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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마저 문 닫으면 우리 애들은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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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기마저 문 닫으면 우리 애들은 어디로 가나요?"

경제 위기 속 아이들은 넘치는데…정부 '나 몰라라'

"선생님, 수영하러 언제 가요? 나 완전 수영하고 싶은데…"

초등학교 4학년 김찬우(가명)학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선생님을 와락 껴안았다. "저녁 먹고 나면 바로 가는 거예요. 어서 손부터 씻어요"라는 성태숙(43) 시설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는 성큼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그리곤 "나 다 씻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성 시설장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인지라 사랑에 목말라 있다"고 설명했다.

17일 오후 4시. 서울 남구로에 위치한 파랑새 지역아동센터(공부방). 저소득층 아이를 무료로 돌봐주는 시설인 이곳 15평짜리(배식 공간까지 32평) 공간은 어림잡아도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2개의 방 중 한쪽 방에서는 장기를 두는 아이를 비롯해서 동화책을 읽는 아이, 피아노를 치는 아이까지, 다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며 즐거워했다.

또 다른 방에서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7~8명 정도의 아이들이 '앉은뱅이' 책상에 교과서를 펼치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날은 선생님이 저학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곱셈과 뺄셈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르는 문제가 있던 학생은 선생님과 1대1 교습을 받았다. 여러 차례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자 선생님은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다들 분주해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장인 성태숙 시설장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서른여섯 명"이라며 "이 아이들이 같은 시간대에 오면 정말 정신이 없다"고 설명했다. 두 달 전부터 이곳을 오게 됐다는 초등학교 3학년 김다래(가명) 학생은 "학원을 다니지 않아 친구들이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좋다"며 연신 웃었다.

▲ 파랑새 아동센터에 모인 아이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놀고 있다. 한쪽에서는 선생님이 아이와 1대1 공부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경제 위기로 가족 체계 무너져 늘어만 가는 방치된 아이들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와 같이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는 전국적으로 약 3000개에 달한다. 약 8만7000여 명의 아동이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 예전에 공부방이라 불렸던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안에서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통합교육 및 복지활동을 제공하는 곳이다.

최근 경제 위기는 지역아동센터의 수요를 부쩍 늘렸다. 파랑새 센터의 경우 정원이 30명으로 국한돼 있지만 현재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6명이 초과한 36명이다. 센터 측은 어려움을 호소하며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월과 2월 두 달 동안에만 지역아동센터 1개당 평균 5.2명의 아동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하고 있는 아동 역시 평균 5.4명이다.

부모들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가족 해체 23.7%, 부모 실직 23.4%, 자영업 수입 감소 18.2% 등이었다. 전형적인 경제 위기에 따른 현상이다. 그나마 이러한 수치는 설문에 회신해 온 센터 1275곳의 응답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회신하지 않은 1738곳을 고려하면 잠재 아동 수요는 3만 명을 넘으리라는 게 협의회 측 계산이다.

센터 운영 위해선 600만 원 필요, 정부 지원은 고작 219만원

이처럼 최근 급격히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역아동센터의 걱정은 더 늘었다. 존폐 여부에 대한 고민이다.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월 219만 원의 지원금 중 140만 원은 센터 선생님의 월급으로 사용된다. 남은 100만 원으로는 월세, 전기세, 난방비, 현장 체험비 등 센터를 운영하는 비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돈으로 센터를 유지하기는 무리다. 지역 센터에 소속된 3명의 교사가 받는 월급은 70여만 원. CMS 등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나마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교사들의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정미자(가명·46) 씨는 홀로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센터에서 받는 돈만으로는 이이들을 키울 수가 없어 오전에는 근처 대형마트에서 계약직 캐셔로 일하고 오후부터 밤까지 센터에서 선생님으로 일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거실에 걸려 있는 일정표 그날 교육할 일 등이 적혀 있다. ⓒ프레시안

"우리마저 외면하면 이 아이들은…" 정부 보조금 현실화 필요

성태숙 시설장은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입장이다. 그는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60% 이상이 기초수급권자 가정"이라며 "우리마저 이들을 외면한다면 이들이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가 이 일을 할지는 모른다. 성태숙 시설장은 "건물 보증금 까먹으면서 계속 버티다가 결국 보증금 다 없어지면 센터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는 보건복지부와 같이 월 219만 원으로 한정된 지원금을 425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425만 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차근차근 높여 현실적인 액수인 600만 원까지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지역아동센터는 "교사 인건비, 운영비 등 30명의 아동을 돌보기 위한 최소 재정은 월 600만 원"이라며 "이를 위해서라도 4월 국회에서 상정되는 추경예산에 아동복지 지원금이 편성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례를 보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도 협의회는 같은 요구를 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재정경제부가 제시하고 있는 지원금 액수는 월 300만 원이다.

▲ 16일 서울역에서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주최로 추경예산 확대를 통한 지원금 확충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다. ⓒ프레시안

"센터가 문을 닫으면 아이는 어디로 맡겨야 하나요?"

아동센터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경기 침체로 늘어나는 빈곤층 아동을 외면하는 차원을 넘어 적자에 시달리는 센터들이 문을 닫을 판인데도 '나몰라라'하는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난 16일 서울역에서 지역아동센터협의회가 주최한 예산 증액 촉구 대회에 참석한 학부모 최영주 씨도 그랬다.

"4년 전 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관계로 한순간에 빚더미에 쌓이게 됐다.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남편은 결국 지방으로 돈을 번다고 사라졌다. 나에겐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 두 아이와 빚만 남겨졌다.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니 엄마를 기다리며 찬밥을 먹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역아동센터를 알게 됐다. 민간 업체이지만 무료이고 공부도 하고, 함께 아이들과 놀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부채로 문을 닫아야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암담했다. 여기가 없어지면 우리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최영주 씨는 "경제 위기 속에서 서민들의 기본 권리는 외면하고 기업 비즈니스만 외치는 대통령은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며 "부디 서민들을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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