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자'들은 봄이 오는 것을 보고 삽질하기 좋은 계절이 온다며 좋아하는 것 같다. '강부자'들은 경제 위기가 더욱 더 심해지는 것에 대해서도 삽질의 기회가 더욱 더 커지고 있다며 좋아하는 것 같다. '강부자'들은 이제 삽질하기 좋은 봄이 왔으니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 사업이 분명한 '4대강 살리기'와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의 시범 사업인 '경인운하'를 어서 강행하자고 본격적으로 재촉하고 나섰다. 엄청난 혈세를 탕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산업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고용의 후진화를 추진하는 나라를 이 세상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토건 정책이 극히 잘못된 후진적인 경제 정책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산업 정책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고용 효과와 체류 효과의 면에서도 결코 유효하지 않다. 그것은 개발꾼과 투기꾼들에게 막대한 혈세를 퍼주는 대신에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고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에 이어 정운찬 교수도 후진적인 토건 정책을 중단하고 그 돈을 선진적인 산업 정책에 써야 한다고 전면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망국적인 토건국가의 극단화 정책을 극구 강행하면서 이러한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마저 막으려는 모양이다.
▲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은 토건 정책만큼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검열'을 통해 비판의 입을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프레시안(조형·사진=손문상) |
이 결정의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우선 방통심의위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방통심의위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곳이며, 이 결정은 대체 어떤 효력을 가지는 것인가?
방통심의위는 말 그대로 방송과 통신에 대해 심의하는 곳이다. '심의'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심사하고 토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심의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며 좋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심의는 검열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에 가깝다. 검열은 자유사회의 근원이자 초석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방송과 통신에 대해 검열하는 곳인가? 그러나 우리의 헌법은 이런 짓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통심의위도 그저 방송과 통신의 올바른 이용을 위해 설립된 '민간독립기구'를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방통심의위법은 방송통신위원회법의 한 부분이다. 요컨대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사실 이것부터 방통심의위가 '민간독립기구'를 자처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법의 구성 자체가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가 그 위원장을 맡고 있는 초강력 국가기구의 부속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9인의 심의위원은 국회의장 추천 6인을 포함해서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체 어떤 '민간독립기구'의 위원을 대통령이 위촉하는가? 더욱이 현재의 구성 방식으로는 대통령과 다수당이 방통심의위를 사실상 장악할 수 있다. 방통심의위가 '민간독립기구'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방통심의위가 방송과 통신의 올바른 이용을 내걸고 실제로는 방송과 통신에 대한 검열을 실행하고 있다면, 방통심의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대체 심의와 검열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표현의 자유를 실제로 억압하는가에 있다. 검열은 어떤 표현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해서 표현의 자유를 실제로 억압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통심의위가 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민간독립기구'의 형식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방통심의위의 '검열'은 '민간독립기구'에 의한 결정의 형식을 띄기 때문에 법적으로 '검열'이 아니라 '자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구성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능의 문제일 것이다.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가 대체로 훨씬 더 중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그렇지 않다. 그 구성이 기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방통심의위가 정말 '민간독립기구'라면, 그 구성 자체가 발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한을 갖지 않아야 한다. 말 그대로 방송과 통신에 대해 심의해서 결과를 공표하고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현재의 방통심의위는 예전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처럼 그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 '이상한 위원회'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방통심의위가 극히 정치적으로 사실상의 검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여러 비판들이 강력히 제기되었다. YTN 노조의 검은 옷 방송에 대한 중징계, 김문수 지사의 식민지 시대 관련 발언에 관해 시민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한 삭제 요청(이에 대해 고려대 박경신 교수는 방통심의위가 '진실 유포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불매 운동에 대한 위법성 결정, 그리고 MBC의 <PD수첩>, <뉴스데스크>, <뉴스 후>의 보도에 대한 중징계 등의 사례들은 방통심의위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 크나큰 의혹을 자아내게 한다.
방통심의위는 한 '뉴라이트' 단체의 고발을 받아서 MBC에 대한 '심의'를 했고, 그 결과 내용이 편파적이어서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방송에 대해서도 서둘러 같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KBS를 통해 대대적으로 방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명백히 편파적인 계획에 대해서 미리 엄중히 경고하는 것이 방통심의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일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자기의 이상한 잣대조차 일관되게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가 방송과 통신을 장악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방통심의위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은 더욱 더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방통심의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만일 '민간독립기구'의 탈을 쓴 '국가행정기구'가 '심의'의 이름으로 강력한 '검열'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자유사회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크게 비틀어지고 망가진 엉터리 자유사회일 것이다. 그 구성부터 이상한 위원회인 방통심의위가 방송과 통신에 대해 중징계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엉터리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정말로 중징계를 받아야 할 곳은 MBC가 아니라 방통심의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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