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주 최고의 화제작은 <그랜 토리노>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닐까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랜 토리노>는 아카데미상에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막강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번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고단한 인생역전 끝에 막대한 부를 쥐고 사랑도 쟁취하는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로 막대한 재미를 주지만, 인도영화를 영국감독이 연출하고 지극히 계급적인 이야기에서 계급성을 의도적으로 탈색시켰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도쿄 소나타>와 <엘레지>는 비록 적은 수의 극장에서 개봉하기는 하지만 역시 놓치기 아까운 영화들이다. <도쿄 소나타>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라는 점 하나만으로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호러영화에 열광했던 관객들이라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지만,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던 관객들에겐 구로사와 기요시의 세계에 입문하는 '첫 영화'으로서 나쁘지 않다. <엘레지>는 나이든 노교수와 젊은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찬찬히 통찰하는, 지적이면서도 시적인 영화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빛나는 아름다움만으로도 극장에 발걸음을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실종 |
감독 김성홍
주연 문성근, 추자현, 전세홍
배우지망생인 현아(전세홍)는 감독과 함께 양평 근처 백숙집을 찾았다가 백숙집 주인 판곤(문성근)에게 납치, 감금을 당한다. 순박하고 소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판곤은 살인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연쇄살인범이다. 한편 동생이 몇일째 소식이 없자 언니인 현정(추자현)은 마지막으로 현아가 전화를 건 곳을 추적해 양평에 내려온다.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지만 증거를 가져오라며 푸대접을 당하자 직접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보령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로, <손톱>, <올가미>를 만들었던 김성홍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도덕적 선악의 판단력이 없고 다른 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연쇄살인범들 특유의 성격이 문성근이 열연한 '판곤' 캐릭터를 통해 생생하게,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묘사된다.
▲ 할매꽃 |
감독 문정현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외할머니의 사연을 엄마와 이모를 통해 들으면서, 한국사의 비극이 자신의 뿌리에 깊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감독. 감독의 외할아버지는 평생 외할머니를 원망하며 술을 마셨고, 작은 외할아버지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감독은 그는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 서로 대립했던 어머니의 고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당시 자신의 외가에 있었던 일들을 추적해 들어간다. 좌익 활동을 하던 오빠는 믿었던 사람에게 총살당하고, 동생은 일본으로 영영 떠나보내며 평생 마음의 한을 담고 살았던 외할머니의 사연을 기록한 감독의 사적 다큐멘터리.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한 가족에게 어떤 상처와 짐을 주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나직히 풀어내는 영화로,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최고 다큐멘터리에 주어지는 운파상을 수상했다.
▲ 그랜 토리노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리스토퍼 칼리, 비 방
고집세고 까칠한 성격의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던 아내가 죽은 후 자식들과도 연을 끊다시피 한 채 무료하게 지낸다. 옆집에 살던 타오가 갱단의 협박 때문에 월트가 애지중지 아끼던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는 걸 월트가 쫓아낸 뒤, 옆집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월트의 누나인 수는 월트를 자신의 집 파티에 초대하고, 폐쇄적이고 동양인들을 못마땅해하던 월트는 수와 타오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과 주연을 겸한 신작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깐깐한 노인과 외로운 소년의 우정'이라는 고전적인 플롯 위에 전개되지만, 여기에 '총'과 '이민자' 문제가 얽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특유의 담백한 연출이 더해지면서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준다. 미국에서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이스트우드 영화 중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뒀고, 올해 칸영화제가 미리 시상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슬럼독 밀리어네어 |
감독 대니 보일
주연 데브 파텔, 프리다 핀토, 아닐 카푸르
빈민가 출신의 18살 고아 소년 자말(데브 파텔)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백만장자 퀴즈쇼'에서 최종 라운드에 오른다. 변변히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자말이 승승장구하자 부정행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경찰은 자말을 체포하고, 자말은 자신이 왜 문제들의 답을 맞출 수 있었는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진짜 이유가 밝혀진다. 국내에도 출간된 소설 [Q & A]를 원작으로, <선샤인>, <비치>, <트레인스포팅>을 만든 대니 보일이 영화로 옮겼다. 인도를 배경으로 실제 인도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임에도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 푸시 |
감독 폴 맥기건
주연 크리스 에반스, 다코타 패닝, 카밀라 벨
남들과는 다른 다양한 초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 비밀조직인 디비전은 이들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 염동력이 있는 무버 닉(크리스 에반스)과 미래를 볼 수 있는 왓쳐 캐시(다코타 패닝)는 디비전을 피해 홍콩으로 숨어든다. 두 사람은 디비전의 음모를 막기 위해 비밀실험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기억조작의 능력이 있는 푸셔 키라를 찾지만, 디비전을 위해 일하는 또 다른 푸셔 카버의 추격을 받고 발각되고 만다. <갱스터 넘버 원>, <럭키 넘버 슬레븐>을 연출한 폴 맥기건이 메가폰을 잡아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능력자들 사이의 전쟁을 그린 SF 액션. <판타스틱 4>와 <선샤인>에 출연했던 크리스 에반스와 15살의 소녀로 부쩍 자란 다코타 패닝이 주연을 맡았다.
