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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가'라면 개헌을 준비하라

[박동천 칼럼] 개헌이 필요한 이유 하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과 조직을 30% 축소하겠다고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러면 안 된다고 유엔에서 권고문이 오고, 국내 여론도 빗발치지만 상관하지 않는 태도다. 인권위가 축소되기 전부터 이미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의 정상적인 기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용산 참사에 관한 인권위 조사를 검찰과 경찰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인권위 구하기가 급한 일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권위 살리기에 목소리를 보태야 한다. 그밖에도 지금 시급한 과제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차제에 장기적인 의제도 함께 발굴해 나가야 정권의 부침에 따라 인권이 휘둘리는 일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나는 다시금 '87년 헌법의 엉성함을 절감한다. 표어 짓기에 능숙한 우리 사회의 성급한 습성 덕분에 '87년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처럼 착각이 횡행했지만, '87년 헌법으로 확립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뿐이다.

당장 4년 후 선거에서 의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지금처럼 발등에 불끄기로 세월을 보내고, 때가 닥치면 말초적인 여론조사나 뒤쫓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맞이할 것인가? 박근혜가 진보의제는 고사하고 21세기의 국제적 국내적 상황을 이해라도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이해 못 하는데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서 쓸 수는 있을까? 그래도 박근혜가 이명박보다는 "원칙"을 지키겠거니 희망을 자가발전하면서 위안을 삼을 것인가? 아니면 소수야당의 육탄방어로 지지율이 10%에서 15%로 오르는 "승리"에 만족하는 애처로운 장면을 재연할 것인가?

개헌이라는 의제는 이미 여러 차례 거론되었고, 2007년 선거정국에서는 당시 노 대통령과 유력 후보들 사이에 2008년 이후에 추진하기로 공개적인 합의도 이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과거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 체질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의 야당들은 이 주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개헌이라는 것이 일이년 사이에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거려서 해치워지지 않게 하려면 다른 현안들이 산적한 바로 지금부터 관심의 일부를 떼어 이 장기적인 의제를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개헌은 항상 정략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차기를 노리는 야심가들일수록 개헌을 할 때 하더라도 가능하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야심이 그보다는 소박한 정치인이라도 개헌을 통해 자기가 뭔가를 챙기려는 속셈은 안 가질 리가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이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게 되어 있고, 거론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뭔가 복안을 짜놓은 다음이기가 쉽다. 따라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개헌은 공익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87년 헌법은 우리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인민의 적극적인 의사가 반영된 헌법이다. 하지만 인민의 적극적인 의사라고 해봤자 대통령 직선제 조항뿐, 나머지 조항들에 대해서는 과거 조항을 습관적으로 물려받았거나 아니면 일부 법률가와 국회의원들이 손 본 대로 통과되었을 따름이다. 130개에 달하는 모든 조문들을 인민이 일일이 축자 심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몇 가지 핵심사항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공론의 심의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일정한 입장들이 형성되고, 그것이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기를 바란다.

내가 필요하다고 보는 헌법수정의 내용을 지금부터 이 칼럼을 통해 (반드시 연속은 아니다)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가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면에서 인권위 격상은 미국 헌법으로 치면 권리장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미국 헌법에서 권리장전이란 수정 헌법 제1조에서 제10조까지를 말한다. 그 주요 내용은 표현의 자유(수정1조), 무기소지권(2조), 영장 없이 수색이나 체포당하지 않을 권리(4조), 일사부재리 금지, 묵비권 등 적법절차(5조), 피고인의 권리와 배심재판의 권리(6조), 잔혹한 처벌 금지(8조) 등이다. 1787년에 마련된 헌법안이 각 주의 비준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인권에 대한 조문이 빠졌다는 비판이 일고 비준이 지체되자, 권리장전을 마련한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헌법 발효에 필요한 여러 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약속에 따라서 권리장전이 1789년에 작성되었고, 1791년에 비준이 완료되어 헌법에 첨가되었다.

