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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물의 날'? 소월이 하늘에서 통곡한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강 죽이기'를 즉각 중단하라

또 다시 '세계 물의 날'을 맞았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머나먼 옛날 우주에서 지구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마침 지구는 그 물을 잡아두기에 충분히 컸기에, 결국 지구는 생명의 별이 될 수 있었다. 지구는 생물이라는 특이한 물질이 존재하는 우주 유일의 별이다. 비생물에서 생물이 태어나며, 생물은 다시 비생물로 돌아간다. 이 신비로운 '영원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물질이 바로 물이다. 물은 지구를 생물과 비생물이 어우러져서 공진화를 거듭하는 생태계로 만들었다.

물은 귀한 자원이다. 지구의 물의 양은 고정되어 있다. 그 중의 97%가 짠물이며, 불과 3%만이 민물이다. 그리고 민물의 상당량은 쉽게 이용할 수 없는 빙하와 빙산으로 되어 있다. 민물의 양은 아주 적지만 지구를 풍요로운 생태계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인간은 무려 45억 년에 걸쳐 형성된 생태계를 불과 200년만에 대대적으로 파괴했고, 그 결과 오늘날 인간의 생존 자체가 경각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민물의 양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그 생생한 지표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물을 더 이상 물처럼 써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처음 제기되었던 것이 벌써 40년 전이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사태는 계속 악화되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민물의 양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인구의 증가, 공업의 확장, 개발의 확대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물의 이용에 관한 물리적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인구의 증가에 따라 1인당 물 사용 가능량이 감소하며, 공업의 확장에 따라 오염이 심화되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감소하며, 개발의 확대에 따라 물을 머금는 산과 들이 파괴되면서 물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감소한다.

물의 위기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인에 모두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무턱대고 인구를 늘리는 것이 선이 아니라는 사실은 중국의 예에서 너무나 명확히 드러났지만 물의 위기에 대응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생태적 조건에 근거한 최적인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공업의 확장과 개발의 확대에 대응하는 것이다. 미나마타병과 같은 악명높은 공해병이 잘 보여주었듯이 공업은 물을 극단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개발의 확대에 따른 산과 들의 파괴는 물을 머금고 생명을 키우는 땅 자체의 파괴로 귀결된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의 기형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문제를 들어 지적해왔다. 오늘날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세계 130위권의 환경 질이 빚어내는 모순을 들고 싶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이래로 한국 경제는 놀라운 크기로 성장을 거듭했다. 불굴의 민주화 운동은 한국 경제가 부패로 파멸하는 것을 막기는 했으나 자연의 파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민주 세력도 독재 세력만큼이나 심각한 파괴 세력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세계 130위권의 환경 질이라는 황당한 상황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금수강산은 이미 오래 전에 파괴강산이 되었고 공해강산이 되었다. 이제 생태화를 추구하지 않는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민주화의 민주화'를 추구해야 하며 그 핵심에 생태화가 놓여 있다. 생태화의 핵심은 '강산의 세계관'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강은 산에서 비롯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산은 바다의 연인'이며, 강은 둘을 맺어주는 메신저이다. 강을 살리는 것은 강 물과 강 바닥과 강 주변을 살리는 것이면서, 강을 통해 맺어지는 산과 바다를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생태화는 크게 망가진 자연을 되살려서 수많은 생명체가 본래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위기'를 빌미로 진행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사실상 '강 죽이기' 사업이다. ⓒ프레시안(조형 : 손문상)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경제위기를 알리바이로 삼아서 강행하고 있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는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강 살리기'가 아니라 '강 죽이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문제는 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강은 그저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바다로 흐르는 강 물과 강 바닥과 강 주변이 함께 조합되어 이루어지는 생태계이다. 따라서 강을 살리는 것은 강 물과 강 바닥과 강 주변을 살리는 것이어야 하며, 강이 연결하는 산과 들과 바다를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4대강 살리기'는 결코 '강 살리기'가 아니다.

강의 최대 적은 직강화, 시멘트화, 댐과 하구언이다. 운하는 사실상 강의 완전한 죽음이므로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직강화는 지질구조를 따라서 구불거리며 흐르는 강을 굴착과 매립을 통해 직선화하는 것을 말하며, 시멘트화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하는 강변을 시멘트 제방으로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댐과 하구언은 강의 흐름을 막아서 수질오염의 문제를 일으키고, '연인' 사이인 강과 바다를 생이별시키고, 회류성 어류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4대강 살리기'는 이미 심각하게 망가진 우리의 강들에 대 해 직강화, 시멘트화, 댐의 전면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오후에 국회의 헌정기념관에서 '생명의 강 연구단' 주최로 '4대강 살리기'의 물리적, 생태적, 경제적, 법률적 문제들을 낱낱이 밝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어서 3월 20일 오후에는 광주에서 광주전남지역 운하반대교수모임 주최로 같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려서 역시 '4대강 살리기'의 허구성이 낱낱이 지적되었다. 그리고 3월 21일에는 지난 2월 하순에 행해진 낙동강 현장 조사에 이어 영산강 현장 조사가 행해졌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산강은 낙동강과 마찬가지로 결코 죽지 않았다. 수질의 문제는 지천들에 있으며, 그 핵심은 하수의 무차별적 유입이다.

'진정한 강 살리기'는 박정희의 개발독재 이래로 마구잡이로 이루어진 직강화, 시멘트화, 댐과 하구언의 문제를 직시하고 하루빨리 개선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의 하구언,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는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개방되어야 하며, 도암댐은 속히 철거하고 한탄강댐 건설은 어서 중단되어야 한다. 불과 18킬로미터(㎞)를 2시간 동안 운행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경인운하 건설 사업과 5000톤(t)급 외항선을 운항하도록 하겠다는 참으로 황당한 한강운하 건설 계획도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진정한 강 살리기'는 강의 제 모습을 되찾는 것뿐이다. '선진국'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무려 14조 원의 혈세를 퍼부어서 '강 죽이기'를 기필코 강행하겠다는 것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 '경인운하'는 '한반도 대운하'의 시범 사업이며, '4대강 살리기'는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 사업일 뿐이다. 이 나라의 토건족은 자신의 치부를 위해 이미 이 나라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는, 이제 교묘하게 말을 바꾸는 방식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강행해서 결국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것 같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한시바삐 토건족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4대강 살리기'의 이름으로 강행되는 '한반도 대운하'의 폐지는 그 기초이다.

생생히 살아 있는 우리의 강들이 '4대강 살리기'의 허구성을 생생히 증명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왜 생생히 살아 있는 강들을 죽었다고 우기는가? 그리고 실제로 강을 죽이고 있는 직강화, 시멘트화, 댐과 하구언을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대하는 계획을 강행하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토건족에게 막대한 혈세를 퍼주기 위해 참담한 '강 죽이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차라리 토건족에게 혈세를 그냥 주는 한이 있더라도 '강 죽이기'를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강은 이 나라 생태계의 근간이자 우리의 생명원이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1922년 1월 <개벽>에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모래와 갈잎이 살아 있는 강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강행하는 '4대강 살리기'는 모래를 한낱 골재로 여기고 갈잎을 그저 잡초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이용해서 '4대강 살리기'를 홍보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행태는 독극물이 유입된 미국 강의 사진을 도용해서 거짓말 홍보물을 만들었던 국토해양부의 행태보다 더 잘못된 것이다. 이대로 우리의 강들은 죽고 마는가? 정말 희망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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