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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이 하는 일, 소신 있는 공직자가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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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소신 있는 공직자가 나와야"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의 진로 <하>

CEO 대통령. 경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장점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지난 몇년간 효율성과 경쟁력이 최대 가치로 인식되면서 장관, 대학총장, 자치단체장, 심지어 대통령까지 CEO 경험과 마인드는 중요한 자질로 평가받았다.

결국 한 건설사 CEO를 지낸 사람이 정권을 잡았다. 그가 과연 경제 살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집권 1년이 지난 현재 긍정적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훨씬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국민경제를 살리는 것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평가했다. 애당초 특정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CEO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대통령은 서로 안 맞는 조합이었다.

이처럼 공익을 추구하는 자리인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권력을 잡은 정부가 시장의 규율하는 '심판'으로서 역할을 잘 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 김종인 박사는 이익집단과 연결되지 않은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관료, 최고 권력자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투철한 정치인 등을 현재 왜곡된 한국경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2월 11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다양성 부족한 한국 경제학계

전성인 : 경제철학이나 경제정책 운용의 기본 베이스에 대한 얘기로 왔는데, 정확한 상황 판단, 현실적인 태도가 경제정책에 있어 중요합니다. 경제정책에 있어 유일하게 중요한 도그마는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가라는 큰 생각이 중요하지, 나는 무슨 학파니까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영국은 79년 대처가 집권한 이후, 뉴질랜드는 8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단까지 몰고 갔던 나라들입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공무원도 다 계약직이고, 중앙은행 총재도 계약제로 고용해서 목표를 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식으로 극단까지 갔던 나라입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고요. 영국은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유화와 민영화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것을 도그마의 추구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시대상이 이런 것을 요구해서 이를 포장했을 뿐이라고 봐야 할지, 이들 국가의 경제운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오랜 정당정치 경험이 쌓인 나라들은 각 정당이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이에 맞게 자기 정강 정책을 내놓고 표를 얻고 집권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지지했으니까 정책을 실현합니다.

하지만 영국이 아무리 대처 정부가 신자유주의로 갔다지만, 아담 스미스부터 시작해서 페이비언 소셜리즘(의회 사회주의), 케인지안, 하이에크, 신자유주의까지 혼재돼 운영되는 시스템입니다. 대처가 의료보장제도를 없애지도 않았고, 연금제도도 손대지 않았어요. 대처 당시 민영화도 보면 국민주 형태로 추진했지, 특정 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독일도 사민당(SPD)이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처음에 채택했다가 57년에 기민당(CDU)이 선거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사민당은 59년 이런 도그마적 정강정책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국유화 노선을 포기했어요.

이들 국가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다양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계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한 시대의 유행에 따라 그리 확 쏠립니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오는 압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도그마에 사로잡혀서는 끌고 갈 수가 없어요.

우리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최근에도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원래는 얼마만큼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조짐을 보였는데, 이번 경기대책의 효과로 어느 정도 축소됐다,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해야 신빙성을 갖고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장관이 바뀌기 전까지는 3% 경제성장을 얘기하다가 IMF가 -4% 경제성장을 발표하니까 그 중간쯤인 -2% 성장률을 얘기하는 식으로 해서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가 없어요.

현재 국제경제 상황이 금방 호조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독일은 올해 -2.25% 경제성장을 정부가 예고했어요. 원래는 -3%가 예상되는데 정부의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0.75%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내년도 금년 수준 이상 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전제 없이 내년은 무조건 제일 빨리 성장한다고 하는데, 이런 단순논리로는 경제정책이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규제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

전성인 : 정치인들에게는 간단한 메시지만 잘 전달된다는 얘기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최종의사결정권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얘기를 해도 마지막에는 구호화된 짤막짤막한 도그마들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규제를 완화해야 기업의 활동이 잘 된다, 성장과 효율이 우선이다, 이런 식의 몇 가지 단순한 메시지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정책의 생성이나 통제의 구조를 보면 우리가 이제는 정부 내 위원회 조직도 많이 있고, 정부 출연 연구기관, 국회 내 연구조직, 정당 내 연구소 등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정책 생성은 아직도 관료, 그것도 장관이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김종인 : 관료들이 도그마로 문제를 왜곡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기업과 관료들은 마치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이뤄지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과거 60, 70, 80년대에는 규제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투자가 잘 되고 성장이 잘 됐습니다. 원래 기업들은 돈이 된다면 규제가 있어도 투자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규제를 풀어도 돈이 안 되니까 투자가 안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규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합니까? 이참에 경제를 핑계로 방해가 되는 규제를 없애야겠다는 계산 같아요.

