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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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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시장경제

[기고] '투기경제'를 '시장경제'라고 강변하는 이명박정부

이 정부 들어 가장 많이 운위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장경제라는 말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 고위 관료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입만 열면 시장경제를 말하곤 한다. 이들은 참여정부를 반시장적인 정책들을 서슴없이 입안하고 집행했던 정부로 매도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참여정부가 펼친 정책들 가운데 반시장적인 정책의 대표격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이다.

조중동 등의 과점신문들이 '대못'이라며 저주하곤 했던 종부세 및 양도세, 개발이익 환수장치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모조리 뽑힌 상태다. 과점신문들과 '강부자'들의 소원이 성취된 셈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이 같은 행태를 시장경제의 정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이명박 정부를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제질서의 최고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시장경제의 수호자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반시장적인, 너무나 반시장적인

대한민국 헌법이 시장경제를 경제질서의 최고 원리로 규정하고 있는 건 시장경제가 자원배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노력과 기여의 댓가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거래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의 보장으로 표현된다. 물론 시장실패의 영역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완전하지는 않으나마 효율과 형평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경제질서이다. 국가의 역할 중 하나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시장경제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독점을 규제해 공정경쟁을 유도하고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 및 유통에 기여한 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시장경제질서를 만들려는 국가가 불로소득을, 그것도 가장 악성인 부동산 불로소득을 보장해줄 리 만무하다.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시장경제질서의 기본원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종부세를 없애고 양도세를 형해화시키고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들을 무력화시켜 강부자들의 부동산 불로소득을 보전해주는 것이 시장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세제를 참여정부 이전으로 돌린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책수단을 가지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킬 요량인지도 정녕 궁금하다. 공급과 금융을 통해 투기를 막겠다고 한 모양인데 지금도 공급이 과잉이고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유동성 확대를 추진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이라고 별 다른 수가 있을지.

요컨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근로소득을 보장하고 불로소득에 과세한다는 시장경제질서 및 조세정의의 기본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투전판으로 만들 위험성이 매우 큰 정책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은 '돈은 아무리 더러운 돈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국민의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이 연상된다. 국민의정부는 경기 침체를 빨리 벗어나고자 부동산 투기를 사실상 조장했고 그 후유증이 참여정부 내내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정부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이제 부동산 관련 규제라고는 '강남 3구 투기지역 지정'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조차 곧 사라질 전망이다. 그나마 국민의정부가 풀어놓은 부동산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은 참여정부가 간난신고 끝에 겨우 '우리'에 가둬놓았지만 앞으로 그런 시도가 다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참여정부가 힘들여 세운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들이 후임 정권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걸 목도한 시장참여자들이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신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어떤 경우라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부동산 투기조장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촉발된 금융공황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미국의 경우는 이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경제에게 자신의 이름을 허하라

이명박 정부 들어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의 분리 현상이 극심하다. 법치주의가 그러하고, 민주주의가 그러하고, 언론자유가 그러하다. 시장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경제를 투기경제와 동의어로 생각하는 듯 하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는 것을 권장하고 정당화하는 시장경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은 불로소득에 감세를 해주는 정부, 그 중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시장경제와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투기경제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수모를 당하고 있는 시장경제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내용을 회복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 날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시장경제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견뎌야 할 시간이 길고도 참혹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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