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뉴스 얘기다. 한일전 승리는 뉴스가 싹쓸이 편성할 게재가 아니다. 서너 꼭지면 충분했다. 스포츠 뉴스는 따로 있잖은가. 하지만, 엊그제 마침내 일본에 또 이기던 날,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는 WBC 한일전 승리에 마취됐다. 뉴스 내내 질리도록 '대한민국'만 외쳤다. 사나운 광경이었다. 2라운드 통과, 4강 진출에 이럴진대 생각대로 우승이라도 하는 날엔, 벌써부터 아찔할 뿐이다.
한일전이 있었던 지난 18일 SBS는 33개 보도 꼭지 중 19개 꼭지를, KBS는 30개 중 13개를, MBC는 31개 중 12개를 WBC 관련 뉴스로 채웠다. 4 :1 승리, 그 단순한 사실을 각개로 쪼개다 보니 같은 자료화면은 지겹게 반복됐다. 화면 순서까지 외워버릴 정도였다. 절제된 언어로 메워져야 할 리포트는 상투적 감정의 격앙으로 흔들렸다.
맞다. 실패. 그것도 아주 익숙한 실패다. 방송은 2006년 6월에 이어 또다시 실패했다. 지난 2006년 월드컵 때, 방송은 '전대미문의 싹쓸이 편성'으로 월드컵을 물들였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객관적 편성 분석이 그러했다. 한국팀 경기가 있었던 2006년 6월 13일 편성은 반복의 공포였다. 극단적이었다. 한국팀 경기가 있던 날, KBS 1TV는 24시간 가운데 14시간, KBS 2TV는 12시간, MBC는 20시간, SBS는 무려 22시간을 월드컵 관련 방송으로 도배했었다.
그것은 사회의 공기로써 맹목적 국가주의와 상업적 애국주의를 경계해야 할 방송이 오히려 국가와 애국을 팔아먹던 장면이었다. 결정적으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커녕 스스로 '자본놀이'에 뛰어들었던 행위였다. 감히 말하건대, 공영방송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었다. 그로부터 채 2년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방송이 다시 한 번 사회를 조직적으로 WBC로 물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 1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PETCO park)에서 열린 WBC 본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팀의 추신수(왼쪽)가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
스포츠사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지역 예선 때 일이다. 상대는 일본이었고, 정해진 경기방식은 홈 앤 어웨이였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말씀하셨다. '일본놈들'이 이 땅에 발을 딛는 것은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안 된다고. 하는 수 없이 한국 팀은 일본에서 두 경기를 내리 했다. 출국 전 이 대통령은 이번 경기에 선수단의 생사여탈이 달려 있음을 밝혔단다.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 50년도 더 된 고릿적 이야기다. 그런데 그 비장함, 엊그제 뉴스에서 느껴졌다. 찌릿했다. 아마도 시간은 없는데, 레파토리는 부족하다보니 익숙한 레토릭을 완화해서 사용한 까닭이리라. 그렇다면, 묻자. 오늘의 이승만은 과연 누구인가?
그야말로 처음일 때만 딱 한번. 미증유(未曾有)의 호들갑은 정당하다. 지금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강호순이다. 그런 사건이 전례가 없었나? 아니다. 그런데 미디어들이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둥 야단법석을 떨었다. 경찰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친철, 또 친절하게 브리핑했다. 수사 경찰이 직접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서 사건에 대해 말하는 진귀한 풍경까지 연출됐다. 강호순으로 대동단결한 미디어의 합심 뒤에 무엇이 있었나? 맞다. 청와대의 이메일 공문이 있었다. 권유가 있었다. 그래서 과장이 있었다. 권력의 적극적인 개입에 미디어가 이성을 잃으면, 정치적 의도는 가뿐히 달성된다. 용산 참사가 묻히는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WBC의 한일전이다. '국가가 있고, 야구도 있다'는 비장미도 왠지 80년대 홍콩영화처럼 코믹하고, 일본을 꺾고 세계 최강이 되자는 쿨 하지 못한 말 폼새도 별로다. 그런데 방송마저 봉중근 의사 만세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태극기 세레모니 같은 불편한 국수주의 장면까지 반복됐다. 국민 단합을 이룬다느니, 경제 불황을 날린다느니 하는 허황된 감언이설은 여지없다. 한일전 승리로 대동단결 한 미디어의 합심 뒤에 무엇이 있을까? 맞다. 광고가 있다. 방송사 간의 광고 공방이 있다. 대목 장사란 말이다. 자본의 적극적인 개입에 미디어가 이성을 잃으면, 게임의 의미는 격하게 왜곡된다.
2006년 월드컵이 그랬다. 방송사가 국제대회에 이성을 잃게 된 기원은 2002 한일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판매할 수 있는 광고의 총액은 2082억 원이었다. 이 중 방송사들은 1377억 원을 팔았다. 66.1% 판매율이었다. 한국이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이 벌어지면서 터진 대박이었다. 물론, 모든 장사엔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있는 법. 이때부터 중계권료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스포츠 중계의 돈맛을 톡톡히 본 방송사들은 2006년 월드컵에선 아예 노골적으로 장사에 몰두했다. 처음부터 4강에 갈 가능성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나? 발상은 간단했다. 모든 프로그램을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버리자. 2006년 월드컵 당시, 방송사들은 판매할 수 있는 광고의 총액수가 806억 원 정도로 잡았다. 물론, 국가대표팀이 2002년 정도의 성적을 거둔다면 1180억 원까지도 달성 가능했지만 불가능한 목표였다. 아무리 낮췄다고 해도, 2002년과는 시공간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고려하면 천정부지의 금액이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2002년과 마찬가지로 예상 판매율을 전체 금액의 60%대(500억±α)로 잡아 계획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16강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이 신통치 않은 성적의 손해를 미리 메운 것이 바로 특집 편성이었다.
이번엔 어땠나? 대회 직전까지 중계를 하네, 못 하네 하는 실랑이가 있었다. 결국, 돈 싸움이었다. 여론에 밀려 지상파 중계를 하기로 했지만 KBS는 일본전을 공동 중계 할 것이냐 마느냐를 두고 방송 3사의 합의를 깨는 볼썽사나운 중계권 다툼을 불사했다. 간단했다. 한일전은 시간당 광고판매가 거의 100% 가까이 이뤄지니까. 이 광고 판매의 마력에 뉴스마저 취해버리면, 공영방송 옹호란 가치는 정말 일순간에 궁색해진다.
WBC, 오늘도 한일전이다. 그렇다. 한일전은 전쟁이 아니다. 그런데 또 아니다. 방송사 간의 전쟁이다. 오늘 한일전의 승패와 상관없이 또 4강 그리고 결승이 남아있다. 승리의 흥분이 뉴스의 짜증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 본 글은 문화연대 등의 단체가 2006년 6월 26일 진행 했던 <월드컵과 언론의 잘못된 만남을 고발한다> 기자회견 자료집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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