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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제고사 또 본다? '후진 교육' 밀어붙이나"

[토론회] 교육학자 맹비난 "관료적 행정의 전형"

지난해 10월 치른 학업 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서 성적 조작 등 각종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오는 10일 전국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치를 예정이었던 진단 평가를 연기했다. 교과부는 전체의 0.5%인 표집 학교에서만 31일 시험을 치르고 나머지 학교에서는 시·도 교육청 자율에 맡기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표집 평가 일자인 31일에 맞춰 일제히 진단 평가를 치르겠다고 나섰다. 교육 당국이 일제고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한 셈이다.

교육학자들은 이를 두고 "타당성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관료적 행정"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4일 교육개혁운동시민연대, 한국교육네트워크 등 교육단체와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일제고사의 문제점과 대안이 논의됐다.

"일제고사로 학교 실력 측정? 불가능한 일"

이날 발제를 맡은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일제고사의 필요성에 재차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의 교육력이 낮아졌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으며, 시험을 강화하면 그것이 증가될 것이라는 주장은 또한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물은 뒤 "학벌사회의 살벌한 경쟁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수능이라는 막강한 국가 수준의 평가가 있는 한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기우"라고 지적했다.

성기선 교수는 "학력평가의 기존 방식인 표집형으로도 기초학력 미달자의 수와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교육을 위해 준비와 지원을 결정할 수 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며 "또 시험문항의 난이도가 높지 않으며 모든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반면 일제고사 형태인 전집형의 경우는 난이도가 낮은 시험을 반복적으로 치게 되면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며 그에 부응해 점차 어려운 시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최저학력이 아니라 최고학력을 다루게 되며 그 결과 학생들은 이를 위한 준비를 별도로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기선 교수는 일제고사로 학교의 책무성을 높일 수 있다는 교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A학교가 B학교보다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A의 프로그램이 B의 프로그램보다 더 높은 성취를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A학교와 B학교의 모든 학생이 출발점에서 동일한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학교 특성은 사회경제적 지위, 선행 성취도 수준 등과 혼합되어 있다"며 "결과적으로 특정한 시점에서 학교를 비교하고 성취도의 격차를 산출해 어느 학교가 더 효과적이라는 인과적 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교육행정의 후진성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

성 교수는 "만약 국가 수준 성취도 검사의 결과를 교사 효과, 학교 효과와 학교 평가를 분석하는데 사용하려고 한다면 훨씬 엄격한 연구설계와 데이터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이런 평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며 그 자체의 의미도 반감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왜 전집 평가로 전환하고자 하는지 그 논리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고 공감을 형성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또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체험 학습을 허용한 교사에 대한 파면과 해당 교육청에 대한 인사조치를 내리는 등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등 부정적 사례만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성 교수는 "학생들은 이러한 시험에 대해서 별로 의미있게 준비하지도 않고 대충 시험을 치는데 그 결과를 갖고서 교사와 교장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 교육 행정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교육 연구의 결과를 참고하지도, 예측되는 우려와 문제점에 대해서 조금도 귀기울이지도 않는 전형적인 관료적 판단의 오류"라며 "선진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자들을 참여시키고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면서 과학적 접근을 할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우리는 너무 앞질러 가려다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짜 기초 학력 미달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이어 발제를 맡은 성열관 경희대 교수는 일제고사의 폐해를 막으면서도 기초학력 향상이 가능하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성열관 교수는 "우선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복귀하고, 판별중심에서 원인파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수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표집을 통해 획득이 가능하다"며 "표집평가는 경제성이나 효율성 면에서도 바람직하며, 일제고사 부작용의 우려도 없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또 기초 학력 미달로 추정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종합 진단 시스템 구축하고 이들은 위한 지원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밀집학교는 기초생활수급권자 가정, 무료급식지원학생 수만으로도 거의 파악된다"며 "또는 교육복지투자우선 지역 학교 선정 기준을 참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성 교수는 "교육 당국은 기초학력미달학생 정책을 수립할 때 판별 중심에서 원인파악 중심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빈곤, 동기부족, 각종 장애, 위기가정 등 각종 검사 및 면담을 통해 학력미달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통해 빈곤에 의한 학력미달인 경우에는 학교가 지역사회전문가(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숙제지도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으며, 동기 부족이 원인일 경우 '자신감 향상 프로그램', '성공체험 프로그램과 병행하는 학력증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장애에 의한 미달인 경우엔 해당 교사-학부모-해당 전문가의 3자 회담을 통해 소아청소년상담소, 청소년복지센터 등과 연계 협력하는 방안을, 위기 가정에 의한 미달인 경우 사회복지단체와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적 공개, 전문적 분석 하나 없이 여론 호도하다 망신"

이날 교육학자 155명은 "교과부는 일제고사 실시를 중단하고, 내실있는 교육 지원 정책을 제시하라"며 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지난 2월 교과부의 일제고사 성적 공개를 비판하며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일반화하면서 학교장의 리더십과 교사의 열의에 의해 학업 성취가 결정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며 "실제로 나타난 도농 간 격차나 대도시내 지역별 격차에 대한 어떠한 전문적 분석도 추가되지 않은 허술한 서열 자료만을 내놓고 학교들에 평가결과의 책임을 묻는 조치들을 함께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러나 채 하루도 안 되어 임실교육청의 보고가 허위로 드러나고 전국적으로 허위, 조작 보고들이 이루어진 사례들이 속출하는 중"이라며 "교과부는 대국민 보도내용을 한 편의 희극으로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채점강화, 담당자 문책 등 강경 대응으로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수조사 형식의 일제식 평가와 공시 정책은 교육을 개선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 여실히 확인됐다"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서열화와 학교통제 이상의 교육적 의미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교과부는 학력평가와 관련한 부작용들을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채점을 강화한다고 부정이 없어지지는 않으며 문제의 본질은 허위보고 등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이들은 "일제식 학력고사, 정보공시제, 학교선택제 등을 연계하려는 정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실패한 정책을 수입한 것이라는 점에 명백한 문제가 있다"며 "영미에서 정책전환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실패한 모델을 수입하여 강제 시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실패한 정책의 수입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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