무기소지권 같은 미국에 특수한 조항을 빼면 우리 헌법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기본권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헌법에도 양심의 자유(19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21조), 법률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27조),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기본권이 총강 다음 제2장으로 들어가고, 국회와 정부가 제3장과 제4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제2장 기본권 부분이 미국헌법의 권리장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전문에 이어 제1조가 의회, 제2조가 대통령, 제3조가 법원 등으로 구성되어 기본권 부분이 빠졌다는 비판 때문에 권리장전이 서둘러 첨가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형적 유사성은 분명히 있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느냐는 데에 있다. 미국 헌법의 권리장전은 주의회든 연방의회든 법률을 통해서 제한할 수 없는 기본권들의 목록이다. 일례로 198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기를 훼손하면 처벌하던 법을 수정 제1조 표현의 자유 조항에 어긋나므로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당시 48개주에서 시행되고 있던 법들이 무효화된 것이다. 이에 연방의회가 국기보호법을 제정했지만, 1990년에 대법원은 다시 그 법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의회가 뒤집으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국기훼손만은 수정헌법 제1조에서 예외로 만드는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경우 헌법 제21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각종 법률에 의해서 포괄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태극기의 경우 형법 제105조에서 의도적으로 훼손하면 처벌하게 되어 있고, 이런 법이 아니라도 사회통념상 태극기 훼손을 표현의 자유로 봐줄 사람은 한국에 몇 명 없을 것이다. 헌법 제21조 2항은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제5조부터 제12조까지 경찰에게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포괄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굳이 덧붙이자면, 국가보안법은 근본적으로 "의도"와 "목적"을 처벌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전체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와 충돌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기본권 조항이 풍부하게 포함되지 않는 적이 없는데, 실지로 기본권 침해가 의회의 법률 및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재가 되어 왔다는 사실이 우리 헌정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다. 기본권이란 권력의 한계를 구획하는 경계선이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권력에 의한 침해를 말한다. 권력이 헌법 위에 있다, 즉 법치주의가 아니라 전제라는 말이다. 법률과 판결이 헌법 조문과 어의 상으로 부딪친다는 것은 입법부와 사법부가 인민 개개인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무력에 종속한다는 말이다.

기본권을 더욱 확보하기 위해 뭔가 발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발본적인 변화일수록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장차 10여년 후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권 부분을 전체적으로 명확하게 가다듬으면서 인권위원회를 헌법 조문에 넣어서 행정부의 필요에 따라 휘둘리지 않도록 확고한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억압적인 국가권력의 전통이 워낙 강하고,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권력을 대등하게 놓고 보는 발상 자체가 불온시되는 풍토라서, 경찰이나 검찰은 물론 법원마저도 인권의 보루 노릇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처음 얼마동안 인권위는 때로 법원과도 견제관계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법원을 인권의 수호자로 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 후로는 법원과 인권위가 개인의 권리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리라 기대할 수 있다.

개헌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필요하다. 노 대통령이 제기했던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 차이는 오히려 작은 이유다. 내각제를 비롯해서 정부형태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고 국회의원 선거제의 근본적인 탈바꿈도 상당히 비중 있는 주제이다. 만약 현실의 모든 갈등관계들을 접어놓고 빈 도화지에 설계도를 그리는 식으로 한다면, 실효 없는 선언적인 문구들은 가능하면 헌법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헌법은 도덕교과서나 종교율법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조직원리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헌법에 관해 무수한 견해와 입장들이 있을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방면에서 거버넌스나 사회적 합의의 필요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논의들도 개헌논의의 안으로 통합해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견들이 공론장에서 충분히 표명되고 논의되어 하나의 개헌안으로 수렴되려면 어쩌면 10년도 부족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충분한 사회적 숙고 끝에 개헌안을 슬기롭게 마련한다면 미래 한국사회의 기틀을 확립할 수 있고, 더구나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이견들을 조정하는 실천을 한번 함으로써 차후 우리 정치사회의 역량과 위상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대내외적인 신뢰도 대단히 높아질 것이다.

