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고시원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이제 시간이 없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고시원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이제 시간이 없다"

[인터뷰]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

그는 유명인사다.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진짜 백수'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서다. 그래도 굳이 그를 만난 것은 한 라디오 인터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자살을 예고한 여성 실업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 내용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했다. 마침, 등록금을 내지 못해 대학을 중퇴한 한 젊은이의 자살 소식을 접한 직후였다.

결국, 그를 만나기로 했다. 어지간한 독자들은 이쯤에서 눈치 챘을 게다. 그는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다. 1996년부터 실업자로 지내고 있는 그는, '프로백수'로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됐다. 지난 12일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세종로에 있는 KT아트홀. 그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가보니 그럴 법 했다. 푹신한 소파가 있는 그곳은 아무나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밖에서 빵과 음료수를 들고 오면, 한나절은 너끈히 지낼 만하다.

"죽고 싶다"는 사람 앞에서 '규정' 찾는 관공서

그를 만나자마자 급한 질문부터 던졌다. "전국백수연대 인터넷 카페(cafe.daum.net/backsuhall)에 죽고 싶다는 글을 올렸던 분, 어떻게 됐나?"

당사자와 몇 시간 동안 통화를 했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했다. 다행히 급한 위기는 넘겼다고 했다. 작은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실업자가 된 그녀는, 밀린 방세를 포함한 빚이 천만 원쯤 된다고 했다. 월 23만 원인 방세 납부는 조금만 더 연장해달라고 집주인에게 부탁하기로 했고, 빚은 갚을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채업자들의 협박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를 발신 전용으로 바꿨다고 했다.

전국백수연대가 생겨난 IMF 외환위기 당시에만 해도, 일자리를 못 구해서 죽고 싶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고 한다. '일 년쯤 기다리면 취업할 수 있겠지'하며 느긋해하는 분위기였다고.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 취업을 못 하리라는 절망이 깊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주덕한 대표는 "규정 좀 그만 들먹이자"고 했다. 목숨을 끊겠다는 사람을 말리느라 관계 기관에 도움을 청하면, '생활보호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인지 아닌지만 따지고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 "안타깝지만, (도와줄 수 있는 근거가 될 만한) 규정이 없습니다." 굳이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은 전국백수연대 대표인 그에게 흔한 일이다.

인턴에게 영업 시키다, 인맥 떨어지면 내쫓는 회사

▲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 ⓒ프레시안
대표적인 게 가장 흔한 실업 대책인 인턴 채용이다. 일자리가 절박한 사람일수록 '규정' 때문에 인턴 채용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것. 주 대표는 "최근 인턴 채용이 늘었지만, 대부분 대졸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고졸이나 대학 중퇴자가 응시하면, '규정' 때문에 무조건 낙방이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인턴 자리도 대부분 소모품 역할에 그친다.

"인턴으로 채용되면, 주로 시키는 일이 영업이다. 거리에서 카드 가입하라고 붙잡은 사람들 대부분은 인턴이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실업 상태로 오래 지낸 이들에게 생기는 대인기피증이다. 이런 이들에게 갑자기 영업을 시키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생각보다 내가 능력이 없구나' 싶은 생각에 더 움츠리게 된다. 자신감이 떨어져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도 문제가 있다. 인턴이 할 수 있는 영업이라는 게 한계가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파는 게 전부다. 길에서 그냥 붙잡는 식으로 얼마나 팔 수 있겠는가. 인턴이 주변 사람에게 팔 만큼 팔고 나면, 회사는 인턴을 내보낸다. 그리고 새로운 인턴을 뽑는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구직자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에 흔히 올라오는 사연들이다."

"서른살 넘은 실업자는 어쩌라고"

'백수 생활 전문가'인 그는 할 말이 많았다. 한번 열린 말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특히 2년 전부터 화제가 된 '88만 원 세대론'을 놓고 특히 그랬다.

"20대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20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게 30대 이상을 배제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 20대인 사람도 머지않아 30대가 된다. 그때까지 문제가 안 풀리면, 20대 문제가 아니니까 손 놓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20대 젊은이들이 다른 세대와 손잡고 문제를 해결했으면 싶다. 물론, 더 큰 문제는 20대 젊은이들이 아니라 정부 당국이다.

청년 실업자 대책에는 늘 '29세까지'라는 규정이 있다. 30세 이상 실업자에 대한 대책은 없다. 30세 이상은 인턴 자리를 구하려 해도 규정 때문에 안 된다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20대 실업자만을 위한 대책이 아닌 실업자 전체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아프면, 대책없다"

'프로백수'인 그가 한 달에 쓰는 돈은 10~20만 원이다. 잠은 누나 집에서 잔다. 식사도 어지간하면, 집에서 해결한다. 대신, 휴대전화 비용으로 한 달에 3만 5000원 쯤 쓴다. 교통비로 엇비슷하게 쓴다. 만약 몸이 아프면? 대책이 없다. 평소 안 아프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 가면, 늦게까지 남지 않도록 애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다. 이게 대책이다. 그래도 아프면? 진짜 큰일이다.

그나마 그는 누나 집에서 지낼 수 있기에 다행이다. 일자리 전망이 보이지 않아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살고 있는 경우다. 고향에 있는 부모에게 의지할 형편이 못된다. 오히려 집에 돈을 보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서울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고향에 내려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 고시원을 전전하며, 근근이 버티는 수밖에. 앞서 전국백수연대 인터넷 카페(cafe.daum.net/backsuhall, 백수회관)에 죽고 싶다는 글을 올렸던 여성이 이런 경우였다.