거대 기업들이 '나는 특이한 존재야, 그러니까 룰을 안 지켜도 된다'는 특권의식에 기반해 규제완화를 요구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이에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시장경제는 시장의 규칙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또 국가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심판입니다. 심판이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지키도록 해야지, 게임 규칙을 자꾸 없애면 그 경기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단순한 메시지만 최종 의사결정자에게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걸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이 정책의 단점은 이런 점이 있다고 얘기해주는 기능이 정책 생산 과정에서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점점 그런 사람들을 최고 통치자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왕조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사간원이 있었고, 군부정권인 박정희 시절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있어 특정 사안을 놓고 상호 견제하면서 경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97년 위기가 커진 데는 공룡 재경원이 모든 권한을 쥐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서 그렇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비단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재벌기업에서 총수 경영체제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에서 총수가 자동차 사업을 해야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결국 그룹 전체에는 엄청난 손해를 끼쳤습니다.

원래대로 따지자면 이런 제어장치의 역할을 정치권이 하거나, 행정부처 내에서는 위원회 조직이 해야 하는데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면 학계가 그런 역할을 하든가 해야 하는데, 사실 학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굉장히 한계가 있습니다.

입법도구가 된 여당

김종인 : 위원회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정부가 하는 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든 것들인데 제 기능을 할 리가 있습니까.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정당입니다. 정당이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제일 많이 합니다. 여당일수록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당이 집권당으로 책임감을 갖고 국민 의사를 수렴해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줘야 하는데 우리 여당은 그런 기능이 없어요. 오로지 최고 통치자의 눈치만 보고 그 사람의 판단은 신성불가침처럼 따라가는 데 급급합니다.

전성인 : 그렇습니다. 국회에서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입법화하는 도구 비슷하게 기능할 뿐입니다.

▲ ⓒ프레시안
김종인
: 자기 정당의 토론과정을 통해서 정책 방향이 결정돼야 하는데, 우리는 토론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민주화 20년이라고 하는데, 형식상 민주화는 됐지만 내재화가 전혀 안 됐습니다.

정부의 관료는 중립적인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 얘기를 나쁘게 듣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관료는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까요. 우리나라의 메커니즘이 그렇습니다. 윤증현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소득세와 법인세를 전면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뭘 검토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면 새로운 것을 뭘 해야 하니까 툭 던지는 수밖에 없는 거죠. 소득세 전면 검토라는 게 소득세 감세 밖에 없는데, 지금 시국에서 감세해야 경기부양 효과가 없습니다. 법인세 때문에 투자가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분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어떤 정책을 하면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해야지, 막연하게 다른 나라가 우리보다 세율이 싸니까 감세를 해줘야 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정책이 성공 못 합니다.

사익 추구하는 CEO, 공익 추구하는 대통령

전성인 : 정책 생산 구조와 관련해 정당의 역할을 말씀했는데, 결국 사람의 문제로 간다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사람이 옆에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장관이 무슨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 정책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것이면 대통령의 참모들, 청와대 경제수석이 막후에서 정책 조정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가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종인 : 그건 당연합니다. 청와대가 그런 기능을 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사람으로 보면 머리죠. 이게 작동을 잘해야 몸이 움직입니다. 미국도 백악관이 제대로 기능을 해야 미국체제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장관 아무리 바꿔봐야 소용이 없어요.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이 제대로 돌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안테나를 꼽고 행정부 전반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통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할 수가 없죠.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장관이 되는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관료 출신이라지만 거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자리에 집착하면 잘할 수가 없어요. 국회의원이 다음 번 공천을 걱정하고, 장관이 자리보전할 생각을 하면 바른 소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도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원이 2선, 3선하면 자기가 뭘 위해서 하는 것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미국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미국 의회에서 구제금융법안을 표결에 붙였는데 공화당 상원의원 2명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그런 정도의 확신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나라가 흥하고, 반대로 자리보전하고 그때그때 문제 안 생기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특정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공직에 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한동안 우리나라의 CEO가 최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졌어요. CEO 대통령, CEO 장관, CEO 시장...실제 특정 기업의 사장을 하던 사람이 특정 부서의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어요. 이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기여했습니까. 정부라는 공익을 다루는 기관과 개인기업의 이윤 추구는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언론마저 똑같이 밤낮 CEO 대통령 떠들어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언론도 경제정책을 하려고 하잖아요. 최근 대표적인 일이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 검토할 때 특정 언론이 나서서 왜 빨리 안 하냐고 부채질을 했었죠.

