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중인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
이런 가운데 방송법에 명시된 '보편적 시청권'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4일 "전세계인이 즐기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는 달리 WBC 야구는 미국의 초청에 의해 몇 개 나라만 하는 것"이라며 고시 기준에 따라 보편적 시청권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제외했고, 올해 WBC 포함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이미 야구팬들의 열불에는 기름이 부어진 상태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논란의 뿌리는 간단하다. WBC 국내 중계권을 300만 달러(46억 원)에 사들인 IB스포츠는 어떻게든 최소한 본전을 뽑아야 하는데 가뜩이나 광고시장 불황에 허덕이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가격 흥정에 실패한 것이다.
IB스포츠와 KBS가 들끓는 여론을 반영해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그 결과는 지켜보자. 다만 이 논란은 정부와 여당이 미디어법 개정의 이유로 들이대는 '뉴미디어 시대'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고편이 아닌가 싶다.
야구 중계를 케이블TV는 물론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IT강국다운 '방통융합'의 모습이다. 정부와 여당은 방송환경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방통융합 시대에 맞는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에 더 많은 자본이 들어올 수 있게 해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세계적 미디어그룹도 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에도 시장논리를 강조하는 동안 '보편적 시청권'은 오히려 축소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미디어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까?
과거 지상파 방송들은 여름에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겨울에는 배구나 농구 경기를 1주일에 2~3회 편성해 중계했다. 그런데 케이블TV가 보급되면서 스포츠 중계가 지상파에서 거의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예능 프로들, 그것도 재방송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스포츠 중계보다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 재방송하는게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방송혁명'의 주역으로 꼽고 있는 IPTV도 공짜가 아니다. 일단 회선에 대한 비용을 내야하고, '볼만한' 프로그램은 죄 유료로 전환되고 있다. 채널은 무한대로 늘어나지만 시청자들이 느끼기에는 볼만한 프로그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포털을 통해 무료로 스포츠 중계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는 상황에 따라 언제 유료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정당한 컨텐츠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고, 그래야만 더 많은 양질의 프로그램이 생산된다. 그러나 미디어 시장의 유료화는 점진적으로 소득 수준에 따른 계층간 정보 이용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시장에 자유 시장의 논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확장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WBC 중계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해 보면서 야구팬들에게 '공짜 중계'를 제공할 자본은 없다. 정부 여당의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모델일지도 모를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은 영국에서 위성방송을 인수한 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독점했다. 얼마 전 머독은 16억2300만 파운드(약 3조2990억 원)를 들여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 138경기 중 115경기의 중계권을 확보했다. 영국에서 축구경기를 보려면 머독의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한다. 가장 싼 패키지가 40파운드(약 8만8000원)라고 한다.
야구 중계가 무슨 '공공성'이냐고 항의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정부의 '미디어 산업 발전' 구상에 따르면 "WBC 야구 중계를 공짜로 볼 권리가 있다"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마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방통위가 '보편적 시청권'의 대상에서 WBC를 제외할 정도로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고 있다면 그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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