노인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는 일본

이런 상황은 한국만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도 비슷하다. 세계 2위의 부자 나라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사회 전체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요한 결과다. 지난 2007년에는 50대 남성이 굶어 죽은 지 한 달 만에 미라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가 일기장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주먹밥이 먹고 싶다"였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람이 사회복지 관련 기관을 찾으면, 까다로운 규정을 들어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언론이 따져물으면, 고이즈미식 개혁으로 사회복지 예산이 대폭 줄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런 일본의 풍경은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굶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주덕한 대표는 그래도 일본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비영리 기구 '희망청' 대표 시절인 지난 2007년, 그는 한국-일본 무업자(無業者) 교류를 위한 행사 때문에 일본을 찾았었다.

"일본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60대 노인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었다. 실업 대책은 오직 20대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찾기 어려웠다. 인턴 등 임시 일자리가 모든 세대에 개방돼 있었다. 또, 나이 든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런 점은 한국이 배워야 한다."

기업 활동 '규제 대못' 뽑혀나갔는데, 구직 활동 '규제 대못'은?

그는 최근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전공'인 실업자 구직 활동을 돕기 위한 사업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내세운 정부가 있는 시절에는, 구직 활동도 '비즈니스'로 이뤄져야 더 원활한 걸까. 그에게 현 정부의 실업자 대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전국백수연대가 생긴 게 김대중 정부 초기였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까닭에, 실업자 대책이 절실했던 때다. 하지만, 딱히 내세울만한 정책은 없었던 것 같다.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렀지만, 이런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느 정권이건 실업자 대책이 미흡하긴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는 '규정' 핑계만 대는 이들을 탓했다. 월 23만 원 방세를 내지 못해 고시원에서 쫓겨나게 된 실업자가 노숙자가 아니어서, 성매매 여성이 아니어서 머물 곳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을 향한 답답함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이명박 정부는 늘 규제 대못을 뽑겠다고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옥죄는 규제는 여전하구나. 정부는 부자들의 돈벌이에 거치적거리는 규제 대못만 뽑으려나보다.' 그래서 물었다. "현 정부 들어 기업 활동을 위한 규제는 많이 풀렸는데, 기업에 들어가 일하려는 이들을 막는 규제는 여전한 모양이다. 구직 활동을 하는 이들의 생각은 어떤가."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이 쏟아졌다.

'실업 대책 전문위원'이라더니…얼마 뒤, 연락하면 "부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가 유난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업 대책 관련 활동을 하며 만난 관료들 역시 경직된 태도에서 많이 벗어났다. 물론, 그게 꼭 정권의 방침 때문은 아닐 게다. 내가 만난 관료들은 대개 (실업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진심이라고 본다.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그들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철이면,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다. 가보면 실업 대책 전문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가 끝난 뒤, 연락해보면 "부서가 바뀌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부서가 바뀌면, 관심이 뚝 끊긴다.

토익 책에는 해법 없다…"실업 당사자가 연대하는 게 답이다"

실업으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실업 대책의 대표적인 사각지대가 고졸 이하 학력을 지닌 분들이다. 정부가 왜 대졸자에게만 신경 쓰느냐고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고졸자들이 직접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일자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지방대 출신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나서야 한다. 혼자 토익 책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옆 자리에 있는 동료와 함께 손을 맞잡고 대책을 만들고 요구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정부 관료들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서, 정부 관료만 탓하는 것은 잘못이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대답을 멈추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간 곳은 언론과 지식인. '88만 원 세대론'을 유행시킨 지식인과 언론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토론회에서 어려운 말 쏟아내는 그들, '고시원 생활'을 아는가"

"서울에서만 자란 사람은 모른다. 고시원 생활에 대해 말이다. 지방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 고시원이다. 보증금도 없어서 근근히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햇볕도 들지 않는 방, 얇은 벽으로 둘러쌓인 방에 몸 하나를 간신히 누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지내는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다. 시간 여유가 없다. 월세가 밀리면, 당장 쫓겨난다.

실업 대책 토론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고시원에 살면서 다달이 내는 월세를 마련하느라 허덕이는 이들에게 들려주면 뭐라고 할까. 한가한 소리라고 할 것 같다고? 글쎄, 내 생각에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을 것 같다. 이런 토론회에서 나오는 말들이 대개는 너무 어렵다. 실업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인 고졸자들이 이해하기에는 특히 그렇다.

게다가 불필요한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88만 원 세대론'이 진보 진영에서 나왔다. 여기에 맞서 <조선일보>는 '실크로드 세대론'을 제기했다. 이런 논쟁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업을 특정 세대의 문제로 파악하는 순간, 엉뚱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어차피 실업은 20대만이 아닌 전체 세대의 문제다. 이제 '88만 원 세대론' 자체를 넘어설 때가 됐다.

'이력서 100통 쓴 사람'만 찾는 언론

언론의 태도 역시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기자나 PD들에게 수시로 전화가 온다. 자기들이 할 이야기를 미리 정해 놓은 뒤, 필요한 '멘트'를 따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이다. 어떤 PD는 다짜고짜 연락해서 하루에 이력서 100통을 쓴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한다. 이력서 100통을 쓰는 일은 잘하는 짓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무작정 원서를 내서는, 취업에 성공할 수 없다. 방송에서 이런 장면을 본 실업자들이 괜히 따라할까봐 두렵다.

하지만, 언론은 실업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면만 찾으려 든다.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 독자나 시청자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애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언론인과 학자들에게 지방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의 생활을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논쟁을 위한 논쟁, '자극적인 볼 거리'를 만들기 위한 취재는 이제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런 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고시원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떠는 이들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