자리 욕심만 있고 비전은 없는 공직자들

전성인 : 그 언론이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에 반성문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공직자가 갖춰야할 자세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덕목은 제도적으로는 공직자 윤리법을 통해 규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서도 검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사 검증 과정을 보면서 물론 땅 투기, 병역 문제 등도 기본적인 도덕성의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정부에 들어가서 공익과 사익을 구별해서 국가를 위한 정책을 펼 것이냐가 중요한 검증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공직에 있다가 밖에 나와서 직접적인 이권과 관련된 단체에 있다가 또 공직에 가고...이런 회전문 인사를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 졌지만, 현 정부의 인사를 보면 아직은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법,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김종인 :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직을 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개인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직에 발탁된 이들 중에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 '내가 이런 자리에 갈 거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에 실수했다'고 변명하기도 하는데, 평소 그 사람의 생활신조가 어떤가, 사람을 임명할 때는 그런 것도 보고 골라야 합니다. 모든 게 편하고 적당히 하고 살았으면 공직을 탐내면 안 되고, 자기가 추구하는 바가 있으면 그에 맞게 일상을 규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을 보면 흑인으로 하버드 로스쿨 다녔어요. 본인이 원했으면 뉴욕의 최고 로펌에서 돈 많이 받으면서 최상류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사회운동을 위해 돈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인생을 살 때 그것에 맞추어 준비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가 뭐냐,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문제들을 고쳐야겠다고 고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행하게 그런 대통령이 이승만, 박정희 이후에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석하게 생각되는 것은 60년 헌정사에서 국민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 존경하는 원로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을 통해 지금 세계 13대 경제대국이라지만 사회가 갖춰야할 하부 구조는 아직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프랑스가 저 정도로 발전한 이유는 드골 덕분이라고 봅니다. 드골이 2차 대전 이후 개선장군으로 잠깐 대통령을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후 프랑스의 50년대가 정치적 혼란기였습니다. 드골은 당시 정치상황을 보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50년대 중반이 지나고 연로하게 되자 '조국이 나를 부르지 않는구나' 하는 체념 상태로 있다가 57년 알제리 사태가 나서 다시 58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고, 오늘날 근대 프랑스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물론 나중에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하게 퇴진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의 마지막 위인으로 드골을 뽑아요.

우리나라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지금 보면 장관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교수 중에도 많고, 관료들도 1급만 되면 장관을 꿈꿉니다. 그런데 막상 장관을 시켜 놓으면 뭐를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장관이 되면 일상적인 관리 이외에는 다른 걸 안 합니다. 경제정책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니고 행정능력만 갖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상력과 상황에 따른 분석 능력이 있어서 자기 영감에 기반해 새로운 정책을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정능력만 있으면 되는 걸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의 세계 경제위기는 경제정책에 있어 새로운 각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경제는 놔두면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죠. 대통령들도 관료들 데리고 가면 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97년 외환위기 때까지는 그동안 축적한 것을 까먹을 여유라도 있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양극화가 심화돼서 이제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이번 위기에는 서민층에서 받는 충격이 클 것입니다. 이 충격으로 정치권이 각성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조건

▲ ⓒ프레시안
전성인
: 박정희 정권 말기 1978년 집권 여당이 1.1% 지던 때가 제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때였습니다다. 그 전에 2-3년에 걸쳐 여러 가지 사전적 징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징후가 보이는 것 같아요. 용산참사를 보면 일종의 데자뷔(deja-vu)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사상자는 훨씬 적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집권 여당이 이런 메시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김종인 : 예전에 박정희 정권 때 차지철은 79년 부마사태 이후 2만 명만 죽이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권력을 잡고 있으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이라는 착시 현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현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권력자들의 오만은 결국 국민 힘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까?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제대로 된 비전도 없이 5년 임기 채우고 그만 두는 형편인데,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대통령은 첫째 탐욕스럽지 않고, 둘째 주변이 간편하고, 셋째 이익집단 하고 연결고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왜곡된 경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성인: 다음에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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