지금 개헌하지 않는다고 어디가 당장 크게 고장 날 대목은 없다. 따라서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숙고를 할 수가 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라든지, 국민투표 과반수라는 형식적 요건과 상관없이, 완강히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나올 필요가 없을 때까지 시한을 정하지 말고 충분한 소통과 설득, 그리고 타협을 생성해 낼 수가 있다. 생소한 주제에 대해 일단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일상적인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시급하지 않은 때에 이야기를 꺼내서 익숙함의 장벽을 좀 무너뜨려 놓아야 혹시 시급한 필요가 발생했을 때 새롭다는 이유로 필요한 의제가 일축당하는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주도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란 4년 임기 단위 안에서 사고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장기적인 고려에는 부적절하고, 또 정파간의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통합에도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일상적인 정책이라는 업무가 있기 때문에 바쁘다. 이런 장기적인 주제를 직접적인 정치공방과 약간이나마 거리를 두고 시한 없이 고려할 수 있는 데 가장 적합한 인종은 따로 있다. 그것은 각종 학교나 연구소에서 정규직으로 있든 비정규직으로 있든 아니면 시민단체에서 종사하든, 연구나 조사에 적성이 맞고 논리의 기초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개헌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나는 바란다. 성급한 결론은 금물로, 최소한 10년 정도의 논의를 통해 공론이 무르익은 후에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를 내다보는 관점이어야 한다. 집요하고, 쫀쫀하면서도, 발본적인 논의들을 오래 끌어가면서도 쟁점들을 정리해 낼 수 있는 끈기와 평정심을 갖춘 사람들이 공론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한 논의를 위해 나는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하자고 여기서 제안했거니와,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몇 가지를 더 제안할 것이다.
▲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발본적인 개헌에 관심이 있기 어렵다. 반면에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못 다한 개혁과제를 잇는다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비전 고갈 상태를 탈피하고 정책정당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개헌이라는 의제가 유용할 수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들은 이 논의에 직접 개입하면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간접적으로 공론의 진행을 활성화하고 촉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당의 정책연구 부문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발본적인 개헌에 관심이 있기 어렵다. 반면에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못 다한 개혁과제를 잇는다는 의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비전 고갈 상태를 탈피하고 정책정당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개헌이라는 의제가 유용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내내 새천년민주당이 그랬듯이,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도 다음번 선거에서 이긴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포기했었다고 나는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에는 순전히 노무현의 개인기로 집권을 연장했을 뿐이고, 2007에는 그래서 참패로 끝났다고 나는 해석한다. 지금 상태로 세월만 흐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설정하는 의제에 반대는 가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집권은 무망하다.

이 나라 헌정사에서 민주개혁 세력은 기본적으로 소수파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하고서야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김대중은 4수째 김종필과 연합을 하고도 이인제의 탈당이 없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정치라는 측면에서 노무현의 개인기가 얼마나 경이적이었는지, 2004년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국회 과반수라는 사건이 얼마나 꿈같은 일이었는지를 민주당에서 조금이라도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뼛속 깊이 깨달아야 한다.

30%내외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보수파를 선거에서 이겨내려면 부동층 대부분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노무현이 풍긴 불확실한 매력에 끌렸다가 한번 실망했기 때문에 전보다는 명확해진 희망이 아니면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의제의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그들이 4년 후에 누구를 찍을지가 내 눈에는 거의 뻔하게 내다보인다.

차기에 정권탈환을 포기한 사람들은 당권이라도 챙길 생각을 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야심이 크다면 지금이 바로 뭔가 자기만의 장기 의제를 내놓고 비전을 보여주기 시작할 때로 보인다.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때에 장기적인 개혁에 대한 희망도 같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새로운 비전의 출현을 지향하고 고대하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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