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대법원은 허태학 피고인의 에버랜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종전 재판부에 이어 새로 구성된 지 한 달도 안 되는 새 재판부도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한 셈이다. 다만 이번에는 이유가 뭔지 불분명하다. 지난번처럼 새 재판부에서도 소수의견이 표출돼 그런지 아니면 사건의 성격상 소부(小部)에서 다루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해서 그런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공식입장이다.
100% 같은 사건 포함된 삼성 특검은 왜 소식이 없나
똑같은 에버랜드 사건이 포함된 이건희 피고인의 삼성특검사건은 아직 전원합의체로 간다는 소식이 없다. 에버랜드 사건을 뺀 나머지 특검사건에 대해 해당 재판부에서 의견일치가 이뤄진 까닭에 안 가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최종합의과정이 남아있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법원 공보관은 이 점에 대해 확인을 거부했다.
나는 위의 두 가지 가능한 이유 중 어떤 것에 해당되더라도 2부 특검사건 역시 전원합의체로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100% 동일한 하나의 에버랜드 사건이 피고인을 달리하는 두 개의 재판으로 별도 진행돼 온 현재의 기현상은 검찰이 애초 허태학 사장만 기소하고 이건희 회장을 봐준 데 기인한다. 삼성특검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는 따라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대법원이 바로잡아 동일 사안을 하나의 재판부, 즉 전원합의체가 처리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형식적 이유 외에도 경영권 배임승계 및 차명비자금 4조 원 운용이라는 중대한 혐의내용으로 보나 에버랜드 기소와 삼성 특검을 거쳐 대법원까지 오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치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보나 삼성재판의 판결이 향후 미칠 사회적 파급력으로 보나, 역사적인 삼성 특검 사건은 4인 재판부보다 전원합의체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 경제와 기업 경제의 중대 법리 다루는 역사적 기회
에버랜드 및 SDS 저가발행 재판은 총수의, 총수 (비서실)에 의한, 총수 (일가)를 위한 계열사 약탈 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문제 의식과 근절 의지를 가늠할 리트머스 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허태학 에버랜드 사건의 1심과 2심 법원은 총수 자녀에 대한 헐값 신주 발행을 배임죄로 엄단한 반면 이건희 에버랜드 사건의 1심과 2심 법원은 정반대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100% 동일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이 오직 피고인의 신분차이에 따라 이렇듯 유무죄로 극명하게 갈린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드물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에 하급심의 상반된 법리판단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가려줘야 한다. 설마 대법원이 16억의 세금만 내고 삼성지배권을 통째로 물려준 사상최대의 배임 연금술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재벌총수의 배임특권시대가 종언을 고하면 그때야 비로소 기업사회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의 새 시대가 열리리라. 경제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 시작하리라.
나는 대법원의 에버랜드와 SDS 판결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희비와 재벌 경제의 명운, 그리고 법치주의의 명암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재벌 총수의 약탈 권력과 재벌경제의 기대수명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총수관련 기업 실무와 회사법 실무도 대폭 정상화되며 법치주의의 마지막 심리적 성역이 사라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 특검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가 바람직한 이유는 4인 재판부가 맡기에는 법리적, 정치경제적 파급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끝으로 에버랜드 사건의 뒤늦은 전원합의체 회부결정으로 종전의 전원합의체 회부결정 불이행책임 및 특정 대법관 배제 의혹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의 코드 재편를 통한 특정 대법관의 코드배제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에라도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민의 소수 의견을 대표할 대법관의 소수 의견권마저 박탈할 뻔했던 중대사건에 대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쩍 넘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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