▲ 도쿄 소나타 |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주연 가가와 데루유키, 코이즈미 쿄코, 이노와키 카이
초등학교 5학년인 켄지는 아빠의 반대 때문에 몰래 피아노학원을 다닌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켄지는 음악중학교로 진학을 권유받지만 가족들의 도움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아버지는 갑작스레 실직을 당하고 형은 갑자기 미군 입대를 결심하며 매일 식구들 뒷바라지를 하지만 소외되는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켄지 가족의 비극이 펼쳐진다. 국내에서도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탁월한 호러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2008년작. 각자의 고통 때문에 서로에게 힘이 돼주지 못한 채 파편화된 현대의 일본 가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 엘레지 |
감독 이사벨 코이셋
주연 페넬로페 크루즈, 벤 킹슬리
문학교수이자 비평가인 데이빗(벤 킹슬리)은 방송에서 '결혼했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유로운 독신의 삶을 살고 있다. 20년간 섹스파트너로 지내온 캐롤린과의 관계는 별개로, 틈틈이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과 하룻밤을 지낸다. 자신의 수업을 듣는 아름다운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며 질투하고 그녀가 늙은 자신을 떠나버릴 것이라 생각하며 여전히 거리를 둔다. 데이빗에게 지친 콘수엘라는 결국 데이빗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2년 뒤 콘수엘라가 데이빗을 갑자기 찾아온다. 나이듦과 죽음, 사랑과 욕망,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공포와 같은 주제를 유려하고 시적으로 그려낸다. 2006년 국내에 개봉된 <나없는 내 인생>을 만든 이사벨 코이셋 감독의 2008년작. 패트리샤 클락슨가 캐롤린으로, 데니스 호퍼가 데이빗의 친구 조지로, 그리고 피터 사스가드가 데이빗의 아들로 출연한다.
▲ 단지 유령일 뿐 |
감독 마틴 집킨스
주연 오거스트 딜, 프리치 하벌란트, 마리아 시몬
낯선 여행지에서 낯섬과 설렘, 흥분과 불안, 고독을 느끼는 다섯 개의 여행담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은 영화. 휴가철 의례히 여행을 떠난 엘렌과 펠릭스 부부와 막 사랑을 시작한 친구 루스를 말리기 위해 베를린에 간 카로, 남편 매그너스의 친구인 이레네와 요나스 커플의 방문을 받은 아이슬란드의 요니나, 친구 노라를 따라 자메이카에 갔다가 원주민 캣과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크리스틴, 서른 살 생일에 여행중인 부모를 찾아 베니스에 간 마리온 등 총 13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디트 헤르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그랜드캐년과 아이슬란드, 베니스, 베를린, 자메이카의 풍경이 번갈아가며 펼쳐진다.
▲ 굿'바이 |
감독 다키타 요지로
주연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 야마자키 츠토무
오케스트라에 첼리스트로 입단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갑작스럽게 악단이 해체되고 생계가 막막해진다.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에 돌아온 그는 우연찮게 고수익을 보장하는 납관회사에 들어가 베테랑 납관사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를 돕게 된다. 처음엔 일을 꺼렸던 그도 이쿠에이를 보며 감동을 받고 일에 차차 적응해가지만,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친구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망자에게 마지막 예우를 다함으로써 인생의 마무리를 돕는 납관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 무겁지 않게 성찰한다. 작년 10월에 개봉했었던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아트하우스 극장 중심으로 재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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