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만 사무총장 등 노조 핵심 간부가 조합비 유용·리베이트 등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정노력에 한창인 한국노총이 24일 오후 각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오후 2시 영등포 한국노총 서울본부 대강당에서 '노동조합 도덕성과 재정투명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노총은 스스로 마련한 잠정 자정안을 자신있게 내놓았지만, 학계·시민단체에서 참석한 토론자들은 '미흡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각 단위 노조가 지금껏 마련한 자정 방안 중 가장 앞선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한국노총의 자정안이지만, 노조 외부 인사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다.
***한국노총, 잠정 자정안 소개**
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은 권오만 사무총장 비리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 15일 '노동조합 도덕성 및 재정투명성 확보를 위한 조직혁신기획단'(단장 유재섭 수석부위원장, 이하 조직혁신기획단)에서 검토 중인 혁신 방안을 소개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한국노총의 잠정 자정안은 도덕성 확보와 관련, ▲비리 연루자의 피선거권 제한 ▲ 총연맹 임원 출마자 재산공개 ▲노조 윤리강령제정과 재정투명성 확보와 관련 ▲외부감사제 도입 ▲상급단체 내부감사제 도입 ▲회계감사 내역 정례적 인터넷 공개 ▲조합원 정보공개청구권 신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본부장은 "기획단 내부논의와 내부 의견 수렴을 좀 더 진행한 후 내달 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제도화하겠다"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밝혔다.
***하승수, "회계 감사 강화한다고 부패 없어지나"..."관건은 조직내 민주성 확보"**
하지만 한국노총이 제출한 잠정 자정안에 대한 토론자들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하승수 변호사는 "조합비나 복지기금 횡령·유용문제는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계약절차를 투명하게 할 경우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며 "하지만 (권오만 총장의 경우처럼) 리베이트 문제는 일반 사기업이나 정부기관의 경우에도 풀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는 부패방지위원회를 비롯, 각종 사정기관들이 있지만 부패의 고리를 끊고 있지 못하다"며 "몇가지 기구와 절차를 둔다고 해서 부패가 일소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하 변호사는 또 "부패가 발생하는 조직의 공통된 특징은 민주성의 결여"라며 "부패 방지를 위해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조직내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비판했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사회학)도 "한국노총이 부패 일소를 위해 구성한 '조직혁신기획단'에서 도덕성과 재정투명성 확보에만 주안점을 두고 노조의 지배구조 개혁이나 민주성 제고 사항은 누락됐다"며 "이는 당사자(한국노총)이 부패 사태를 얼마나 안일하게 보고 있는지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승창, "정규직 중심 노조운동 환골탈태 해야"**
하승창 '함께하는시민운동' 사무처장은 '조직내 민주주의 구현'의 구체적 내용을 노동운동의 정체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 처장은 "일반 시민들이 노동계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살펴봐야 한다"며 "일반인들은 (주류) 노조를 더 이상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생존권 투쟁을 하는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며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하 처장은 이어 "노동조건의 악화와 열악함의 상징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노조 지도부는 비정규직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운동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규직이 노조의 주류인 한, 정규직 스스로 (비정규직에 비해) 우월적 지위로 남는 동안은 정규직 존재 자체가 특혜가 되고, 노조는 정규직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로 전락하고 만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기아차·현대차 노조의 채용비리가 바로 이런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규직 중심의 지금까지의 노조 운동방식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부패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기아차-현대차 채용비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노동조건 차이는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됐지만, 점차 노조가 정규직의 우월적 지위에 탐닉하면서 노조의 민주성과 건강성을 상실하면서 부패가 발생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최석우, "비정규노동자가 노조 지도부가 돼야", "비정규 할당제 도입" 주장**
최석우 '매일노동뉴스' 편집장은 하 사무처장의 지적보다 한 발 앞선 주장을 제기했다.
최 편집장은 "더 절박한 사람들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가 돼야 한다"며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취약한 조직력 등의 이유로 주요 연맹이나 총연맹의 핵심 임원으로 선출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 편집장은 "주요 노조나 총연맹 임원선출에서 여성할당제를 두고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 할당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노조부터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벽을 허무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승창 처장도 "현재 노조 내부를 들여다 보면 비정규직 문제를 '도와준다'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도움'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지적은 양대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안 사업에 적극 개입하고 조직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근본적 태도가 '원조'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 보인다. 더구나 일부 대공장 노조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는 등 실제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과 괴리는 상당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날 토론회는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사회로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의 발제, 하승수 변호사·박준식 한림대 교수·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최석우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장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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