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차관은 "그 동안 추경 관련 국채발행 계획이 시중에 꾸준히 발표됐지만 국채금리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국고채는 전액 시장에서 소화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며 "현재 시장의 유동성을 볼 때 충분히 시중에서 소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후속조치를 이날 중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추경안 발표가 임박한 전날(23일) 채권시장은 크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발행할 대규모 국채 수급부담이 커진데다 구체적으로 장기물 위주가 될지 단기물 위주가 될지를 두고도 시장의 예상이 엇갈리며 채권금리가 일제히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날 채권 장외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은 전일대비 5bp(1.43%) 오른 3.55%를 기록했고 5년물도 9bp가 올랐다. 불확실성이 큰 10년, 20년 물 등 장기물은 각각 17bp, 21bp 오르는 등 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채권시장전문가 일부는 "현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추경안이 나오면 월 2~3조 원 정도의 부담이 추가된다. 현재 시장 여력으로는 상당히 부담스럽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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